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 스머프’ 떠난다…마을이 어떻게 아이를 키우는지 보여주고

정민승 2024. 8. 31. 05:4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세종 해밀초 유우석 교장 4년 임기 마치고 이임
마을·학교 담 낮춘 '마을교육공동체' 모델 제시
마을교사 양성, 공동 축제, 공간 공유 등 '성과'
학생 두 배 늘고, 3년 반 동안 '학교폭력위' 0건
공교육 위기 속 세종발 마을교육공동체 '관심'
30일 4년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유우석 세종 해밀초등학교 교장이 화단의 해바라기를 보며 활짝 웃고 있다. 한여름 뜨거운 햇볕이 모여 알알이 여문 씨앗은 아이들이 내년을 위해 일찌감치 수확해 따로 모아 놓은 터다. 해바라기는 해밀초 교화다.

2004년부터 충남과 세종 관내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유우석(48) 교사는 늘 가슴 한구석에 아쉬움이 있었다. 부모들은 학교가 더 많은 걸 해주길 바랐고 그 기대에 부응하고도 싶었지만, 하루에 고작 몇 시간 함께 하면서 아이들을 온전히 교육하는 일은 난제였다. 그가 '학교와 마을 사이에 뭔가가 하나 있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갖게 된 배경이다.

2017년 기회가 왔다. 세종 소담초에서 학부모회 담당이 됐다. "학교에 도움 주는 일을 해야겠다고 고민하지말고 , 부모님들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십시오. 학교가 돕겠습니다!" ‘뭐 이런 학교가 다 있나?’ 하는 반응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웃과 인사 한번 하기도 어색한 세상, 학교가 자리를 깔아주자 어른들은 금세 다양한 방식으로 뭉쳤다. 요리, 영화, 독서 모임이 만들어졌고 자녀들과 함께 ‘노는’ 아버지 모임도 출현했다.

학부모회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무렵 코로나19가 터졌다. 다양한 경험과 능력을 가진 학부모들의 재능을 학교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찰나, 모든 게 중단됐다.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어 더 큰 도전에 나섰다. 2020년 9월 개교를 앞두고 세종시교육청이 진행한 해밀초 교장 공모에 지원해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해밀동은 유치원, 초중고를 단지 한가운데 두고 주민들에게 열려 있는 구조다. '마을이 학교'라는 개념으로 설계돼 '스머프 마을'로도 알려져 있다. 모든 게 '백지'상태라 새로운 도전을 해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유 교장은 "젊은 나이(44세)에 교장이 되고 보니 축하보다는 '네가 무슨 교육을 아느냐', '학교장, 만만한 일 아닌데···' 하는 우려가 더 많았다"며 "하지만 열정적인 교사들과 주민들이 '파파 스머프'로 불러주는 것을 보면서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돌아봤다.

유우석 교장이 지난 14일 가진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4년 동안 해밀마을 생활을 돌아보고 있다.

'파파 스머프'라는 별명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유 교장은 열정을 보였다. 먼저 유치원, 중학교와 함께 '해밀 유·초·중 협의회'를 결성해 지역 문제 해결에 나섰고, 이어 입주자대표회의 등 주민들도 끌어들였다. 모임명은 해밀교육마을협의회로 바뀌었다.

새로운 시도를 할 토대가 갖춰지자 그는 △학교-마을 공동 축제 개최 △우리마을 교사 양성 △학교와 지역공동체 사이 담을 낮추기 등을 시도했다. 그 덕에 해밀동에선 매년 10월 해밀무지개축제가 열린다. 주민 1만여 명 중 동시에 5,000명이 참가하는 축제다. 초청 가수, 개그맨 같은 건 없다. “축제요? 별거 없습니다. 1,000명이 넘는 아이들이 아무렇게나 떠들면서 아파트 단지를 걷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나와선 신기해하며 사진을 찍습니다.”

축제에선 마을교사와 아이들의 연구 결과물, 작품, 장기 자랑 등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공개된다. 새로 생긴 축제를 통해 경험과 추억을 공유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지역사회는 더 단단히 뭉쳤다. 또 아이들은 체육시간에 복합커뮤니티센터(주민센터) 실내 강당을 이용하고, 마을주민들은 저녁이나 주말 비어 있는 학교 운동장과 체육관을 이용하는 등 '공간 공유'까지 이뤄지면서 지역과 학교의 관계는 끈끈해졌다.

유 교장이 자신의 집무실 '교장실'에서 늦은 시간까지 남아 일을 보고 있다. 벽이 모두 투명한 유리로 된 교장실은 모두에게 개방돼 있다. 1차 인터뷰가 있던 지난 14일 오후, 초등학생에게는 제법 늦은 시간이었지만, 학생 둘이 교장 선생님의 업무를 '방해'하면서 놀고 있었다. 두 아이는 저녁 때가 돼서야 사라졌다.

소문이 안 날 수 없었다. 2020년 500명이던 학생 수는 현재 1,180명으로 늘었다. 해밀동은 세종 전입 초등 자녀 가정 사이에서 전입 1순위 동네가 됐고, 3,000가구가 넘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해밀마을에선 연말이면 전세 품귀 현상이 나타날 정도다. 유 교장은 "지난 4년 동안 20여 개국에서 300여 견학팀이 학교를 다녀갔는데, 처음에는 학교 공간과 구조를 묻다가 최근에는 학교 교육과정에 높은 관심을 보인다"며 "전입생 증가는 마을과 학교 사이의 낮은 담, 안전하고 정감 넘치는 마을 분위기에 공감한 결과로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교 후 작년까지 3년 반 동안 학교폭력심의위원회는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교권 붕괴, 공교육 불신 같은 단어가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게 현실이지만, 마을교육협력체계를 구축해 한줄기 희망을 쏘아 올린 유 교장은 30일 해밀마을을 떠났다. 시교육청은 9월 1일 자로 유 교장을 세종시교육청 교육원 연수부장으로 발령했다. "마을교육공동체로 교육도 세우고, 지역사회도 건강하게 한 '레시피'를 더 많은 곳에 보급하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더 있고 싶지만, 뜨겁게 작별하려고요." 많은 이들이 그의 또 다른 도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 19일 해밀초 시청각실에서 열린 유우석(앞줄 오른쪽) 교장, 신동님(왼쪽) 교감 이임 토크쇼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행사를 준비한 이원기 교사는 "교직원끼리 단출하게 열리는 이임식이었는데, '그냥 보낼 수 없다'는 학부모, 학생들이 있었다"며 "준비한 200명분의 떡이 크게 모자랄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고 말했다. 이날 떡을 먹지 못한 5학년 학생들은 30일 유 교장과 마지막 오찬을 갖기로 했다. 이원기 교사 제공
유우석 교장과 신동님 교감 이임 소식에 해밀초 학부모들이 만든 감사 인사 현수막이 학교 운동장 울타리에 걸려 있다. 그물 울타리 너머로 맨발 걷기 운동 중인 주민들이 보인다.
최교진 세종시 교육감 등 관계자들이 지난 12일 해밀마을에서 열린 세종마을교육지원센터 개소식에서 기념 촬영하고 있다. 세종마을교육지원센터는 학교와 마을을 연계하는 마을교육공동체 확산 목적으로 설립됐다. 향후 생활권역별로 설치된다. 세종시교육청 제공

세종=글·사진 정민승 기자 msj@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