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현의 감성, 골프美학] 부탄 골프장 한 가운데에서 '스투파'를 만나다

김인오 기자 2024. 8. 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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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지독한 편견이다. 한 통의 전화가 온다. 습관적인 "어디냐"는 질문을 던진다. 부탄이라고 하자 웃는다. 그 웃음 뒤에는 분명 부탄과 대한민국의 GNP 차이를 먼저 생각했을 것이다. 다시 웃으며 "아! 행복지수 1위인 나라"라며 멋쩍어한다.

사실 나도 그랬다. 적어도 올해 열린 '서원밸리 그린콘서트'에 부탄 국민가수 우겐과 어린이 3명을 초청했을 때 만해도 숫자의 순위와 문명의 가치로만 줄을 세웠다. 하지만 그린콘서트에 '우겐'이 올라와 노래하자 부탄 어린이들은 "부탄 사람이라는 게 너무도 자랑스럽다"라며 국기를 펼쳐 들고 밝게 웃었다.

부끄러웠다. 그들을 초청할 때만 해도 GNP 4000달러와 행복지수 1위의 세계 빈국이기에 어린이들에게 1000만원을 기부하는 것이 주요 '이슈'가 될 것이라는 생각만 했다. 그러나 무대 위에서 부탄의 어린이들이 높이 든 국기와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에서 오히려 적어도 잘못된 편견에 대해 반성했다.

그래서 떠났다. '부탄 ESG관광활성화 포럼'을 핑계로 히말라야 동쪽 작은나라 부탄, 왕오천축국전을 지은 고승 혜초가 지나간 이곳에 가서 그 지독한 편견을 깨고 싶었다. 우린 상상하기에 동경하고 그래서 떠나서 쉼과 철학적 고찰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그 깊은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휴식이란 달콤한 단어 하나면 행복하다.

부탄에서의 포럼 스케줄 중에 한나절을 빼서 골프장을 가기로 했다. 부탄엔 4개의 골프장이 있다. 수도 팀부에 3개 골프장이 있고 1개 골프장이 더 있는데 모두 9홀로 구성되어 있다. 골프장에 대한 기대 역시 지독한 편견이다. 한국 골프장과 부탄 골프장을 코스 레이아웃, 서비품질, 시설을 비교하면 불행해 질 것이다. 

군에서 운영하는 9홀 골프장을 갔다. 그린피와 클럽 렌탈 비용 그리고 캐디피를 포함해 99달러다. 결코 싼 비용은 아니다. 클럽도 10년 이상 된 중고 브랜드가 섞인 한국에서는 사용하기 불가하지만 39달러를 주고 사용한다. 캐디 역시 서비스를 기대하면 안된다. 단순히 클럽만 들고 다니는 짐꾼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생각해 본다. 한국의 골프를  생각하고 이곳에 와 라운드를 한다면 화부터 낼 것이 자명하다. 이곳에서 받는 평균 월급의 반 정도 되는 비용과 관리되지 않은 그린과 페어웨이를 보면 또 한 번, 한국 특유의 화를 터트릴 만하다.

라운드 시작과 함께 몇 홀은 자꾸만 한국 골프장과 비교하게 되었지만 홀을 거듭할수록 미소가 지어졌다. 꾸밈없는 순수한 눈빛의 남자 캐디, 홀간 이동로가 방치되어 있어도 그냥 편안했다. 9홀 라운드를 하고 호텔에 와 누워 생각하니 물욕이 아닌 마음의 골프가 온 영혼을 사로잡았던 것 같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골프 코스 한 가운데 있던 '스투파(불탑)' 때문이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골프코스 한 가운데 있는 '무덤'을 골프장에서 자주 만난다. 국내 많은 골퍼와 골프장은 무덤을 옮기기 위해 높은 비용을 제안하고 더 높은 비용을 받기 위해 밀당을 한다. 그런데 이곳 부탄 골프코스에 있는 '스투파(불탑)'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미 스투파가 먼저 있었고 이를 누구 하나 항의하거나  옮기려 하지 않는다. 페어웨이에서 만난 스투파가 미소를 떠올리게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지독한 편견을 깬 동기는 바로 '떠남의 여행'과 부탄 골프장에서 만난 '스투파' 때문이다.

천재 작곡가이자 시인인 바그너도 "여행과 변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이 있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변화하려면 떠나고 우리의 편견을 깨려면 여행을 가야 한다. '인간의 가치는 그가 어떻게 쉬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 탈무드 역시 물질과 숫자 식의 줄 세우기가 아님을 방증시킨다.

여행은 많은 것을 얻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깨닫고 비우고 그리고 내 영혼을 증식시키기 위함이다. 그리고 늘 일상에서 해본 것에 대한 편견을 깨러 떠나는 것임을 생각해 본다.

2018년 개봉한 '윌터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영화 포스터는 '해본 것 없음, 가본 곳 없음, 특별한 일 없음'이란 문구가 있다. 이미 익숙한 것들, 그리고 우리의 고정관념을 버리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떠난다. 고도의 물질문명 속의 콘크리트 빌딩에서 숨 막히는 순위의 줄 세우기에서 낙오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고 있다. 부탄에 와서 딱 하나만을 가져가고 싶다. 골프코스에 있는 한국의 무덤과 부탄의 스투파의 존재와 가치 그리고 누가 주인이고 먼저 인지를.

글, 이종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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