[한국의 미슐랭 스타들] ③ 라미띠에, 우정으로 빚은 프렌치 미식의 향연

이정수 기자 2024. 8. 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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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식 셰프가 이끄는 미슐랭 1스타의 라미띠에
20년 넘는 시간 동안 쌓은 것은 고객과의 ‘우정’
장명식 라미띠에 오너 셰프. /라미띠에

3년을 버티기 힘들다는 파인 다이닝 업계에서 무려 20년 넘게 명성을 유지 중인 곳이 있다. 바로 장명식 셰프가 이끌고 있는 미슐랭 1스타의 라미띠에다.

라미띠에는 프랑스 말로 ‘우정(L’Amite)’이란 의미다. 강산이 두번 넘게 변해도 이어갈 수 있었던 것도 이 뜻과 무관하지 않다. 라미띠에를 이끌고 있는 장명식 셰프가 추구하고 있는 방향도 이와 같기 때문이다.

장 셰프는 라미띠에가 고객들에게 오래된 벗처럼 느껴지길 바란다고 했다. 좋은 친구란 무엇일까. 함께 있을 때 편안한 것은 물론,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이다. 장 셰프는 요리로서 손님들과의 ‘우정’을 쌓아왔다. 배려를 통해서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프랑스식 파인 다이닝이라고 하면 어렵고 무거운 분위기를 떠올린다. 이러한 고정 관념을 타파하기 위해 장 셰프는 ‘가벼운 프렌치 퀴진’을 고수한다. 정통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지만 모두가 편안히 즐길 수 있는 분위기를 위해서다.

쓰는 재료도 비교적 ‘가볍다’. 육류로만 구성된 코스는 속이 더부룩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그는 대게, 전복, 랍스터, 덕자 병어 등 부담스럽지 않은 진귀한 재료를 내놓는다. 물론 채끝 등심과 같은 한국인이 사랑하는 재료도 빼놓진 않는다.

이번 여름 코스에서 라미띠에가 자신 있게 선보이는 메뉴는 전복과 장어, 그리고 대게 리예뜨(잘게 썰어 기름에 익힌 뒤 스프레드처럼 먹는 음식 종류)와 컬리플라워다. 여름에 맞게 라미띠에식으로 풀어낸 전복과 장어는 부드럽기 그지없다. 얼핏 보면 보양 음식인 장어덮밥과도 비슷하게 생겼다.

여름 시즌을 맞이해 라미띠에가 내놓은 장어 전복 요리. 잘 쪄낸 장어와 전복 아래로 밥, 트러플 등이 함께 나온다. 이번 라미띠에 여름 대표 메뉴 중 하나. /라미띠에

폭신하게 쪄낸 장어 아래 잘 지은 밥, 트러플을 이용한 페이스트와 올리브오일이 그 풍미를 이끈다. 이어 레몬, 파슬리 등 향긋함이 혀에 걸리며 고소한 맛을 상큼하게 잡아준다. 대게는 잘 발라낸 몸통 살과 함께 샬롯, 차이브 등을 잘 버무린다. 이어 컬리플라워를 갈아 고소함을 극대화한 뒤 젤리 형태로 만들어 이 위에 올린다. 곁에 있는 토마토, 소스 등이 자칫 비릿할 수 있는 해산물의 향을 은은하게 눌러준다.

또한 음식의 온도감은 그가 세세하게 챙기는 부분 중 하나다. 좋은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 나누는 가벼운 포옹과 악수에서 느껴지는 따스함, 그는 음식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다. 코스 구성을 봐도 그러하다. 첫 아뮤즈 부쉬, 전채 요리를 제외하고 나선 모든 음식이 따뜻하다. 또 이 온도감을 유지하기 위해 동선도 간소화했다. 라미띠에 주방에서 나온 음식이 손님 앞에 놓이기까지 거진 20초가 걸리지 않는다.

장 셰프는 나중에도 좋은 친구처럼 기억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에게 정직하고자 한다. 신뢰가 없으면 관계는 끝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주 만나지 못해도 좋은 친구는 늘 생각이 나듯, 라미띠에도 눈을 감고 있어도 생각나는 곳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라미띠에의 대게 리예뜨. 장어 전복 요리와 마찬가지로 라미띠에의 이번 여름 대표 메뉴 중 하나. 잘 발라낸 대게 몸통살과 함께 샬롯, 차이브 등을 곁들어 먹는 요리. /라미띠에

―간단한 약력 소개 부탁드린다.

“경주 호텔학교에서 요리를 공부한 후, 조선호텔에서 요리 경력을 처음 쌓았다. 11년간 근무한 후, 2006년에 라미띠에를 인수했다. 이어 지금까지 이곳을 운영 중이다.”

―라미띠에에 대한 소개 부탁드린다.

“라미띠에는 프랑스 음식을 선보이는 곳이다. 정통 프렌치를 고집하지만 나만의 색깔도 가미했다. 그러나 무조건 정통을 고집하는 것은 소스다. 한식에도 고급 한정식이 있듯이 프랑스 음식도 여러 종류가 있다. 가볍게 즐기는 비스트로(Bistro)부터 부티크(Boutique)까지. 라미띠에는 고급 다이닝이라고 보면 편하다.”

