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앱도 끊은 61세 곱창집 주인 "살다 살다 일매출 꽁친 건 처음" [벼랑 끝 내몰린 자영업자]

신수민 2024. 8. 31.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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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이달 17일 찾은 서울 서대문구의 폐업한 한 가게에서 철거공사가 한창이다. 신수민 기자
“탕, 탕, 탕.” 주말 이른 아침 지하에서부터 들려오는 망치질 소리가 적막을 깼다. 지난 17일 오전 8시 서울 서대문구 지하상가의 한 점포. 인부들이 인테리어 자재와 유리문 등을 철거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경구 H철거업체 사장은 “그래도 여긴 폐업한 뒤 철거해 다행이지, 폐업하고 싶어도 못하는 곳이 수두룩하다”며 “폐업 신고를 하면 빚을 일시 상환해야 하는데 갚을 수가 없으니 상담까지 해놓고 정작 문을 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울며 겨자 먹기 영업 ‘좀비 사장’ 많아
서울의 한 전통시장 가게 앞에 폐업 안내문이 적혀 있다. [연합뉴스]
상가 1층 공실 앞에 붙은 ‘임대 문의’ 딱지도 산더미처럼 쌓인 폐기물에 가려 있었다. 상가관리소장은 “1층 카페도 2주 전에 문을 닫았다. 배달 오토바이도 쉴 새 없이 오가 장사가 잘되나 싶었는데 올 들어 부쩍 힘들어하더니 결국 버티지 못하더라”며 고개를 저었다. 실제로 상가 주변 거리를 둘러보니 철거된 공실만 10곳이 넘었다.

“20년 장사했지만 살다 살다 꽁(매출 0원)친 건 처음이야. 코로나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요.” 서울 용산구 해방촌 골목에서 9년째 곱창 가게를 운영 중인 문모(61)씨는 “손맛이 좋다고 소문나서 단골도 꽤 있었는데, 코로나 때 어퍼컷 맞고 빚더미에 훅을 얻어맞은 뒤 휘청이다 고금리에 그냥 케이오(KO)되고 말았다”며 애써 쓴웃음을 지었다. 오토바이 한 대 없는 가게 앞을 쓸던 문씨는 “배달 수수료라도 줄여보려고 배달앱마저 끊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폐업 자영업자 100만 명 시대.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터널 속에서 더는 버티지 못하고 가게 문을 닫는 자영업자가 지난해에만 98만6000명으로 1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폐업이 속출하면서 지난해 정부의 소상공인 점포 철거 지원비도 488억원으로 2년 새 두 배 이상 급증했고 올해도 상반기에만 271억원이 지원됐다. 최근 개업 2년 만에 카페 문을 닫은 김모(35)씨는 “코로나 팬데믹이 지나면 손님이 다시 몰릴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다. 고물가에 이자까지 오르니 사람들이 지갑을 닫는 게 눈에 훤히 보이더라”며 고개를 떨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새롭게 자영업에 뛰어드는 사람도 갈수록 줄고 있다. 국세청 집계 결과 신규 자영업자는 2020년 151만9000명에서 지난해 127만5000명으로 매년 감소하고 있다. 그러면서 신규 대비 폐업 자영업자 비율도 58.9%에서 77.3%로 대폭 증가했다. 폐업은 늘어나는데 새로 문을 여는 자영업자는 줄어들면서 지난해 처음으로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중도 20%를 밑돌았다. ‘자영업 전성시대’는 옛말이 된 셈이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신규 사업자가 줄자 당장 철거업체와 중고 기기업체에도 불똥이 튀었다. 지난 주말 찾아간 경기도 안산시 주방 중고 기기업체에도 싱크대와 회전식 가마솥 등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업체 관계자는 “예전엔 폐업이 늘면 중고 기기업체는 활황이곤 했는데 지금은 도무지 개업을 안 하니 재고만 늘고 있다”며 “어쩔 수 없이 돈 되는 물건 위주로 골라서 받고 있는 중”이라고 전했다.

더 큰 문제는 폐업 신고를 하지 않아 공식 통계엔 잡히지 않지만 사실상 장사를 접은 상태인 ‘좀비 자영업자’들이 상당수라는 점이다. 통상 폐업 신고를 하면 대출금을 일시 상환해야 하는데 당장 변제할 능력이 없다 보니 폐업조차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성원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사무총장은 “수익이 나질 않다 보니 빚으로 빚을 갚고 있는 실정”이라며 “사업자 대출은 매출이 현저히 적으면 추가 대출도 안 돼 2·3금융권의 고금리 상품까지 끌어다 쓸 수밖에 없는 지경에 내몰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나이스평가정보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개인 자영업자들이 금융권에서 빌린 대출액은 1119조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연체자도 2분기 현재 13만 명을 넘어섰고 연체 대출금도 27조원에 달했다. 한 달 전 결국 카페를 내놨다는 이금순(45)씨는 “코로나 거리두기 정책 때 저금리 대출을 받아 겨우 버텨 왔는데, 골목 경기는 여전히 바닥인 상황에서 이자는 계속 오르니 빚을 갚기도 벅찼다”며 “아직도 남은 빚이 4000만원”이라고 토로했다.

당장 손에 쥐어지는 현금이 없다 보니 ‘자영업자 퇴직금’으로 불리는 중소기업중앙회 노란우산 공제금까지 중도 해약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2022년 4만4000건에서 지난해엔 7만1000건으로 1년 새 61%나 급증했다. 여기에 만만찮은 폐업비용도 자영업자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폐업에 드는 비용은 평균 1558만원. 폐기 비용(33%)이 가장 많지만 점포 원상복구비(21.1%)와 임대료 미납액 지출(14.7%)도 만만찮다.

폐업 비용 1558만원, 기간도 1년 걸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폐업을 결심해도 미납 임대료 정산 등 여러 절차를 마무리하다 보면 실제로 점포 문을 닫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리는 게 현실이다. 공단 조사에서도 평균 11.9개월에 달했다. 자영업을 완전히 접을 때까지 1년은 더 돈 가뭄을 버텨야 하는 셈이다. 정부가 지난달 소상공인·자영업자 종합 대책을 내놨지만 폐업하고 싶어도 못하는 이들 자영업자에겐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고정비용 증가→매출 부진→거듭된 대출’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자영업자 출구전략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임채운 서강대 명예교수는 “코로나에 고물가·고금리가 겹치면서 자영업 자체가 힘들어진 상황이란 점에서 기존의 자영업 구조조정과는 다르게 접근해야 할 문제”라며 “단기적으로 대출 회수금 유예나 이자비용 최소화 방안도 검토해야 할 때”라고 진단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좀비 자영업자가 늘면 경제 전반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며 “적어도 코로나 방역 지침 준수를 위해 빚을 내서 버틴 자영업자에겐 정부가 정책적 지원을 통해 탈출구를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신수민 기자 shin.su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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