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재능 없나...” 의심하던 양궁 소녀는 올림픽 3관왕이 됐다

배준용 기자 2024. 8. 31.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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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라운지] 파리올림픽 3관왕 양궁 국가대표 임시현 인터뷰
항저우(아시안게임) 3관왕에서 파리(올림픽) 3관왕까지. 세계 최강 한국 여자 양궁 안에서도 새로운 업적을 써내려가는 임시현. 그는 마음을 다스리는 정신적 무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진은 지난 3일 2024 파리 올림픽 개인전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들어 보이는 모습. /고운호 기자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난 소녀는 그저 달리는 게 좋았다.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쫓아 ‘헥헥’하며 달리면 숨이 차는 느낌과 온 몸에 근육이 불룩불룩 솟는 느낌이 마냥 좋았단다. 축구부를 꿈꾸던 소녀는 아버지의 권유로 양궁을 시작했고, 양궁으로 중학교에 갔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진학할 고교조차 찾지 못했다.

소녀는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서울체고 입학 시험을 봤고, 어찌된 일인지 시험날 평소보다 30점 높은 점수를 쐈다. 그때부터 날개를 핀 소녀는 대회에서 상을 타기 시작하더니 국가대표까지 선발됐고, 불과 스물 한살에 세계 최고 선수가 되어 아시안 게임 3관왕과 올림픽 3관왕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한국체대 3학년에 재학 중인 여자 양궁 국가대표 임시현이다.

임시현이 재학 중인 서울 송파구 한국체대 정문에는 임시현의 3관왕을 알리는 대형 현수막이 큼지막히 붙어있었다. 한국체대 양궁장에서 만난 임시현은 “후배들도, 선배들고 가끔 알아보고 사진도 찍어달라고 해줘서 신기하다”며 수줍게 웃었다.

◇”10연패 부담 컸지만...깜냥 안되면 올림픽 나갈 수 없더라”

-3관왕을 달성한 소감이 궁금하다.

“작년부터 스스로 높은 기량을 계속 유지한다고 생각했었는데 2년 동안 쭉 유지해서 여기까지 온 걸로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온 것 같아 뿌듯하다. "

-여자 양궁 단체 10연패를 달성하는데 부담을 많이 느꼈다고.

“처음엔 크게 의식하지 않았고 심지어 훈영 언니(전훈영)는 이번이 10연패 도전이라는 걸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올림픽 전 국제대회, 월드컵에서 실적이 안나올 때마다 ‘불안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재네 왜 저러냐’ ‘국대 맞냐’ ‘그 전 국가대표 선수들 데려와라’ 같은 댓글도 많았다. 각자 다른 소속팀에 있다가 대표로 선발되어서 4개월 만에 호흡을 맞춰야 하니 (그런 여론이) 많이 힘들었다. 그때부터 ‘마냥 긍정적으로 도전하기에는 너무 큰 무대구나’라는 생각도 들고 책임감이 많이 필요한 자리라는 걸 느꼈다.”

-10연패도 사실 부담이 컸을텐데 해냈고, 다음 번엔 11연패 얘기가 나올 거 같은데.

“이번에 올림픽 하면서 ‘정말 정말 실력으로 인증된 사람이 그 무게를 견딜 수 있다’는 걸 이번에 너무 많이 느꼈다. 그런 부담을 이겨낼 깜냥이 안되면 올림픽은 나갈 수도 없고 안나가는 게 맞다. 그래도 다시 도전하고 싶다. LA 올림픽에 출전한 기회가 생기면, 또 준비한다 생각하니 쪼금 아찔한데(웃음).”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매 순간이 다 기억이 난다. 그래도 꼽으라면 여자 단체전이 이번 올림픽에서 첫 스타트였고 심리적으로 되게 불안정한 느낌이었다. 바람도 읽기가 어렵고. 그런데 저는 평소 ‘메달 딸 운명이면 뭐 어떻게 되든 메달을 딸 것’이라 생각이 있어서 다시 ‘그래 메달 딸 운명이 나다’라고 생각했다. 10연패를 꼭 하겠다고 말을 하고 나왔는데, 사실 스포츠 자체는 결과가 정해져있지 않으니까. 그걸 이루는 게 진짜 어려운 일이더라. 단체전에서 금메달에 딱 성공했을 때 너무 감격했고, 힘들었던 게 다 생각나고 특히 훈영 언니가 막 우는게 보이니까...”(임시현은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지며 눈물을 그렁거렸다.)

임시현./대한양궁협회 제공

◇”나 양궁에 재능 없나...” 스스로 의심했던 소녀의 대반전

-양궁은 어떻게 시작했나.

“원래 축구를 좋아했다. 그래서 축구로 전학까지 생각을 했는데 원래 다니던 초등학교에 야구부가 있었다 없어지면서 양궁부가 생겼다. 아버지가 축구는 훈련이 너무 힘들고 제가 원래 활발하고 난리법석인 성격이라 양궁을 해보는 게 어떻냐고 권유하셨다. 처음엔 저도 ‘네? 활이요?’하면서 놀랐는데 친구들과 같이 연습하는 게 좋아서 초등학교 3학년 때 시작해 계속하게 됐다.”

-올림픽 3관왕이면 뭔가 타고난 소질이 있었을 거 같은데.

“중학교까지 양궁을 진학을 했는데, 정말 너무 못쐈다. 고2가 되기 전까진 실적이 하나도 없었다. 노력을 하는데 결과는 그 반에 반도 안나오니 지쳤다. 스스로 ‘재능이 없나 보다’ 생각했고, 잘하고 싶은데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니 슬펐다. ‘그만둬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선수처럼 고교 진학 때 낼 성적, 실적이 없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온건가.

