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예능 ‘문명특급’이 기획한 3인조 ‘재쓰비’…씨 마른 혼성그룹 계보 이을까[이진송의 아니 근데]

기자 2024. 8. 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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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면 더 좋아’ 별종 캐릭터 의기투합…그대들을 응원해
유튜브 채널 <문명특급> 갈무리

언젠가부터 혼성그룹의 씨가 말랐다. 성별이 섞인 조합만 보면 자동반사로 소환되는 ‘코요테’나 ‘쿨’이 도대체 언제적 그룹이란 말인가. 물론 혼성그룹에는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르고, 변화한 연예계 생태계나 팬덤의 감정 구조를 고려하면 더더욱 불가능한 도전으로 보인다. 그런데, 최근 수상한 신인(!)이 끊겼던 혼성그룹 계보에 괴상한 땜질을 하며 등장했다. 웹 예능 <문명특급>이 기획한 3인조, ‘재쓰비’가 그 주인공이다. 방송인 ‘재재’, 댄서 ‘가비’, 크리에이터 ‘승헌쓰’로 이루어진 이 신인 그룹은 8월11일 <문명특급>에 올라온 영상으로 베일을 벗었다. ‘혼성그룹 데뷔합니다 300만원으로’라는 제목부터, 골 때린다. 영상을 재생하면 더욱 어이가 없다. 제작비 총 300만원으로 가수 데뷔를 꿈꾸는데, 그중 30만원을 첫 만남의 회식으로 탕진했다. 첫 만남이 너무 어려운 게 아니라, 너무 비싸다. 히죽히죽 웃다가 문득 생각한다. 그렇지. 이 대책 없는 추진력과 패기가 <문명특급>이었지. 댓글창을 내리자, 시청자가 느낄 법한 감정을 천재적으로 요약한 댓글이 수많은 ‘좋아요’를 등에 업고 상단을 차지하고 있다. “아니 뭔가 상상외 조합 같으면서도 대중들이 언젠가는 직면해야 했을 운명인 것 같아서 놀랍지 않음 ㅋㅋㅋ.” 무릎을 치며 감탄한 후 곱씹는다. ‘대중들이 언젠가는 직면해야 했을 운명.’ 직면할 수밖에 없는 존재, 재쓰비. 그들은 누구이며, 대중들은 왜 이들의 존재를 만나기 전부터 ‘예감’하고 있었을까?

신인 그룹이 데뷔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룹의 이름과 정체성이다. 그리고 그것은 멤버들의 캐릭터가 결정한다. 각자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딴 ‘재쓰비’는 처음 영상이 공개될 때는 이름조차 없었다. 이는 의외로 전통적인 아이돌 데뷔 서바이벌의 형식이다. 많은 아이돌그룹 멤버들이 연습생의 신분으로 등장해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고 성장 서사를 쌓은 후, 자신이 활동할 그룹의 이름(대체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 반응을 억지로 감추거나, 감추는 데 실패한다)을 획득하니까. 다음, 멤버 구성. 여러 미디어에 다양하게 출연한 재재와 가비는 폭발적인 에너지와 추진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문명특급>의 진행자이자 PD였다가 2023년 프리랜서로 전환한 재재는 K팝 백과사전이다. 춤과 노래, 무대에 대한 재재의 열정이 이 기획의 도화선이 되었다. 재재는 래퍼이자 프로그램의 진행자로서, 그룹에 꼭 필요한 ‘재간둥이’ 예능 파이를 담당한다. Mnet의 <스트릿 우먼 파이터>로 스타덤에 오른 가비는 출중한 댄스 실력 외에도, 영리하게 관심사를 공략하는 방송 센스로 ‘악마의 스타성’으로 불렸다. 의심할 나위 없이 센터의 별에서 온 재목이다. 승헌쓰는 고등학생 때부터 K팝에 맞춰 무아지경으로 춤을 추는 ‘끼’ 하나로 유명해졌다. 요란한 상황극과 어쩐 일인지 뛰어난 춤과 노래 실력으로 숱한 밈을 제조하지만 의외로 내향형이다. 낯을 가리며 어쩔 줄 모르다가 마이크를 잡으면 돌변하는 모습은 그룹에서 빠지면 서운한 ‘힘숨찐’ 캐릭터다. 힘을 숨긴 진짜 주인공 승헌쓰는 여자 키의 음역도 자유롭게 소화하며 메인 보컬의 자리를 거머쥐었다.

개성으로 뭉친 재재·가비·승헌쓰
제작비 300만원으로 데뷔 도전
엉뚱함을 무기로 새 활력 기대
유사 채널에 ‘문명특급’ 위상 흔들
작년 구독성적 부진에 승부수 띄워
‘오합지졸’ 등장이 반전 묘수 되길

범상치 않은 에너지의 세 사람을 하나로 엮는 키워드는 역시 ‘별종’이다. 재재도, 가비도, 승헌쓰도, 어찌 보면 마이너라고 할 수 있는 개인의 특성을 무기 삼아 정면 돌파했기 때문이다. 재재의 짧은 머리, 큰 키, 바지 차림, 씩씩한 태도는 6년 전만 해도 미디어에서 보기 드문 여성상이었다. 가비는 개인 채널 <퀸 가비>에서 연기하는 월드 스타 캐릭터처럼 ‘과한 여성’으로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갈등과 비난을 즐기는 모습으로 눈도장을 찍었다. 걸그룹 댄스를 가장 잘 추며 아리아나 그란데, 청하를 롤 모델로 삼는 승헌쓰는 ‘정형적 남성성’에서 벗어나 있다는 이유로 악플도 많이 받았다. 남들과 다른 자신을 갈고닦아 브랜드로 만들라며 개성을 강조하는 듯한 사회는, 그러나 조금만 다른 점을 드러내면 얼마나 가혹한 얼굴로 정을 내리치는가. 가비가 이끄는 댄스팀 라치카는 2021년 <스우파>에서 레이디 가가의 ‘Born This way’를 활용한 무대를 선보인 적 있다. 라치카가 설명한 안무의 콘셉트는 다음과 같다. “누구나 태어난 존재 자체로 아름답다. 별종이라 불리는 이 세상 모든 이들을 빛내주기 위한 무대.” 재쓰비는 자유로운 무대인 <문명특급>에서 인연을 쌓은 후,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이상해도 괜찮아’, ‘이상하면 오히려 좋아, 더 즐거워’의 정서가 흐르는 <문명특급>이기에 가능한 일을, 구독자들은 희미하게나마 예상했나 보다.

