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10만원은 현수막 4장과 같다”던 송혜희 부친… 명복을 빕니다
[아무튼, 레터]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가슴팍에 뻐근하게 박힌 대사가 있다. 치명상을 입은 밀러 대위(톰 행크스)가 숨이 멎기 직전에 라이언 일병(맷 데이먼)에게 말했다. “잘 살아야 돼, 우리 몫까지.” 그것은 ‘꼭 살아서 돌아가라’는 당부가 아니었다. ‘죽는 날까지 헛되이 살지 말라’는 다짐이었다.
지난 22일 경기 부천의 호텔 화재 현장에서 김모(여·28)씨는 마지막 순간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호텔에 있는데 불이 났어. 더 이상 통화를 못할 것 같아.”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내 몫까지 잘 살아야 해.” 7층 객실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김씨는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숨졌다. 또 다른 희생자 A(남·25)씨가 어머니에게 보낸 마지막 문자는 “엄마 아빠 모두 미안하고 사랑해”였다.
부모에게 자식을 먼저 떠나 보내는 것보다 아프고 참혹한 슬픔은 없다. 참척(慘慽)의 고통이라 한다. “엄마, 내 몫까지 잘 살아야 해”라는 말을 듣고 통곡했을 부모의 마음은 감히 헤아리기 어렵다.
송길용(71)씨는 25년 전 어느 날 갑자기 딸(1981년생)을 잃어버린 아버지였다. 행방을 알 수 없는 실종. 그래도 아버지는 마지막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딸의 사진과 함께 ‘실종된 송혜희 좀 찾아주세요!!’라는 현수막을 전국에 걸고 다녔다. 당신에게 10만원이 있다면 뭘 하겠는가. 4년 전 만난 송씨는 “나한테 10만원은 현수막 4장 또는 전단 4000장과 같다”고 했다.
모두가 “집착을 그만 버리라”고 말려도 딸 잃은 아빠는 멈추지 않았다. 현수막을 걸고 전단을 돌려야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그래야 잠을 잘 수 있다고 했다. “지금 전국에 걸린 ‘실종된 송혜희 좀 찾아주세요’ 현수막이 300장입니다. 길목마다 ‘내 자식’이 붙어 있어요. 이걸 안 하면 나는 그냥 죽은 목숨이에요.”
송씨가 지난 26일 평택에서 교통사고로 눈을 감았다. 현수막을 달러 가는 길이었다고 한다. 생전에 그가 들려준 말이 떠올랐다. “제일 고마운 게 뭔지 아세요? 전국 어딜 가도 내 현수막은 함부로 떼지 않아요. 1년이든 2년이든 그대로 붙어 있습니다. 총선, 대선이 있어도 ‘내 자식’을 피해서 현수막을 겁니다. 그걸 보면서 생각해요. 다들 자식 키우는구나. 딸 잃은 부모의 애통한 심정을 헤아려주는구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잘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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