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스 찬조연설자로 40대 대거 등장, 세대교체 힘 실렸다

2024. 8. 31.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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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의 미 대선 워치] 민주당 전당대회 참관기
민주당 대선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22일 시카고 전당대회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해리스는 이날 후보 수락 연설을 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민주당에 시카고는 매우 특별한 도시다. 변화와 승리, 그리고 상처가 함께 서린 곳이다. 민주당은 1968년 시카고에서 전당대회를 치르면서 대대적인 개혁을 일궈냈다. 베트남전 반대 시위로 전당대회장 밖에서는 유혈사태가 벌어져 ‘피의 전당대회’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대통령 후보가 당원들의 손에 의해 선출되는 예비선거제가 자리 잡았다. 당내에서 기득권을 쥐고 있던 백인과 남성들의 힘이 약해졌고, 젊은 개혁가들과 활동적인 여성들의 영향력이 커졌다. 시카고는 민주당에 영광의 도시이기도 하다. 1996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재선을 위한 대통령 후보로 지명될 때 민주당원들은 다시 시카고에 모였고, 클린턴은 그해 대선에서 대승을 거뒀다. 2008년에는 버락 오바마가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것을 축하하는 행사가 시카고 그랜드파크에서 열리기도 했다.

미시간주 팔레스타인계 표심 위협적
이처럼 개혁을 이끈 베이비붐 세대는 어느덧 민주당의 중심을 차지하게 됐고, 이들도 점점 권력에 안주하게 됐다. 1960년대 민권운동, 1970년대 반전운동과 여성운동에 참여했던 활동가들은 점점 경제적으로 부유해졌고 막강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세대교체를 꺼렸다. 실제 빌 클린턴, 힐러리 클린턴, 조 바이든, 낸시 펠로시, 찰스 슈머, 짐 클라이번, 버니 샌더스 등 민주당의 노인 지도부는 여전히 건재하며 실세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이후 민주당은 젊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노쇠해졌다. 2016년 오바마가 55세로 대통령을 퇴임했을 때 민주당 대선후보가 힐러리 클린턴이 아닌 좀 더 젊은 인물이었으면 민주당의 분위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현재 민주당 대선후보로 나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조 바이든 대통령보다 20년이나 젊다고 하지만 그의 나이도 60세나 된다.

피트 부티지지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의 슬로건은 “We are not going back(우리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다)”이었다. 트럼프 집권 시절로 되돌아가지 않겠다는 뜻도 있지만, 여기엔 세대교체를 이루자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 사실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의 중요한 의미 중 하나는 세대교체라고도 볼 수 있다. 노인 지도부가 젊은 피 수혈을 막았지만, 바이든의 TV 토론은 급반전의 계기가 됐다. 전당대회 첫날 등장한 바이든 대통령에게 온갖 찬사를 보낸 것도, 자진 사퇴를 결심한 바이든 달래기를 통해 순조로운 세대교체를 이루려는 민주당의 전략이라는 분석도 있다. 다행스럽게 이번 전당대회에서는 60세의 해리스 후보의 찬조연설자로 40대의 차세대 지도자들이 대거 등장했다. 피트 부티지지, 크리스틴 휘트먼, 조시 샤피로, 앤디 김 등으로 이들은 민주당의 개혁을 이끌어갈 새로운 인물들이다. 특히 한국계인 앤디 김은 이번 전당대회 연설자로 등장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더욱 단단히 다졌다. 오는 11월 연방 상원의원 당선은 물론 나아가 차기 대선 후보군에도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조시 샤피로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불상사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반전시위 때문이다. 올해 초 미국 전역의 대학가에 불어 닥친 팔레스타인계의 반이스라엘 시위는 올 선거판의 주요 쟁점이 됐다. 바이든 정부의 일방적인 이스라엘 지지정책에 대한 격렬한 반대 목소리다. 2020년 미 전역에 들불처럼 확산된 ‘흑인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시위와 마찬가지로(당시 진보적인 시민단체들과 젊은이들이 BLM운동에 참여하면서 시위에 가세했다) 진보적 시민조직들과 밀레니엄 세대인 젊은 층이 반이스라엘, 친팔레스타인 시위대에 합류했다. 이들은 바이든 정부에 압력을 가하기 위해 가장 치열한 대선 경합주에서 유권자 등록, 선거 참여 운동 등을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다. 조지아주, 미시간주, 미네소타주 등에서는 친팔레스타인계 유권자들이 결집해 바이든 지지 철회 운동을 벌이고 있다. 사실 미세한 차이로 승패를 좌우하는 경합주에서의 지지표 이탈은 치명적이다. 이를 노려 시위 주동자들은 대학들이 방학에 들어가자 ‘8월 시카고 전당대회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민주당과의 정면 승부를 선언했다. 1968년 피의 전당대회와 유사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앤디 김
200여 개의 크고 작은 진보단체들이 시카고에 집결해 친팔레스타인 시위대와 함께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시위대와의 충돌을 최대한 피하면서 오히려 시위를 보장해주는 방식으로 대처했다. 전당대회 기간 중 빈번하게 시위가 벌어졌지만, 다행히 주목할 만한 폭력 사태는 없었다. 해리스의 대선후보 수락 연설 중에도 고함이 들리긴 했지만, 저항이 아닌 존재의 알림 정도였다.

