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드는 데 꼬박 5일…제주 보양간식 '꿩엿' 명맥 지켜 온 장인정신
"귀향해 가업이은 지 19년…체험농장도 치유공간으로"
[편집자주] 지역마다 특색이 담긴 향토음식과 전통 식문화가 있다. 뉴스1 제주본부는 토요일마다 도가 지정한 향토음식점과 향토음식의 명맥을 잇는 명인과 장인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향토일(鄕土日)이라는 문패는 토요일마다 향토음식점을 소개한다는 뜻이다.
(제주=뉴스1) 오미란 기자 = 제주에는 19년 동안 오로지 제주 전통 보양간식인 '꿩엿'과 씨름해 온 장인이 있다. 강주남 제주민속식품 대표(58)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강 대표는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서울로 갔다.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사업체를 운영하며 20~30대 청춘을 보낸 그다.
그러던 2004년 어느 날, 당시 38살이었던 강 대표에게 떨어진 아버지의 불호령은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장남으로서 고향에 돌아와 가업을 이으라는 것이었는데, 문제는 그 가업이라는 게 다름 아닌 '꿩엿'이었기 때문이다.
운명의 장난처럼 강 대표는 이듬해 제주민속식품 대표가 됐다.
제주민속식품은 공무원이었던 강 대표의 아버지가 퇴직 후 1995년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 차린 사업체로, 당시 제주에서 유일하게 꿩 사육장과 꿩엿 제조 공장, 꿩엿 판매장의 시설을 한데 갖춘 곳이었다. 꿩엿의 명맥을 제대로 이어 보겠다는 포부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강 대표는 "대표가 되고 난 뒤 한 4년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어릴 때 어머니 몰래 한 숟가락 훔쳐 먹어야 맛볼 수 있었던 귀한 음식이라는 게 당시 꿩엿에 대해 아는 전부였기 때문에 정말 엄청난 양의 공부가 필요했다"고 덧붙였다.
강 대표에 따르면 먹을 게 부족했던 옛 제주에서 꿩은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는 귀한 식재료였다. 날이 쌀쌀해 지기 시작하면 제주 사람들은 초지에 사는 꿩을 잡곤 했는데, 그렇게 잡은 꿩은 겨울을 나기 위한 보양식으로 만들어 먹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꿩엿이다.
요즘 꿩엿을 한 번 만드는 데에는 꼬박 닷새가 걸린다고 한다.
기계 가동준비를 마치고 가장 먼저하는 작업은 하루 동안 찹쌀을 물에 불리는 일이다. 충분히 불린 찹쌀은 한 번 끓여 밥처럼 되도록 하고, 밥이 조금 식으면 그 위로 엿기름(맥아) 가루를 갠 미지근한 물을 부어 8시간 동안 따뜻하게 삭힌다. 전분과 엿당을 분리하기 위해서다.
이어 여과기로 엿당이 녹아 있는 물만 짜내는데, 이 물이 바로 식혜다. 식혜를 15시간 정도 끓인 다음에는 불을 줄여 잘게 간 꿩 고기를 넣고 더 끓인다. 총 20시간 넘게 고면 은은한 단맛과 오돌오돌 씹는 식감이 일품인 꿩엿이 완성된다.
꿩엿은 보통 한 숟가락씩 떠서 먹는다. 실제 옛 제주 사람들은 아이나 어르신이 아프면 꿩엿 한두 숟가락을 떠먹이곤 했다고 한다. 요즘에는 떡이나 빵에 잼처럼 발라 먹기도 한다.
강 대표는 "요즘 사람들 입맛에 맞게 좁쌀 대신 찹쌀, 꿩 고기는 잘게 갈아서 쓰고 있고, 깊은 맛을 내려고 불을 쓰는 3일간은 밤을 새며 온도를 세밀하게 조절한다"고 설명했다.
그 정성 끝에 꿩엿은 2014년 사단법인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가 선정하는 '맛의 방주'에 등재됐고, 강 대표는 2019년 제주특별자치도로부터 제주에서 유일한 꿩엿 장인으로 지정되며 우뚝 섰다.
현재 제주민속식품 옆에는 '사월의 꿩'이라는 이름의 교육·체험농장도 있다. 1년에 한 번 음력 4월에 알을 낳는 꿩을 보고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이 곳에서는 △꿩엿 만들기 △꿩엿 피자 만들기 △꿩엿 스프레드 만들기 △꿩엿 쌀강정 만들기△꿩 깃털 연필·책갈피 만들기 △꿩 먹이주기 체험 등을 즐길 수 있을 뿐 아니라 꿩 버거와 꿩 칼국수, 꿩 떡만둣국도 맛볼 수 있다.
2010년 첫발을 내딘 사월의 꿩은 꿩엿이라는 전통 식문화 자원과 성불오름 등 주변 자연환경 자원을 소재로 학교 교육과정과 연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점에서 농림축산식품부 우수체험농장 인증, 농촌진흥청 농촌교육농장 품질인증 등을 잇따라 받았다.
요즘 강 대표는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제주민속식품과 사월의 꿩 시설을 모두 리모델링해 전체 사업장 부지를 꿩엿을 테마로 한 치유 공간으로 조성하려고 4년 전부터 여러 준비를 하고 있다던 그다.
강 대표는 "제주 꿩 사육두수가 꾸준히 줄어들고 있는 만큼 이제는 필요한 만큼만 꿩엿을 만들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꿩엿을 알리는 데 더 집중하고자 한다"며 "음악치료학을 전공한 딸과 함께 이곳을 음식이 맛있고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꾸려 나가는 게 마지막 꿈"이라고 전했다.
#이 기사는 제주도와 제주관광공사의 지원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mro1225@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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