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에너지·생명력, 우주선 같은 캔버스서 춤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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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라이트 DDP 2024 가을
지난 29일 서울시가 주최하고 서울디자인재단에서 주관하는 빛의 축제 ‘서울라이트 DDP 2024 가을’이 개막했다. 222m에 이르는 DDP 전면 외벽을 미디어아트로 감싸는 이 거대한 프로젝트는 오는 9월 8일까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하 DDP) 밤하늘을 아름다운 빛으로 물들일 예정이다.
DDP 개관 10주년을 맞는 올해는 추상미술의 거장 김환기 작가의 작품을 재해석한 미디어아트 전시를 공개하면서 더욱 화제가 되고 있다.
20세기 한국현대추상미술의 선구자인 김환기 작가는 일본, 파리, 뉴욕을 거치면서 한국적인 정취와 세계인이 공감하는 조형미·색감으로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했다. 특히 1960년대 후반 뉴욕에서 시작한 전면점화(全面點畵)는 미술계에 큰 파장을 일으킬 만큼 미래적인 시도였다. 무수히 반복되는 점으로 화면 전체를 덮는 그의 작품세계는 서양의 모더니즘과 동양 철학을 접목한 명상적 조형 시(詩)로 평가 받는다.
김 작가의 대표작 9점이 소개되는 이번 미디어아트의 제목은 ‘시(時)의 시(詩)’. 김 작가가 수행하는 마음으로 무수한 점을 찍으며 보냈던 시간들, 그가 이끌어온 한국현대미술의 역사, 새로운 세대가 만들어갈 미래의 시간들을 중첩한 표현이다.
약 8분 분량의 영상은 김 작가가 말년에 보여준 단색의 전면점화 대표 시리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로 시작해, 1950년대 파리에서 공부하던 중 어머니의 별세 소식을 듣고 그렸다는 ‘성심’으로 마무리된다. 박 감독은 “가장 정제됐던 1970년대 작품에서 출발해 가장 순수하게 마음을 드러냈던 1950년대 작품까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다시 살아나는 에너지와 생명력을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었다”고 했다.
음악 총괄 감독을 맡은 가수 겸 작곡가 윤상 역시 “처음 봤을 때 가장 충격적인 작품이 ‘어디서 무엇이 되어...’였는데 이번에 다른 작품들을 더 만나면서 우주를 표현하고 싶었던 김 선생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며 “나른하고 아득한 소리들로 우주를 바라볼 때의 막연함, 어지러움, 내가 어디쯤 존재하고 있나 생각하게 만드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같은 기간 DDP 곳곳에선 글로벌 디자인 전시, 아트토크&투어, 현대미술 포럼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한 ‘DDP 디자인&아트’가 함께 열린다. 특히 세계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아티스트들의 설치물은 매우 흥미롭다.
스위스 출신 현대미술가 펠리체 바리니의 ‘색 모양 움직임’은 단순한 색 띠를 이용해 복도 바닥과 벽에 타원·삼각형 등의 도형을 그렸을 뿐인데 정교하게 계산된 연속성 때문에 묘한 착시현상을 선사한다. MZ세대가 좋아하는 ‘인증샷’ 성지로 입소문 날 만하다.
호주의 아티스트 그룹 아뜰리에 시수는 DDP 팔거리에 비닐 튜브 모듈 ‘아퍼처(Aperture·구멍)’를 설치했다. ‘톰과 제리’가 좋아하는 에멘탈 치즈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이 설치물은 자연스러운 곡선과 액자식 구멍 배열이 특징이다. 관람객은 이 미로 같은 구멍들 사이를 탐험하면서 빛과 공간의 미학을 즐길 수 있다. 특히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에게는 완벽한 놀이터다.
영국의 아티스트 그룹 스튜디오 버티고는 디스코볼에서 영감을 얻은 대형 하트 미러볼 ‘아워 비팅 하트(Our Beating Heart)’를 잔디언덕에 선보였다. 1000조각의 거울을 붙인 하트 미러볼은 360도 회전하면서 엄청난 스케일의 빛을 반사시켜 환상적인 공간을 연출한다. 올 가을 연인들을 위한 최고의 데이트 장소다.
‘서울라이트 DDP 2024 가을’은 매일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정각·30분에 외벽 전면에서 만날 수 있다. 글로벌 아티스트들의 독특한 설치물은 상시 관람이 가능하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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