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화재 빠르게 잡으려 차 밑바닥을 뚫었죠”[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순식간 펑… 화재 나면 불길 거센 전기차, 질식소화덮개-수조로 끄기 역부족
전기차 하부 관통 분사 노즐 개발… 배터리에 소화액 직접 주입해 냉각
조달청 혁신제품 등록… 올해 상용화, 주차장 설치형 방염막도 연구
전기차 화재가 무섭다. 이달 1일 인천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가만히 세워져 있던 전기차에서 불이 났다. 아무런 충격이 없는 상태에서 불이 났고, 큰 불길이 5시간 이상 잡히지 않으면서 주변 차량 87대가 불에 타고, 783대는 열이나 그을음으로 인한 해를 입었다. 차 한 대에서 불이 시작됐을 뿐인데 화재 당시 출동한 소방인력은 170명이 넘었다.
고급 승용차인 벤츠 전기차에서 이런 불이 났다는 점에서 전기차 전반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기준 전기차의 화재 발생빈도는 1만 대당 1.32대로 일반 차량의 1.86대에 비해 30% 정도 낮다. 하지만 불이 나면 몇 시간씩 계속 타는 특성 때문에 국민의 불안감은 쉽게 가라앉기 힘든 상황으로 보인다.
● 배터리 주변 온도를 낮추는 게 관건
전기차 배터리에 화재가 발생하면 불이 좀처럼 꺼지지 않는 열 폭주 현상이 발생한다. 일반 분말소화기로 소화제를 뿌려도 배터리의 화염은 잠깐 밀렸다가 이내 다시 살아난다. 일반 차량 화재와는 확연히 다른 양상이다. 소화제가 공기를 차단해도 소용이 없는 것은 열을 받은 리튬이온배터리에서 산소와 함께 가연성 가스들이 나오며 타기 때문이다. 소방관들은 질식소화덮개를 쓰기도 하는데, 이 또한 배터리의 불을 끄는 용도가 아니라 주변 차량이나 건물로 화염이나 연기가 번지는 것을 더디게 하려는 목적이다. 이동식 수조는 설치에 시간이 걸려 골든타임에는 적용하기 힘들고 재발화 방지용으로 많이 쓰인다.
배터리에 가해진 충격이나 불량 등으로 배터리 셀 일부의 온도가 올라가기 시작하면 주변으로 열 폭주 현상이 전이된다. 이 대표는 “주변 셀로 열이 전달되지 못하게 빠르게 냉각액을 스며들게 해 온도를 낮추는 것이 전기차 화재 진압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전기차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물을 차량 하부에 집중적으로 뿌리거나, 차 주변에 이동식 수조를 설치해 차를 담그는 것은 배터리 온도를 낮추려는 의도다.
그런데 문제는 배터리 겉면이 수증기나 먼지 등을 차단하기 위해 금속으로 밀봉돼 있다는 점이다. 국방과학연구소 출신의 권우근 리모빌리티 연구소장(68)은 “외부에서 소화제나 물을 뿌리는 방식보다 더 효과적으로 배터리 온도를 낮추기 위해 배터리 안으로 소화 약제를 직접 뿌리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했다.
권 소장은 “처음에는 넓은 판형에서 9개 정도의 노즐이었지만 최종적으로 가느다란 사각형 모듈에 노즐 2개로 완성했다”며 “연구개발용 모델로 모형 전기차에 시험한 결과 배터리 주변 온도를 100∼150도 이하로 떨어뜨려 화재가 번지는 것을 막았다”고 했다. 전기차 충전소나 아파트 주차장 비치용으로 개발됐다.
소화 약제는 배터리 화재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비전도성 강화액 계열을 선택했다. 전기가 통하지 않으면서도 물보다 침투력이 좋아 더 빠르게 배터리 온도를 낮출 수 있는 액체다. 권 소장은 “소방관들이 호스로 물을 뿌리다 배터리의 전류에 감전되는 경우가 있어 비전도성이 필요했고, 물보다 냉각 효과가 좋은 물질이 필요했다”고 했다.
● 빠른 화재 감지 시스템도 연구
리모빌리티는 작년 8월에 ‘전기차 배터리 화재 진압용 소화장치 및 시스템’의 특허를 등록했고, 올해 6월에는 ‘전기차 충전소의 화재 진압용 방염막’에 대한 특허도 등록했다. 충전 중인 전기차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위쪽에서 방염막이 펼쳐지고, 방염막 내부에서 소화액을 분사된다. 분사된 소화액을 방염막 내부에 가둬 수조를 형성, 전기차의 재발화도 막는 시스템이다.
이를 위해 자동으로 비상 상황을 감지하는 시스템도 연구 중이다. 주차장 바닥에 열감지 센서를 구비하고 영상감시 등과 결합해 전기차 화재를 조기에 감지하는 식이다. 이 대표는 “기존의 화재 감지 센서는 천장에 있어서 불이나 연기가 제법 발생해야 작동을 하는 경향이 있다”며 “보다 빠르게 화재를 감지하기 위한 시스템”이라고 했다.
국립소방연구원의 지난해 전기차 화재 대응 가이드에 따르면 전기차 화재의 화염 방향은 가스 분출 등으로 인해 수평 방향으로 빠르게 번진다. 전기차들이 나란히 서서 충전을 하던 중에 불이 난 사고를 분석해 봤더니 화재 차량에 화염이 보인 후 1분 15초 만에 바로 옆 차량으로 불이 번졌고, 세 번째 차량까지 번지는 데에도 모두 2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빠른 화재 감지가 필요한 배경이다.
● 안전 분야 창업에 대한 꾸준한 관심
이 대표는 정보통신기술(ICT) 분야를 중심으로 공부한 뒤 산업체에서 다양한 연구 제조 기술을 경험했다. 2001년과 2004년 정보전산공학과 정보보호공학으로 학사와 석사를 받고, 이후 여러 중소기업에서 ICT 솔루션을 개발했다. 리모빌리티 창업 직전에는 기업에서 특수차량 개발을 총괄하는 경험도 쌓았다. 2010년과 2015년에는 경영학석사와 공학박사 학위도 받았다. 이 대표는 “정보기술(IT)을 기반으로 다양한 센서 제품과 원격관제 솔루션, 특수차량을 개발한 경험이 전기차 화재 감지와 전기차 화재 진압 특수차 개발 계획을 세울 수 있는 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이 대표가 보유한 여러 건의 특허 중에는 전기차 충전기 내장형 사물인터넷(IoT) 융합 화재 진압 장치와 전기설비 소공간용 소화기도 있다. 화재 중 많은 경우가 전기차 충전기와 전력 배전반, 분전함 같은 좁은 공간에서 발생하는 것을 알고 그 안에서 온도 등을 감지해 자동으로 소화제를 분사하는 작은 소화기다. 2013년 사업화를 포기했다가 지금 리모빌리티에서 추가 특허를 확보하고 함께 사업화를 하고 있다.
이 대표는 “전기차 화재를 관통형 노즐로 빠르고 안전하게 처리하는 것은 시작”이라며 “전기차 충전소의 자동 방염막 등 도시의 안전을 높일 수 있는 안전 솔루션을 지속적으로 개발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대전=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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