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전 부담에…이란은 '대리전' 이스라엘은 '핀셋 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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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사태 둘러싼 각국의 속내
중동에서 확전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지난 25일 새벽(현지시간) 전투기 100대를 동원해 레바논 남부의 이슬람 시아파 무장 정파 헤즈볼라 거점을 타격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헤즈볼라가 이날 오전 5시 약 3000발의 미사일·로켓과 드론으로 이스라엘 북부 국경지대를 대거 타격하려고 했지만, 이스라엘이 선수를 쳤다고 보도했다.
앞서 하마스 수장 이스마일 하니예는 지난달 테헤란에서 폭탄 공격으로 숨졌다. 이스라엘 소행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동 내 군사적 충돌이 확대되는 분위기다. 관련국들의 속셈과 전략을 분석해봤다.
◆이란=테헤란 측은 지난달 31일 열린 마수드 페제시키안 신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던 하니예 하마스 정치지도자가 숙소에서 폭사하자 ‘고통스러운 보복’을 천명했다. 하지만 이란은 사건 발생 한 달이 지나도 별다른 보복을 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이스라엘과의 거리는 1000㎞가 넘는다. 직접 공격하기엔 전투기는 물론 미사일·드론으로도 부담스럽다. 이란은 시리아 다마스쿠스 주재 자국 영사관 폭격을 보복한다며 이미 지난 4월 탄도미사일 등 수백발을 이스라엘로 발사했지만 대부분 중간 요격됐다. 실제 군사 행동의 폭이 크지 않다는 의미다.
이외에도 미국 등 서방의 경제 제재도 대이스라엘 확전을 어렵게 한다. 확전을 할 경우 경제난으로 가뜩이나 힘든 경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켜 국내 여론이 크게 나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이란의 군 통수권자는 국민이 선출한 임기제 대통령이 아니라 이슬람 시아파 성직자들이 뽑은 종신제 최고 지도자(라흐바르)라는 점이다. 지난 7월 31일 온건파 마수르 페제시키안이 대통령에 취임했지만, 군사 행동의 최종 결정은 최고 지도자인 알리 하메네이의 몫이다. 이란이 여전히 어디로 튈지 짐작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다.
◆미국=확전 방지는 물론 가자전쟁 종식을 위한 협상 중재에 적극 나서고 있다. 조 바이든 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확전은 오는 11월 대선에 분명한 악재이기 때문이다. 미국 내 곳곳에서는 친팔레스타인 시위가 이어지고 있고, 이탈하는 민주당 지지자들도 적지 않다. 국제사회에서는 가자지구 민간인 피해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지난 25일 이스라엘의 헤즈볼라 공습을 보면 바이든 정부를 감안해 조심스럽게 행동한 흔적이 보인다. 100대의 전투기가 출격했는데 이날 헤즈볼라는 사망자가 6명이라고 발표했다. 이 발표가 크게 틀리지 않는다면, 이스라엘은 공습 목표물 주변의 ‘부수적 피해’, 즉 민간인 사상을 최소화하고 군사 목표물만 때리는 정밀타격을 했다는 의미다.
◆이스라엘=역시 이란과의 확전을 꺼리고 있다. 지난해 10월 7일 시작된 하마스와의 전쟁이 10개월을 넘어서면서 동원된 30만 예비군을 비롯해 국민의 상당수가 전쟁 피로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최근 4만 명을 넘어선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 사망자도 큰 부담이다.
이런 상황에서 벌어진 헤즈볼라에 대한 예방적 선제타격은 지난해 10월 하마스의 기습을 예방하지 못한 데 대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정치적 부담을 덜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AP통신 등 외신들은 “네타냐후 총리의 입장에선 적절한 수준의 긴장감을 주는 대치 상태가 정권 유지에 유리할 것”이라며 “특히 국내 강경 보수파를 달래기 위해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대결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네타냐후는 앞으로도 ‘하마스 근절’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전쟁을 지속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더욱 높일 것으로 보인다.
◆하마스·헤즈볼라=하마스는 정치지도자 하니예가 지난달 테헤란에서 폭탄으로 숨지면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하마스 지도부 자체가 절멸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현재로썬 생존이 가장 큰 과제가 됐다. 종전 협상에서 이스라엘군의 완전 철수를 주장하는 이유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헤즈볼라는 지난 25일 야심적인 기습 작전을 펼치기 불과 몇 시간 전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김이 빠졌다. 하지만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는 이날 레바논 TV에 나와 “1차 보복을 끝냈다”고 말했다. 당장 추가 공격은 없다는 의미다.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는데도 자제하는 모습에서 헤즈볼라의 속내를 읽을 수 있다. 4만~12만 발이나 되는 로켓을 비축하고 있는 헤즈볼라의 침묵이 이어지고 있지만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불안한 침묵이다.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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