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적 운동, 식단 조절, 금연·금주 “생활습관 바꾸세요”
60대 여성 A씨는 병원에서 혈압을 측정하다 2기 고혈압에 해당하는 170·100㎜Hg(수축기·이완기)라는 수치를 확인했다. 평소 혈압이 높은 편은 아니라 생각했는데 병원에만 가면 혈압이 높게 측정되는 상황이 전부터 계속 반복됐다. 이런 사정을 전하자 담당 의사는 A씨에게 가정에서 매일 혈압을 측정하고 혈압일지를 작성할 것을 권했다. 꾸준히 혈압일지를 작성한 뒤 다음 진료를 받으러 다시 병원을 찾은 A씨는 일지 내용으로 판단한 결과 전보다는 심각하지 않은 평균 125·80㎜Hg로 확인됐다.
고혈압은 혈관 노화로 발생하는 대표적인 성인병이다. 수축기·이완기 혈압 중 하나라도 각각 120~139㎜Hg, 80~89㎜Hg 범위에 들어갈 때부터 고혈압 전 단계에 해당한다. 1기 고혈압은 140~159㎜Hg, 90~99㎜Hg에 속할 때, 2기 고혈압은 160㎜Hg, 100㎜Hg 이상일 때를 가리킨다. 혈압이 높아져도 초기에는 이를 체감하기 어렵고 특별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으므로 꾸준히 측정해야 발견할 수 있다.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뇌경색, 뇌출혈, 심근경색, 신부전 등 다양하고 심각한 합병증을 일으킬 수 있다. 이런 심각한 합병증 때문에 고혈압은 직접 생명을 위협하기도 하면서 일상생활에서도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는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정확한 혈압을 측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신체의 상태에 따라 수시로 바뀌어서이기도 하지만, 평소 정상 혈압이다가도 의료기관에서 측정할 때만 혈압이 일시적으로 급격히 오르는 ‘백의 고혈압’이 나타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흰 가운을 입은 의료진 앞에 서면 긴장이나 스트레스로 혈압이 상승하는 현상인데, 이런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방안들도 제시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혈압을 관리하기 위한 중요한 생활습관 중 하나로 자택에서 자신의 혈압을 정기적으로 측정하고 기록하는 과정인 ‘가정혈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병원에서의 일회성 측정과 달리 일상적인 혈압 변화를 더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으며 자신의 혈압 변화를 꾸준히 관찰하기 때문에 고혈압을 관리해야겠다는 의욕도 북돋울 수 있다. 또 정확한 데이터를 확보해 의사에게 보다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어 적절한 진단과 치료의 기준을 세우기도 쉽다. 주형준 고려대 안암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가정혈압 측정은 고혈압 환자뿐만 아니라 협심증, 심부전이 있거나 신장 기능이 떨어진 환자들에게 필수적”이라며 “이를 통해 환자는 자신의 혈압 변화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정확한 평소 혈압을 파악해 적절한 의학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스스로 혈압을 잴 때는 정확한 측정 방법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먼저 측정 전 최소 30분 이상은 흡연, 음주, 카페인 섭취, 식사, 운동을 피해야 한다. 적어도 1~2분 이상 안정된 상태를 유지한 뒤 팔을 심장 높이에 맞게 두고 혈압계의 커프를 위팔에 정확히 부착해 측정하면 된다. 또 매일 같은 시간대에 측정하되 최소 2회 이상 측정해 평균값을 기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렇게 혈압일지를 기록하고 다시 확인하는 일이 번거롭게 여겨진다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등을 활용해 보다 편하게 기록할 수도 있다. 혈압 수치를 입력하거나 사진으로 찍기만 해도 자동으로 변화 추세까지 보여줄 수 있고 의사에게 전달하기도 쉬운 다양한 앱과 플랫폼이 속속 나오고 있다.
혈관 노화로 발생하는 ‘성인병’
일정 시간대 혈압 측정해 기록
평소 변화 보며 ‘건강 체크’를
유산소 운동, 혈압 강하에 도움
장류·국물 적게 먹고 고루 섭취
이미 시작한 약물치료는 ‘계속’
꾸준한 가정혈압 측정 외에도 고혈압을 잘 관리하기 위한 생활습관은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운동을 들 수 있는데, 역시 지속적으로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빠르게 걷기나 달리기, 자전거 타기, 수영 등 유산소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 혈압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천천히 걷는 수준의 강도가 지나치게 약한 운동, 또는 일주일에 한 번 하는 등산처럼 빈도가 너무 낮은 운동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주 5회 이상 30~50분 정도, 땀이 살짝 나고 맥박수가 빨라질 만큼 조금 힘든 강도로 운동하는 것이 좋다.
식단 조절도 필요하다. 소금 섭취를 하루 5g 이하로 줄이기 위해 음식은 싱겁게 먹는다. 소금, 간장, 고추장, 된장은 적게 섭취하고 국이나 찌개 등의 국물도 남기는 게 낫다. 대신 채소와 과일, 통곡물, 생선류, 견과류, 저지방 유제품 등을 골고루 섭취하면서 양은 줄여 소식하는 것이 좋다. 절주도 도움이 된다. 금연은 실패하더라도 반복해 시도하는 것이 좋다.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는 명상이나 좋아하는 취미활동도 도움이 된다. 김경안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심장혈관내과 교수는 “고혈압 환자의 치료에서 중요한 것은 생활습관 교정으로, 먼저 꾸준한 유산소운동을 통해 적정한 체중과 허리둘레를 유지해야 한다”며 “과체중이나 비만인 경우 고혈압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 당뇨병, 심혈관계 질환 발생 가능성도 높인다”고 말했다.
단, 고혈압 관리에 생활습관 개선이 중요하다고 해서 이미 시작한 약물치료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고혈압 환자의 다수는 혈관의 노화를 비롯해 복잡하고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본태성 고혈압이다. 반면 콩팥이나 부신 질환, 호르몬 이상 등 원인질환이 있어 고혈압이 나타나는 이차성 고혈압 환자도 있다. 원인질환을 치료해야 하는 이차성 고혈압 환자는 물론 생활습관 개선만으로 혈압을 낮추기 어려운 수준의 본태성 고혈압 환자에게도 약물치료는 필요할 수 있다. 약제의 성분이 다양해 환자마다 서로 다른 효과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자신과 잘 맞는 약을 찾고 싶다면 의사와 상담하는 것이 좋다.
김경안 교수는 “규칙적인 운동과 식이요법, 스트레스 관리, 금연, 금주 등과 같은 생활습관 개선은 고혈압의 근본 치료법으로, 고혈압 경계에 있는 경우에는 올바른 생활습관을 병행하는 것만으로도 치료가 가능하다”면서도 “다만 비약물 요법만으로 정상 혈압을 유지하기 어렵다면 혈압약을 먹는 것이 좋으며, 혈압약의 도움을 받아 정상 혈압을 유지하면 혈관 손상을 막을 수 있고 무서운 고혈압 합병증도 피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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