하지만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미시간주에 몰려있는 팔레스타인계 표심이 해리스에게 여전히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선거인단 19명을 보유한 미시간주는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이 1만5000표 차로 승리했고, 2016년엔 트럼프가 1만700표 차로 이긴 곳이다. 그만큼 박빙 지역이다.

“일희일비 말라” 클린턴 조언 기억해야
이번 대선의 주요 관심사 중 하는 첫 여성 대통령의 탄생 여부다. 그러나 정작 해리스 측은 여성을 강조하는 선거전략을 피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이 찬조연설에서 “저 유리천장 반대편에는 해리스가 손을 들고 미국의 47대 대통령으로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리스는 이에 호응하는 대신 자신의 어머니가 말한 “무엇이든 되고 무엇이든 하라”는 가르침을 소개했다. 또 “정당, 인종, 성별 또는 할머니가 사용하는 언어에 관계없이 모든 미국인을 대신하겠다”고도 강조했다. 여성보다는 보편적 미국인들을 표심을 사로잡겠다는 의도다.

이에 힘입어 해리스는 도널드 트럼프에게 지지율이 줄곧 밀렸던 바이든과 달리 일부 경합주에서 앞서는 등 상당히 선전하고 있다. 상당히 고무적인 상황이지만 전당대회 셋째 날 찬조 연설자로 나선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조언은 기억할 만하다. 그는 “변덕스러운 여론조사에 일희일비하지 마라”면서 “지금의 기세가 승리를 가져다주지는 않는다”고 경계했다. 그러면서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여론조사에서의 압도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실전에서 패배한 것을 상기시켰다. 또 트럼프를 이기려면 그의 ‘허황된 날조(fabrications)’가 아닌 ‘나르시시즘(narcissism)’에 초점을 맞추라고 충고했다.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는 날조보다 나르시시즘이 훨씬 공략하기 쉽다는 의미다.

이번 전당대회의 클라이맥스는 역시 해리스의 대선후보 수락 연설이었다. 후보 수락 연설에서 해리스가 명료하게 보여준 것은 자신감과 원칙이었다. 해리스는 국가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인 다양성(diversity), 평등(equality), 포용(inclusion)을 어우르는 후보임을 강조했다. 그가 연설에서 자신의 삶과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잔잔하게 풀어낸 것도, 그 자체가 미국인들의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해리스 선거캠프의 총 책임자인 오말리 딜론은 “유권자들이 해리스가 부통령인 것은 알아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스토리를 갖고 있는지, 어떤 지도자가 될지는 잘 모른다. 후보 수락 연설은 여기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해리스를 숨겨진 인물에서 영웅으로 변신시키는 것이 앞으로의 선거 전략”이라고 했다. 그러나 해리스에겐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해리스는 미국을 파괴할 공산주의자”라고 맹비난을 하고 있는 트럼프의 선거전략도 만만찮다. 딜론의 말처럼 해리스가 영웅적인 지도자로 변신할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가 학업을 마치고 1996년 한인유권자센터를 설립해 한국계 교민·교포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활동해 왔다. 2008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대선 캠프에 참여하는 등 워싱턴 정계에 인맥이 두텁다. 한·미관계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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