가을의 음원 발매 즉 데뷔를 목표로 하는 재쓰비는 당장 한 달 후, 괴산 고추축제(통칭 ‘괴산팔루자’)에 출연해 제작비를 벌어오라는 미션을 받는다. 에피소드 1화에서는 처음 만나서 행사에 설 무대를 연습하고, 2화에서는 리드 보컬 쟁탈전을 벌이며, 3화에서는 각자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개별 트레이닝에 나선다. 이 과정에서 또 각각의 드라마가 발생한다. 재재의 경우, 6년간 <문명특급>을 이끌어온 정체성이자 얼굴로서 ‘원톱’의 부담감을 내려놓고 협업과 의존을 배워가는 서사라고 할 수 있다. 재재의 프리랜서 전환과 공백기는 <문명특급>의 부진 이유로 꼽힐 만큼, 그의 역할과 비중이 클 수밖에 없었다. 3인조 체제는 새로운 시도이자, 언제나 혼자서 모든 것을 해야 했던 개인이 누군가에게 의지하기도 하고 강약 조절을 위해 자신의 존재를 누르기도 해야 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이는 재재가 휴식기를 가지게 된 이유인 번아웃과도 연결되는 지점이다. 3화에서 행사의 꿀팁을 전수하고자 찾아온 조혜련은 가비의 무대 장악력을 언급하며 재재에게 말한다. “그냥 자기는 가비한테 맞춰.”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가비에게는 ‘자신감’이라는 숙제가 있다. 가비처럼 한 분야에서 최정상을 찍은 여성도, 새로운 도전을 할 때는 낯설어하고 두려워하고 자신감 없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어떤 울림을 준다. 야구장에 가서 치어리더들의 도움을 받으며 센터에서 무대를 이끄는 훈련을 한 가비는 축하를 받으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무대에 직접 피드백하며 보완할 점을 찾는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며 뚝딱대는 가비에게서, 누구도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으며 그럼에도 지속하는 용기를 배운다.

태연에게서 웬만한 가수보다 훨씬 노래를 잘한다는 극찬을 받은 승헌쓰에게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소심함’ 이슈이다. 비연예인으로서 출연 자체가 도전이었을 승헌쓰는 평소 주목받기 싫어하는 성향 때문에, ‘물 들어올 때 노 버리고 도망가는 사람’으로 유명했다. 일단 하기로 했으니 최선을 다하다가도, 몰려오는 불안에 허공을 향해 “저 맞아요?”라는 질문을 발사한다. 이때 승헌쓰의 정신적 지주이자 뮤즈인 수학 강사 양진영이 등장한다. “너무 잘하고 있어”라는 응원은 평범한 것 같지만 가장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3화는 김이나와 제아가 트레이너로 출연하는 4화를 예고하며 끝난다. 이들이 춤과 노래에 진심이고, 제법 출중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재쓰비 프로젝트는 마냥 웃음만을 노리지 않는다. 이 여정은 MMTG로 명칭을 변경한 <문명특급>이 띄운 승부수이기도 하다. 웹예능의 상징이었던 <문명특급>은 2024년 들어 성적이 예전 같지 않다. 2024년 3월에는 ‘MMTG, 당신이 몰랐던 6가지 사실’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게재하며, 저조한 조회수와 게스트 섭외의 부족함을 인정하기도 했다. 반전을 꾀하며 ‘2009 명곡 챔피언십’으로 조회수 500만 공약을 걸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문명특급>이 들고나온 것이 재쓰비 프로젝트라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가 있다. 프로젝트 자체의 재미나, ‘다양성 그룹’으로 불리는 화제성과 별개로 재쓰비 프로젝트는 조회수를 보장할 수 없는 아이템이다. 호불호가 갈리는 캐릭터들의 오합지졸 가수 도전기는 각 인물에 대한 이해도와 호감이 없으면, 쉽게 팔로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문명특급>은 질렀고, 재쓰비는 달리기 시작했다. 사실 <문명특급>의 위상 변화는 외부 요인과도 관련 깊다. 6년 사이 비슷한 포맷의 채널이 대거 등장한 유튜브 생태계의 변화 같은 것은 통제할 수 없다. 그 대신 <문명특급>이 선택한 방식은 정직하다.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즐겁게’ 하자. 여전히 다른 프로그램이 따라 하거나 침범할 수 없는 <문명특급>만의 ‘쪼’가 있다면 재재와 <문명특급>이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쌓아올린 캐릭터와 서사, 여전히 빛을 발하는 제작진의 패기와 열정, 그리고 여기에 합류한 멤버들이 내는 시너지, <문명특급> 구독자들과 형성한 친밀감과 취향의 교집합, 이런 것들이다. 조회수라는 단순 통계만으로는 담아낼 수 없으나 분명하게 작용하는 ‘백쪼의 호수’. 그 속에서 헤엄치며, 이 괴상하고 엉뚱하며 사랑스러운 신인 가수를 응원한다.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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