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더위... '22도 영화관' 대신 '34도 야구장'에 사람 몰린 이유는

최현빈 2024. 8. 31.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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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K무비 대신 KBO를 볼까]
영화관객 코로나 이전 대비 40% 급감
야구는 1000만 관객... 농·배구도 인기
영화값 비싼 탓이라지만 객단가 하락
"도파민 터져요"... 결국 재미있어야
29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LG 트윈스와 kt 위즈의 경기에서 8회초 kt 공격 1사 만루 상황 로하스가 3타점 적시타를 치고 있다. 뉴스1

①34도 땡볕 야구장: 29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LG 대 KT의 경기. 8회 1사 만루 멜 로하스 주니어(KT)의 우중간 싹쓸이 3타점 2루타가 경기를 뒤집는 순간, 천둥 같은 함성이 지축을 울렸다. 잠실야구장을 포함해 이날 5경기에만 6만9,559명의 관중이 몰렸고, 역대 최악의 열대야가 강타한 8월 한 달 동안 각 구장 평균 관중은 1만5,000명을 넘어섰다.

②22도 냉방 영화관: 비슷한 시간 야구장에서 지하철 한 정거장 떨어진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분위기는 썰렁했다. 매표소 인근에서 입장을 기다리는 손님은 20명 정도. 이날만 사람이 적은 게 아니란 점을 보여주듯, 매점과 상영관 앞에는 직원이 딱 한 명씩만 배치돼 있었다. 약속까지 시간이 남아 영화를 보러 왔다는 김민석(26)씨는 "볼 만한 게 딱히 없는 것 같다"며 예매를 하지 않고 영화관을 떠났다.


야구·농구·배구 모두 다 흥행열풍

무더운 올여름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인 영화관을 찾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집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일상화했고, 그 와중에 영화 입장료가 다락같이 오른 탓으로 풀이됐다.

29일 오후 한산한 서울 강남구의 한 영화관. 최현빈 기자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국내 영화관 관객 수는 6,293만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839만 명)보다 7.8% 늘었다. 하지만 코로나 이전으로 시계를 돌리면 '영화의 부진'은 꽤 도드라진다. 코로나 영향을 받지 않은 마지막 해인 2019년 상반기(1억932만 명)와 비교하면 40% 이상 감소했다.

영화가 부진한 사이 프로스포츠 인기는 훨훨 하늘을 날았다. 특히 프로야구는 갖가지 흥행기록을 써나가는 중이다. 올해 프로야구는 이미 6월 15일 500만 관중을 돌파했다. 정규 시즌(720경기) 반바퀴도 돌기 전인 345경기만으로, 2012년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빠른 속도다. 28일 기준으론 출범 42년 만에 처음으로 '900만' 문턱을 넘어, 1,000만 관중 달성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야구만 이런 것도 아니다. 프로축구 1부 리그인 K리그1은 91경기를 치른 6월 1일 누적 관객 100만 명을 넘어섰다. 2013년 이후 가장 가파른 상승세다. 추춘제로 리그를 치르는 프로농구(KBL)와 프로배구(KOVO)도 2023~2024시즌 기준 관객 수·입장료 수입 모두 코로나 이전을 거의 회복하거나 오히려 웃돌았다.

영화관 관객 수 추이. 그래픽=이지원 기자

왜 유독 영화만 망하나?

사람들은 왜 영화'만' 안 볼까. 영화계에서도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배우 최민식은 최근 한 방송에 나와 '푯값'을 주범으로 지목했다. 영화 한 편을 보느니 그 돈으로 OTT를 구독해 여러 영화를 보지 않겠냐는 거다. 실제 영화관 3사(CJ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는 코로나가 유행한 2020년~2022년 푯값을 세 차례 올려 1만5,000원 시대(주말 일반관 기준)를 열었다. 올해 2월 마지막으로 극장을 찾았다는 신선주(29)씨는 "조금만 기다리면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영화 값이 생각보다 너무 많이 올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매출액을 관객 수로 나눈 객단가(고객 한 명이 평균적으로 지출하는 액수)를 따져보면 영화 불황기의 원인을 '비싼 가격' 탓으로 돌리긴 어렵다. 영진위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객단가는 2019년 8,444원에서 2022년 1만285원으로 정점을 찍고 올해 상반기엔 9,698원으로 다시 낮아지는 추세다. 통신사·카드 할인·문화의 날 등 프로모션이 이유인 것으로 풀이된다.

극장 대신 운동장에서 쓰는 돈이 평균적으론 더 많다. KBO를 예로 들면 한 경기당 객단가는 2019년 1만1,781원에서 지난해 1만5,226원(정규시즌 기준)으로 뛰었다. KBL(약 1만4,000원)과 K리그(약 1만2,000원)의 객단가도 영화보단 높다.

그래픽=이지원 기자

결국 영화가 망하고 프로스포츠가 흥하는 건 '돈' 때문이 아니라 '재미' 때문이라는 팬들의 분석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스포츠 관람이 영화보다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도)가 훨씬 뛰어나다는 얘기다. 손바닥에서 영상이 넘쳐나는 '동영상 홍수' 시대에, 스포츠 관람은 현장감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경기 관람 동안만큼은 온라인 소통에서 벗어나 가족과 지인, 다른 팬들과 대면해 호흡할 수 있다는 점도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해부터 야구에 빠져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야구장을 찾는다는 오모(24)씨는 "가만히 앉아 영화를 보는 것과는 '도파민'이 다르다"면서 "영화관은 마지막으로 언제 갔는지 기억도 안 난다"고 했다. 14년 차 LG 트윈스 팬 김연석(31)씨는 "다른 팬들과 함께 응원하면서 뜨거운 열기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게 직관(직접 관람)의 묘미"라고 말했다.

최현빈 기자 gonnal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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