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사고’ 이후 탈원전 국가들, 독일 빼고 줄줄이 원전 유턴

강다은 기자 2024. 8. 31.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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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신규 건설 위해 법 개정
“원전 포기는 미래 세대 배신”

수력발전 의존도가 50%가 넘는 ‘친환경 에너지 강국’ 스위스도 탈원전 정책을 철회했다. 29일(현지 시각) AFP통신에 따르면 알베르트 뢰스티 스위스 에너지부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신규 원전 건설을 허용하는 내용의 원자력법 개정안을 올해 말까지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뢰스티 장관은 이날 “원자력발전소는 우리의 공급을 더욱 안전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며, 이 선택지를 유지하지 못하는 것은 미래 세대에 대한 배신”이라 밝혔다.

앞서 스위스는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의회에서 원전을 단계적으로 중단하기로 결정한 뒤 2017년 국민투표로 신규 원전 건설을 금지했다. 이후 가동 중인 원전 4기를 안전 검사 연한이 차면 폐쇄하기로 했으나, 지난해 11월 계획 수명을 늘려 가동 연한을 2040년까지로 연장한 데 이어 신규 원전 건설까지 나서기로 한 것이다. 뢰스티 장관은 “원전 신규 건설이 15년 뒤 필요하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며 “2050년 탄소 중립 목표를 위해서도 다양한 기술을 포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픽=송윤혜

스위스뿐만이 아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탈원전’을 선언했던 국가들은 최근 앞다퉈 ‘탈(脫)탈원전’으로 돌아서고 있다. ‘탄소 중립’을 위해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이 쉽지 않은 국가에서는 현실적으로 원전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에너지 대란’, 데이터센터·AI(인공지능) 붐에 따른 전력 수요 폭증 상황은 탈탈원전을 가속화했다. 재생에너지 발전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을 가진 나라나, 원전 비중이 원래 적었던 국가까지도 안정적이고 값싼 에너지인 원전을 찾는 것이다. 원전 운영을 축소·폐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던 주요국 중 사실상 독일만이 탈원전을 유지하고 있고, 대부분의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발표하고, 폐쇄 예정이던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고 나섰다.

전 세계적으로 ‘탈탈원전’ 바람이 불고 있다. 특히 ‘탈원전’에 가장 앞장서며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려오던 유럽 국가들이 최근엔 거꾸로 “원전이야말로 안정적이고 친환경적인 에너지”라며 적극 장려하고 나섰다. 원자력발전소를 모두 폐쇄하고 탈원전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주요국 중 독일이 유일하며, 대만조차도 최근엔 블랙아웃(대정전) 위험에다 TSMC 등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전기가 갈수록 더 많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탈원전 반대 여론이 커지고 있다.

◇'탄소 중립’ 달성, 전력 수요 급등… 한꺼번에 해결하는 ‘원전’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주요국들은 신규 원전 건설을 금지하고, 기존 원전을 폐쇄하거나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정책을 시행해왔다. 독자적인 대형 원전 기술을 가지고, 수출도 하는 ‘원전 강국’ 프랑스조차 “원전 의존도를 줄여 2035년 원전 비율을 75%에서 50%로 낮추겠다”고 했었다. 원전의 빈자리는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으로 충당하겠다며 공격적으로 재생에너지 산업을 육성하기도 했다.

이런 흐름을 뒤바꾼 것은 ‘탄소 중립’ 달성 목표다.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공급받으면서도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무탄소’ 에너지인 원전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이 점차 힘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와중에 2022년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액화천연가스(LNG) 등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수입해오던 유럽 국가들은 에너지 정책 전반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러시아가 봉쇄되면서 당시 유럽으로 향하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이 봉쇄되자 국제 가스 시장의 수급이 요동치면서 유럽은 말 그대로 ‘혹독한 겨울’을 보내야 했다. 전 세계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고, 값이 싸고 날씨나 자연 조건, 국제 정세 등에 영향을 받지 않는 원전의 우수성이 새롭게 재평가됐다.

설상가상으로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의 발달과 데이터센터, 전기차 증가에 따라 전 세계 전력 수요는 급증하고 있었다. 탄소 중립과 전력 수요 증가라는 두 가지 과제에 직면한 주요국의 탈탈원전 흐름은 가속화됐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6년 전 세계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전력량은 인구 1억2000만명인 일본이 한 해 동안 쓰는 전기량(939TWh)과 같아진다. 2040년이 되면 전 세계에서 한 해 판매되는 전기차가 소비하는 전력량만 1GW(기가와트)급 원자력발전소 40개를 돌려야 하는 수준으로 늘어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 주요국 ‘탈탈원전’ 움직임… 독일만 ‘유일’ 탈원전 유지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는 가장 발 빠르게 탈원전 정책을 폐기했다. 2017년 마크롱 대통령이 당선된 뒤 원자력 의존도 50% 달성 목표 시기를 기존의 2025년에서 2035년으로 늦추는 등 원전 정책이 재검토되기 시작했고, 2022년 2월 발표한 ‘에너지 정책 방향’에는 신규 원전 개발 계획이 담겼다. 운영 중인 원전 56기의 수명을 60년 이상 연장할 것을 검토하고 2050년까지 6~14기의 원자로를 시운전한다는 내용이다. 이탈리아는 지난달 ‘2050년까지 전체 전력 소비량의 11% 이상을 원전에 맡길 것’이라고 밝히며 원전 재도입을 공식화했다. 벨기에 역시 2022년 기존 원전을 10년 연장 운영하겠다고 밝히며 탈원전 정책을 철회했고, 스웨덴도 국민투표로 ‘단계적 탈원전’이 결정된 이후 약 43년 만인 지난해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이 발표했다. 아시아에서도 우리나라와 함께 일본이 탈원전 정책을 폐기했다.

탈원전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나라는 극소수다. 주요국 중 사실상 독일만이 지난해 4월 당시까지 가동 중이던 원전 3기를 모두 폐쇄하는 등 탈원전을 유지하고 있다. 대만은 ‘2025년 탈원전 달성’이란 목표를 이행하고는 있지만, 정책 유지와 폐기 사이에 고민이 깊다. 자원이나 재생에너지 발전에 유리한 자연 조건이 없어 한국처럼 에너지의 대부분을 수입하고 있는 데다가 원전을 폐쇄할 경우 세계 최대 파운드리 TSMC의 경쟁력도 저하될 것이란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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