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권은 ‘소셜 믹스’에 기초해 강남을 계획했다
[김경민의 부트캠프]
주택가격 안정화가 부른 강남 高價 아파트들
이번 주에는 두 가지 질문에 답한다. 하나는 경기도에 거주하는 독자가 본인의 주택 가격이 오르지 않는 이유에 대해 물었고, 다른 하나는 인구 감소와 젊은 층의 가처분 소득 부족 상황에서 ‘퍼펙트 스톰(막을 수 없는 집값 상승)’ 가능성에 대한 것이었다.
먼저 글로벌 경제와 도시 경제(특히 부동산 시장)의 움직임에 대한 거시적 통찰이 필요하다. 서울은 글로벌 도시들의 일반적 움직임을 고스란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리처드 플로리다의 책 ‘도시는 왜 불평등한가’를 일독하기를 권한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 한 국가에서 뛰어난 역량을 가진 사람들의 소득은 같은 직종의 평균 수입보다 훨씬 더 빠르게 증가하고, 그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소득 불균형이 같은 직종에서도 심화된다. 예컨대 엄청난 수입을 올리는 연예인들이 선호하는 거주 지역은 제한적이다. 따라서 이들이 선호하는 ‘수퍼스타 도시’가 나타나는데, 그런 곳의 부동산 가격은 매우 빨리 오른다.
이 책은 팬데믹 전인 2017년에 나왔다. 즉, 2010년대 세계에서 부동산 가격이 미칠 듯 상승하는 수퍼스타 도시들이 이미 등장했고, 그 안에서도 초고가 지역들이 존재했다는 뜻이다. 이 경향은 팬데믹을 거치며 더 심화되고 있다. 팬데믹 기간에 엄청난 유동성이 시장에 풀렸으나, 일부 플랫폼 기업들만 큰 성장을 이뤘을 뿐 서민의 삶은 여전히 팍팍하다. 인플레이션과 함께 나타난 소득 불균형, 자산 불균형이 부동산 시장에도 반영되고 있다.
한국을 보면 수요가 몰리는 서울(과 인근 중산층 신도시)과 그렇지 않은 비서울의 문제다. 우리 부동산 시장 또한 모든 지역이 동시에 같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201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서울, 인천, 경기 사이에 가격 흐름이 달라졌다. 2016년부터 2019년 말까지 서울 아파트 가격은 급상승했으나, 인천·경기는 정체 상황이었다. 그때부터 이미 수도권 내에서 시장 분화가 일어난 것이다. 다만 2020~2022년에 역대급 초저금리 상황이 유지되며 유동성이 넘쳐나자, 팬데믹 기간에는 동반 상승하고 동반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2023년 엔데믹 이후, 수도권 시장은 다시 차별적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서울과 분당, 과천, 평촌 등 일부 중산층 지역은 가격 상승이 가파르나 다른 지역은 정체 상태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수요의 차이다. 두 번째 독자의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이전 연재에서 언급했듯이, 수요는 인구와 더불어 소득에 의해 결정된다. 서울시는 1990년대 초반부터 인구가 줄기 시작해 1000만 명이 무너진 지 오래됐지만, 서울 아파트 가격은 폭등했다. 서울시민의 소득 증가와 함께 서울로 진입하려는 대기 수요가 늘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필자가 언급한 ‘퍼펙트 스톰’의 가능성은 지방이 아니라 서울과 근교의 신도시를 지칭한 것이다.
오늘은 국가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독자의 지적처럼, 현재 우리 젊은 세대는 21세기 대한민국의 모든 세대 중 경제적으로 가장 어렵다. AI 시대에 직업들이 자동화됨에 따라, 이들의 소득이 앞으로 빠르게 증가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 그렇다고 모든 자산을 어른 세대가 독식한 채 “너희는 소득이 낮으니 임대주택에 살라”는 식으로 무대책이라면 제대로 된 사회나 국가라 할 수 없다.
소득이 낮은 계층이 주택을 소유할 수 있는 금융·정주 환경을 만들어야 좋은 국가다. 이 맥락에서 미국 부동산 시장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그 나라에서는 소방관, 경찰관, 군인, 교사 등 소득이 상대적으로 낮으나 지역 커뮤니티에 중요한 공헌을 하는 필수 인력들이 적정한 비용으로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 서울 강남구에서 근무하는 소방관·경찰관·교사가 그 커뮤니티에 기여하고 헌신함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가격에 비해 소득이 낮아 부동산 진입이 힘들다면 국가는 그 그룹에 더 강한 금융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필자는 1980년대 초반, 역삼동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당시 친구들 중에는 부모님이 하급 경찰관, 군인, 교사인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그 연장선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1970년대 강남이라는 거대한 신도시를 개발할 당시의 도시계획 철학이다. 박정희 정권은, 의식했든 안 했든, 역대 정권 중 가장 소셜 믹스(social mix)에 기초해 신도시를 기획했다. 1970년대 계획한 아파트 단지들, 현재 도곡렉슬 아파트는 당시 5층짜리 도곡아파트(시영아파트)였다. 현재 역삼동 일대 역삼래미안을 비롯한 아파트들은 5층짜리 서민 아파트들이었다. 송파구 엘리트(엘스, 리센츠, 트리지움) 1만5000가구의 전 모습은 서민들이 거주하던 5층짜리 주공아파트였다. 한때 최고가 아파트였던 반포자이 역시 서민아파트 지역이었다. 박정희 정권의 강남도시계획은 압구정동 일대의 고가 아파트(20~30평대가 다수 존재한다)와 더불어, 역삼동 일대의 고가와 중저가 아파트, 개포동 일대의 주공아파트, 잠실 일대의 주공아파트, 반포 일대의 주공아파트들이 적절히 혼합된 소셜 믹스 타운이었다.
그런데 국가 정책 목표 자체가 반(反)자본주의적인 ‘주택가격 안정화’로 바뀌면서, 박정희 정권의 소셜 믹스 전통은 사라졌다. 주택가격을 잡아야 하니, 고가 아파트 단지들로 강남이 채워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커뮤니티에 기여하지만 소득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들어설 턱이 없다.
자유시장경제의 원칙과 주거권 사이에 균형을 잡으면서, 제대로 된 주택정책 목표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시장의 자기조정기능을 믿어야 한다. 동시에 주거권과 소셜 믹스의 원칙을 국가가 어떻게 증진할지 모색해야 한다.
※부동산 트렌드에 대해 궁금한 점을 jumal@chosun.com으로 보내주시면 김경민 서울대 교수가 골라 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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