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모르는 가사 도우미는 왜 일가족 모두를 죽였을까
활자 잔혹극
루스 렌들 소설 | 이동윤 옮김 | 312쪽 | 북스피어 | 1만6800원
커버데일 일가의 독서량은 엄청나다. 마치 4인 가족 구성의 책 인플루언서를 보는 듯한데, 그 집에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가사 도우미가 들어간다. 이름은 유니스 파치먼. 어릴 때 글을 배울 기회를 놓쳤고, 이후로는 각종 속임수와 수완으로 문맹임을 감추며 살아왔다. 유니스에게 책은 ‘알 수 없는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작고 평평한 상자’인데, 그런 유니스가 하필이면 책으로 가득한 로필드홀에 입주하다니. 진짜 활자 잔혹극이 펼쳐지기도 전에, 유니스의 일상은 이미 활자 잔혹극이다.
커버데일 일가는 유니스가 문맹임을 상상하지도 못한다. 거기서 읽는 재미가 배가된다. 소설은 첫 문장부터 유니스가 커버데일 일가를 죽였고, 살해 동기가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때문’임을 밝혀둔다. 그걸 아는 채로 그들의 동거를 지켜보면 아슬아슬하다. 조지 커버데일이 유니스에게 전화를 걸어서 책상 위에 중요한 서류를 두고 나왔으니 찾아달라고 부탁하는데, 거기서 어떻게 책을 덮고 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단 말인가?
올여름 나온 개정판의 첫 문장은 이전 버전과 단어 배열이 조금 달라져 있다. 여전히 나는 옛 버전 첫 문장을 외우고 있는데, 아마도 이 소설을 처음 열었을 때 마주한 그 수상한 한 줄의 잔상일 것이다. 리듬 차이가 있을 뿐 어느 쪽이든 충격적이다. 1977년에 출간한 책이 해를 거듭할수록 지금 여기를 겨냥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계속 단절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선한 미스터리의 힘이 궁금한 분, ‘책태기(독서 권태기)’에 놓인 분께 특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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