―프랑스 음식의 매력은 무엇인가.

“요리가 매우 창의적이다. 보기 힘든 재료도 많고 요리 기법도 많다. 그러나 제일 매력적인 부분은 프랑스 음식이 상당히 ‘과학적’이라는 것이다. 프랑스 사람들을 보면 비만이 별로 없다. 입맛을 돋우는 요리부터, 수프, 생선, 갑각류, 육류로 이어지는 코스를 보면 탄수화물, 단백질, 당분이 다 균형 있게 고루 퍼져있다. 신기했던 점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디저트를 건강하지 않다는 이유로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프랑스 사람들은 다르다. 식사 후 꼭 디저트를 곁들이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도 왜 살 안 찌는지 알아보니, 오히려 당분이 들어가면 소화가 촉진되더라. 이런 ‘당분의 역설’도 매료된 이유다.”

장명식 라미띠에 오너 셰프가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갖고 있는 모습. /이정수 기자

―라미띠에의 프랑스 음식은 어떤가.

“정통 프랑스 음식을 하려 하지만 한국 입맛에 살짝 개조했다. 어차피 우리가 있는 곳이 한국이 아닌가. 고객도 한국 고객이 주를 이룬다. 그러면 그 입맛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보다 가벼운 프랑스 음식을 선보이고자 한다. 속이 부담스러울 수 있는 육류 위주보다는 해산물을 섞거나, 차가운 요리보다는 따스한 요리를 내놓으려 한다. 한국인은 국물의 민족이란 말도 있지 않는가. 국물을 마시고 나서 속이 어루만져지는 기분이 좋아서 그럴 것이다. 실제로 우리 코스를 보면 2가지 음식을 빼면 전부 따뜻한 요리다.”

―따스한 요리를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라미띠에는 우정이란 의미를 지닌다. 우정을 표현하기 위해선 마음도 중요하지만 물리적인 온도감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서비스, 그 외에도 음식을 통해 온기를 전달하고자 한다.”

라미띠에의 디저트. /라미띠에

―이번 코스에 대해 설명해달라.

“여름 시즌엔 좀 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메뉴들로 구성했다. 더워서 입맛이 떨어지는 시기 아닌가. 보양 재료도 듬뿍 준비했다.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장어, 전복, 덕자 병어 등을 우리 코스에선 많이 볼 수 있다. 참외를 이용한 아뮤즈 부쉬, 새우 무스가 가득 담긴 향긋한 호박꽃 튀김, 바다의 향을 느낄 수 있는 바닷가재, 전복, 장어 등 최대한 여름의 기분을 내려 했다.”

―가장 좋아하는 식재료가 있다면 무엇인가.

“감자랑 양파. 가장 흔한 재료지만 가장 변화무쌍하다. 단짝 친구처럼 주방에서 늘 볼 수 있지만 새로운 경험도 할 수 있게 해준다. 감히 말하면 이 두 재료의 변신은 무한하다. 양파는 어디에 들어가도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재료다. 감자도 마찬가지다. 쪄도 맛있고 구워도 맛있고 튀겨도 맛있다. 두 재료는 내가 음식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그 모든 표현, 가끔은 투정과 응석도 받아주는 좋은 친구들이다 (웃음).”

―좋은 요리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정성이 담긴 요리. 정성이라는 말이 담기면 식자재를 대하는 모습, 손님께 내오는 과정이 달라진다. 어머니가 된장찌개를 끓이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대충 맹물을 쓰는 것이 아닌 고생스럽게 멸치를 우리고 된장만 넣으면 될 것을 호박, 감자, 양파, 두부 등을 썰어 넣지 않나.”

라미띠에의 메인 오리 요리./라미띠에

―어떤 셰프로 기억되고 싶은가.

“정직한 셰프다. 정직하게 지킬 도리를 다 지키고 싶다. 가령 청결은 셰프들이 꼭 지켜야 하는 덕목 중 하나다. 그러나 업장의 위생은 손님들 눈에 안 보이기에 가볍게 생각하기 쉽다. 이런 보이지 않는 부분을 엄격하게 지키는 것이 정직이다. 우리 셰프들이 흰옷을 입는 것도 그 이유다. 더러운 것이 옷에 묻으면 바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라미띠에를 좋은 친구들로 생각해 주는 것도 감사하지만 함께 오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우리를 통해 더욱 돈독해졌으면 좋겠다. 눈을 감고 있으면 라미띠에의 음식을 넘어 그날 함께 한 사람과 좋은 기억이 떠오르면 바랄 것이 없다.”

☞장명식 라미띠에 오너 셰프는

▲경주 호텔학교 졸업 ▲웨스틴 조선호텔 前 주임 ▲라미옥 前 오너 셰프 ▲라쎄종 現 오너 셰프 ▲장 스테이크 하우스 現 오너 셰프 ▲라미띠에 現 오너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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