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악용 vs 보안 유지, 텔레그램發 ‘암호화 기술’ 논란

유지한 기자 2024. 8. 31.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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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정부·빅테크 충돌
그래픽=김현국

텔레그램 창업자인 파벨 두로프(40)가 프랑스에서 예비 기소된 후 글로벌 테크 기업들의 ‘암호화 기술’이 논란이 되고 있다. 프랑스 검찰이 주요 혐의로 “정부 허가 없이 비밀 능력을 확보할 목적으로 암호화 서비스를 제공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텔레그램을 세계적 메신저로 만든 암호화 기술을 정면으로 문제 삼은 것이다.

‘암호화 기술’은 강력한 보안으로 수사 기관의 추적을 방해해 범죄자들이 메신저와 플랫폼을 범죄의 도구로 사용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하지만 빅테크들은 사용자 정보 보호를 이유로 더 강력한 암호화 기술을 개발해 채택하고 있다. 각국 정부와 수사 당국은 암호화 메신저를 무력화하려고 시도하지만, 빅테크들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텔레그램뿐 아니라 와츠앱, 시그널 등 대다수의 메신저들이 암호화 기술을 잇따라 적용하면서 빅테크와 정부의 갈등은 더 증폭될 전망이다.

그래픽=김현국

◇개인정보 보호 vs 범죄 도구

텔레그램을 비롯해 주요 빅테크가 메신저에 주로 사용하는 것은 ‘종단 간 암호화(End-to-End Encryption)’ 기술이다. 메시지를 주고받는 모든 과정이 암호화된다. 수신자와 발신자 외에는 대화 내용을 알 수 없고, 메신저 업체의 서버에도 내용이 남지 않는다. 만약 수사기관이 메시지를 확인하려면 수신자와 발신자를 직접 조사하는 수밖에 없다. 딥페이크(AI로 만든 진짜 같은 가짜 콘텐츠) 사건처럼 범죄에 대규모 인원이 연루되면 사실상 수사가 불가능한 것이다.

‘종단 간 암호화’는 메신저의 주류 보안 기술이 되고 있다. 메타는 지난해 말 페이스북 메신저에 이 기술을 전면 도입했다. 메타의 또다른 메시지 앱인 와츠앱에는 이미 이 기술이 적용돼 있는데, 전 세계적으로 20억명 이상이 사용하고 있다. 애플의 ‘i메시지’도 종단 간 암호화로 정보들이 보호된다. 미국 메신저 시그널은 텔레그램처럼 사용자 외에는 메시지를 읽거나 통화 내용을 들을 수 없다는 점을 앞세워 사용자를 끌어모으고 있다.

국내에서는 카카오가 ‘비밀 채팅’에 이 암호화 기술을 적용했다. 김승주 고려대 교수는 “텔레그램 같은 보안 메신저가 기술을 도입하기 시작한 이후 대다수의 메신저들이 종단 간 암호화 기술을 기본적으로 탑재하는 추세”라며 “자동적으로 암호화가 이뤄지기 때문에 업체도 이를 풀 수가 없다”고 말했다.

◇빅테크, 서비스 철수 협박

강력한 암호화 기술을 둘러싼 정부와 빅테크의 갈등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작년 영국 의회는 아동 성 착취에 대한 메시지를 강제로 열람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했다. 사실상 종단 간 암호화 기술을 폐기하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와츠앱·시그널·애플 등은 영국 시장에서 철수하겠다고 맞섰다. 이들은 “보안 서비스의 질을 떨어트리느니 차라리 서비스를 안 하겠다”고 했다. 사용자들 사이에서 ‘개인 정보를 침해할 수 있다’는 비판 여론도 거셌다. 영국 의회는 작년 9월 이 법을 통과시켰지만 암호화 기술 폐지를 강제하는 내용은 빠졌다. 대신 정부가 불법 콘텐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을 기업에 개발하도록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그래픽=김현국

빅테크와 정부 간 갈등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유럽연합(EU)은 플랫폼 내 미성년자 성착취물 탐지 의무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역시 암호화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암호화되기 전 메시지 작성자의 동의를 받아 살펴보는 방안 등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는다.

수사 당국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애플이 종단 간 암호화 기술을 2022년 도입하자,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아동 범죄부터 마약 밀매, 테러에 이르기까지 미국 국민을 범죄 행위로부터 보호하는 우리의 수사 능력을 방해한다”며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유럽연합 경찰 기구인 유로폴도 “기술 플랫폼에서 발생하는 모든 위법 행위를 보지 못하게 되고 증거를 수집하는 능력도 중단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암호화 기술 때문에 수사를 못하는 경우는 빈번하다. 브라질에선 경찰이 와츠앱에 마약 밀매 조직과 관련된 메시지를 공개하라고 수차례 요청했지만, 페이스북이 거부했다. 결국 브라질 경찰은 페이스북 현지 임원을 수사 방해 혐의로 체포했다. 와츠앱 측은 “암호화된 메시지를 저장하지 않는다”며 항변했다. 2017년 영국 런던 테러 때도 범죄자들이 와츠앱 메신저를 사용했는데, 와츠앱은 암호화 메시지 접근을 허용해달라는 정부의 요청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빅테크들은 암호화 기술을 둘러싼 논란이 어떻게 진행될지 예의 주시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실리콘밸리 기업 경영진들은 두로프 사건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며 “암호화에 대한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면,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보안 메시지를 옹호하기 위한 목소리를 본격적으로 낼 것”이라고 했다.

☞종단 간(End-to-End) 암호화

메신저에서 메시지를 보낸 사람과 받는 사람만 내용을 알 수 있도록 된 보안 기술. 메시지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암호화되기 때문에 서버에 대화 내용이 전혀 남지 않는다. 수사를 위해 서버를 들여다봐도 내용을 알 수 없어 범죄자 추적이 어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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