“가능성이 없어보였는데 서울체고는 입학 시험을 보면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당시 코치님이 권유하셨다. 여기서도 안되면 미련없이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으로 시험을 보러 갔는데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정말 한발 한발 대충 쏠 수 없었고 집중이 되더라. 연습 때보다 기록이 30점 정도 잘 나와서 입학에 성공했다. 그게 제 인생에 양궁으로서 첫 성공이었다. 그 이후부터 기량이 더 늘면서 메달도 따고 대표팀도 한번 다녀왔고, 대학와서 대표팀에 들어가면서 여기까지 오게 됐다.”

-특출난 재능은 없었던건가.

“김제덕이나 안산 언니를 보면 그냥 ‘와 재능이다’ 싶을 정도로 잘 쏘더라. 그걸 보면서 ‘그래, 나는 재능이 부족하니까 연습으로 메꾸는 거지’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연습량을 늘리니 기량이 정말 확실히 올라가는게 체감됐다. 그 생각으로 훈련한 덕분에 3관왕까지 할 수 있었던 거 같다.”

-중학교 때는 왜 성적이 안나왔던 거 같나.

“중학교를 원주로 가면서 숙소 생활을 했는데 엄마를 못 보니까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심리적으로 불안정했던 거 같다. 양궁에 대해 재미보다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진짜 많이 했고, 그러면서 회피형 인간이 된 거 같다. 타이트한 경기를 하면 ‘아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궁은 정말 자신과의 싸움인데 그렇게 회피하는 제 모습이 어느 순간 진짜 꼴보기 싫었다. 어느 순간부터 ‘이럴 거면 연습을 왜 했냐. 뭐가 돼든 도전하고 실패하면 마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잘 풀어나간 거 같다.”

프랑스 파리 레쟁발리드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전 시상식에서 나란히 금메달을 차지한 임시현이 '바늘 구멍' 포즈를 취하고 있다./올림픽사진공동 취재단

◇양궁의 매력? “‘화살에 대해 완벽한 통제감’을 느끼는 순간”

-양궁은 정말 마인드 스포츠인 거 같다.

“맞다. 아무리 자세가 완성되어도 마음이 불안하면 절대 성적이 안나온다. 반대로 자세가 불안정해도 마음이 잡히면 시합 중간에라도 감이 잡힌다고 믿는다.”

-양궁의 매력이 무엇인가.

“장비를 이용해 결과를 만드는 종목이라 변수가 되게 많다. 그런데 그 화살에 대해 완벽한 통제감을 느낄 때 정말 ‘미쳤다!’ 생각이 들 정도로 쾌감이 온다. 그냥 탁 시위를 놓으면 ‘10점이다’라는 느낌. 1년에 2~3번 정도만 오는 느낌인데. 그런 쾌감과 동시에 정말 타이트한 경기에서 와들와들 떨면서 긴장을 최고조로 찍은 경기에서 이겼을 때 오는 그 희열을 잊지 못한다.”

-그래도 연습을 너무 많이 하면 질릴 때도 있지 않나.

“쏘는 느낌이 매번 다르기 때문에 그 감을 찾아가면서 연습하면 질리진 않는다. 쏘자마자 ‘이거 10점이다’라는 감을 찾아가는 건데. 그걸 하다보면 저도 모르게 밤 10시까지 연습할 때가 많다. 물론 아침에 눈 떠서 밤 10시까지 매일 그렇게 연습을 1년 하면 정말 ‘미치겠다’ 말이 나올 정도로 힘들다. 밤 10시까지 연습하고 씻고 누우면 밤 12시인데, 아침에 학교가는 버스가 7시 20분에 오니 그 전에 일어나야 했다. 또 수업 듣고 점심 시간에 다시 운동하고 수업 듣고 밤까지 운동하고. 올림픽 준비하며 그걸 계속 반복했다. 꾸준함, 긍정적인 마인드를 유지하는 것도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선수들도 연습을 많이 하지 않나.

“어떤 선수는 연습을 너무 많이 하면 어깨가 아파서 질적으로 집중해서 훈련하고 쉴 땐 푹 쉬기도 한다. 생각해보니 부모님이 튼튼한 몸을 주셔서 훈련을 많이 할 수 있었던 거 같다(웃음). 여자선수 치고 키도 크고 어깨도 넓으니까 좀 더 강한 활을 쏠 수 있는 장점도 있는 거 같다.”

대한민국 양궁 대표팀 김우진, 임시현 /뉴스1

◇”나는 아직도 성장 중...믿음직하고 ‘더 큰 선수’ 되고파”

-혼성 단체전에서 김우진 선수가 ‘내가 10점 쏠테니 오빠 믿고 자신감 있게 쏴라’고 말해줬다던데.

“원래 롤 모델 없이 매 순간 제 자신을 이기자, 스스로 만족스러운 경기를 하자는 생각으로 왔다. 그런데 우진 오빠를 보면서 ‘내가 되고 싶은 선수의 모습이 저런 모습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진 오빠는 옆에서 보면 대표팀을 10년 넘게 한 이유가 있구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무엇보다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는 모습이 대단했다. 10점 쏴줄께 하면 10점을 쏘고. 이번 개인전은 금메달을 꼭 따고 싶다고 하더니 금메달을 따내더라. 그걸 보면서 ‘이게 정말 믿음직스러운 선수구나. 나도 믿음직스러운 선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되게 많이 했다.”

-올림픽 3관왕 실력이면 ‘믿음직한 선수’는 지금도 가능하지 않나.

“우진 오빠처럼 아직 그렇게 바로 한 말을 책임질 수 있는 실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고 생각을 많이 한다. 그리고 이번 올림픽을 겪으면서 그런 압박감도 즐길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좀 더 큰 선수’가 되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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