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드는 데 꼬박 5일…제주 보양간식 '꿩엿' 명맥 지켜 온 장인정신

오미란 기자 2024. 8. 31. 06: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맛있는 향토일] 꿩엿 장인 강주남 제주민속식품 대표
"귀향해 가업이은 지 19년…체험농장도 치유공간으로"

[편집자주] 지역마다 특색이 담긴 향토음식과 전통 식문화가 있다. 뉴스1 제주본부는 토요일마다 도가 지정한 향토음식점과 향토음식의 명맥을 잇는 명인과 장인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향토일(鄕土日)이라는 문패는 토요일마다 향토음식점을 소개한다는 뜻이다.

제주의 유일한 꿩엿 장인인 강주남 제주민속식품 대표(58).2024.8.31./뉴스1

(제주=뉴스1) 오미란 기자 = 제주에는 19년 동안 오로지 제주 전통 보양간식인 '꿩엿'과 씨름해 온 장인이 있다. 강주남 제주민속식품 대표(58)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강 대표는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서울로 갔다.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사업체를 운영하며 20~30대 청춘을 보낸 그다.

그러던 2004년 어느 날, 당시 38살이었던 강 대표에게 떨어진 아버지의 불호령은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장남으로서 고향에 돌아와 가업을 이으라는 것이었는데, 문제는 그 가업이라는 게 다름 아닌 '꿩엿'이었기 때문이다.

운명의 장난처럼 강 대표는 이듬해 제주민속식품 대표가 됐다.

제주민속식품은 공무원이었던 강 대표의 아버지가 퇴직 후 1995년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 차린 사업체로, 당시 제주에서 유일하게 꿩 사육장과 꿩엿 제조 공장, 꿩엿 판매장의 시설을 한데 갖춘 곳이었다. 꿩엿의 명맥을 제대로 이어 보겠다는 포부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제주민속식품의 꿩엿.(제주민속식품 제공)

강 대표는 "대표가 되고 난 뒤 한 4년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어릴 때 어머니 몰래 한 숟가락 훔쳐 먹어야 맛볼 수 있었던 귀한 음식이라는 게 당시 꿩엿에 대해 아는 전부였기 때문에 정말 엄청난 양의 공부가 필요했다"고 덧붙였다.

강 대표에 따르면 먹을 게 부족했던 옛 제주에서 꿩은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는 귀한 식재료였다. 날이 쌀쌀해 지기 시작하면 제주 사람들은 초지에 사는 꿩을 잡곤 했는데, 그렇게 잡은 꿩은 겨울을 나기 위한 보양식으로 만들어 먹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꿩엿이다.

요즘 꿩엿을 한 번 만드는 데에는 꼬박 닷새가 걸린다고 한다.

기계 가동준비를 마치고 가장 먼저하는 작업은 하루 동안 찹쌀을 물에 불리는 일이다. 충분히 불린 찹쌀은 한 번 끓여 밥처럼 되도록 하고, 밥이 조금 식으면 그 위로 엿기름(맥아) 가루를 갠 미지근한 물을 부어 8시간 동안 따뜻하게 삭힌다. 전분과 엿당을 분리하기 위해서다.

이어 여과기로 엿당이 녹아 있는 물만 짜내는데, 이 물이 바로 식혜다. 식혜를 15시간 정도 끓인 다음에는 불을 줄여 잘게 간 꿩 고기를 넣고 더 끓인다. 총 20시간 넘게 고면 은은한 단맛과 오돌오돌 씹는 식감이 일품인 꿩엿이 완성된다.

꿩엿은 보통 한 숟가락씩 떠서 먹는다. 실제 옛 제주 사람들은 아이나 어르신이 아프면 꿩엿 한두 숟가락을 떠먹이곤 했다고 한다. 요즘에는 떡이나 빵에 잼처럼 발라 먹기도 한다.

강 대표는 "요즘 사람들 입맛에 맞게 좁쌀 대신 찹쌀, 꿩 고기는 잘게 갈아서 쓰고 있고, 깊은 맛을 내려고 불을 쓰는 3일간은 밤을 새며 온도를 세밀하게 조절한다"고 설명했다.

그 정성 끝에 꿩엿은 2014년 사단법인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가 선정하는 '맛의 방주'에 등재됐고, 강 대표는 2019년 제주특별자치도로부터 제주에서 유일한 꿩엿 장인으로 지정되며 우뚝 섰다.

제주민속식품 사업장에 있는 꿩엿 테마 교육·체험농장인 '사월의 꿩'.(제주민속식품 홈페이지 갈무리)

현재 제주민속식품 옆에는 '사월의 꿩'이라는 이름의 교육·체험농장도 있다. 1년에 한 번 음력 4월에 알을 낳는 꿩을 보고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이 곳에서는 △꿩엿 만들기 △꿩엿 피자 만들기 △꿩엿 스프레드 만들기 △꿩엿 쌀강정 만들기△꿩 깃털 연필·책갈피 만들기 △꿩 먹이주기 체험 등을 즐길 수 있을 뿐 아니라 꿩 버거와 꿩 칼국수, 꿩 떡만둣국도 맛볼 수 있다.

2010년 첫발을 내딘 사월의 꿩은 꿩엿이라는 전통 식문화 자원과 성불오름 등 주변 자연환경 자원을 소재로 학교 교육과정과 연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점에서 농림축산식품부 우수체험농장 인증, 농촌진흥청 농촌교육농장 품질인증 등을 잇따라 받았다.

요즘 강 대표는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제주민속식품과 사월의 꿩 시설을 모두 리모델링해 전체 사업장 부지를 꿩엿을 테마로 한 치유 공간으로 조성하려고 4년 전부터 여러 준비를 하고 있다던 그다.

강 대표는 "제주 꿩 사육두수가 꾸준히 줄어들고 있는 만큼 이제는 필요한 만큼만 꿩엿을 만들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꿩엿을 알리는 데 더 집중하고자 한다"며 "음악치료학을 전공한 딸과 함께 이곳을 음식이 맛있고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꾸려 나가는 게 마지막 꿈"이라고 전했다.

#이 기사는 제주도와 제주관광공사의 지원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mro1225@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