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AI시대 흥할 나라와 쇠퇴할 나라

2024. 8. 31.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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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특임교수(초대 원장)
8월의 대부분을 미국 실리콘밸리와 유럽 출장으로 보냈다. 열흘 전 엘베강이 북해와 만나는 독일 함부르크 강변에 자리 잡은 함부르크 AI 센터(ARIC)에서 AI 안전 워크숍이 열렸다. 독일 연방정부와 지방정부의 지원을 받아 설립된 이 지역 AI 센터는 도크랜드(Dockland)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건축물 안에 자리 잡고 있다. 배를 평행사변형 모양으로 형상화한 이 건물에서 경사진 엘리베이터를 타고 AI 센터가 있는 층으로 올라가면 마치 크루즈선을 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도크랜드의 엘베강 건너편에는 1877년 설립된 독일 최대의 조선소가 있다. 이 건축물이 설계된 1995년이나 준공된 2006년만 해도 함부르크의 조선산업은 그런대로 명맥을 유지했다. 그러나 2000년대 말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이 지역 조선산업은 급격히 쇠퇴했다. 도크랜드의 엘베강 건너편 조선소의 도크들은 가끔 크루즈선 수리나 할 뿐 대부분 비어 있다.

「 기존 산업 쇠퇴할 때 신산업 키워야
독일 경제는 제로성장 함정에 빠져
혁신적 일자리 부족해 인재 유출도
독일과 유사한 한국도 활로 찾아야

한때 세계 조선산업을 선도했던 이 도시의 상징적인 건축물 도크랜드에 지역 AI 센터를 설치한 건, 그래도 AI가 산업의 흥망에 중요하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 도크랜드에서 개최된 AI 안전 워크숍에서 본 유럽 AI 실상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 AI의 혁신적 실험을 세계적으로 선도하겠다는 생각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륙법적 사고를 바탕으로 제정된 유럽 AI 법이 모든 토론과 사고를 지배한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AI의 안전과 위험에 대해 선제적으로 규제하는 이 법은 선의의 도덕적 기준을 세워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자 하는 혁신 실험을 유럽에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한다.

나는 유럽 중심의 이 AI 안전 워크숍에서 과학기술자와 혁신 창업자들보다는 법률가와 정치가들이 지배하는 사회의 한계를 재확인했다. AI 스타트업 육성이 중요한 미션인 함부르크 AI 센터 공동 최고경영자(CEO) 얀 쉬네들러도 변호사 출신이지만 규제 때문에 사회 분위기가 보수적인 독일에서 스타트업 육성이 쉽지 않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창업을 하더라도 펀딩 규모도 작고 회사 가치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고 한다. 한 예로 에어버스에 중요한 AI 솔루션을 공급하는 스타트업을 에어버스가 인수하려고 하는데 인수 가격이 1000만 유로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이 정도 실력이 있는 회사이면 미국에서는 최소 10배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독일은 베를린, 뮌헨, 아헨, 드레스덴 공대 등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공과대학 중심인 대학교(TU)가 많다. 이 중 9곳을 TU9이라고 한다. TU9 졸업생들이 자동차, 기계, 화학, 에너지 등 독일의 중추 산업을 이끌어 왔다. 독일 정부는 이 TU9의 수월성을 유지하기 위해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투자해 왔다.

TU9 엔지니어들은 전통적으로 독일의 수출 산업으로 진출했다. 하지만 중국이 독일이 우위를 보였던 자동차, 철도 등의 산업에서 빠르게 독일의 시장을 잠식하면서 독일 경제는 이제 미래가 잘 보이지 않는 제로 성장의 굴레에 빠져들게 됐다.

구체적으로 독일의 제1 기간산업인 자동차 산업의 미래 전망도 밝지 않다. 세계 자동차 시장이 전기차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BYD 같은 중국의 기존 전기차 회사뿐만 아니라 휴대전화 기업 샤오미도 혁신적인 전기차를 시장에 내놓았기 때문이다. 최근 블룸버그통신은 선전에 위치한 BYD가 연 100만 대 수출을 목표로 확장을 하고 있으며 선전 정부가 BYD 수출용 항구까지 만들어 지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럽연합(EU)은 올해 들어 중국 전기차의 EU 수입을 규제하는 법을 만들었지만, EU에서 분리된 영국의 런던 BYD 전시장은 가성비와 디자인이 매력적인 신형 전기차 모델로 잠재 고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인류의 산업화 역사에서 기존 산업이 쇠퇴할 때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는 국가는 흥하고 기존 산업을 지키려고 하는 국가는 쇠퇴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대부분의 규제는 기존 산업에 함몰된 관료적 사고 프레임에서 만들어진다. 자유 경쟁이 존재하는 한 이런 규제를 앞서 만드는 국가는 흥하지 못한다.

과거에 비해 혁신적인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독일에서 이제 미국의 빅테크 기업과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이 TU9의 우수한 인재들을 앞다투어 끌어가고 있다.

한편 8월 초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한 김에 이 도시에서 상용화된 웨이모 자율주행 택시에 탑승했다. 구글의 지원을 받아 오랫동안 실험을 거쳐 시작한 ‘기사가 없는’ 택시 서비스다. 한밤 중에도 호출할 수 있고 일관되게 친절한 이 AI 자율주행 택시 서비스를 경험한 뒤 안전 때문에 자율주행이 요원할 것이라는 편견을 완전히 지우게 됐다.

한편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들은 AI 안전 시험 기술을 개발할 스타트업을 찾아 투자하고 있다. AI 안전 연구에서 두각을 나타낸 30대 중반의 젊은 교수 창업자와 저녁을 함께 했다. 아직 초기 단계이기는 하지만 이름 있는 벤처캐피털들이 투자한 매우 유망한 스타트업이다.

규제가 지배하는 국가와 대형 민간 자본이 혁신을 선도하는 국가 중 누가 미래의 승자가 될 것인지는 자명하다. 독일과 유사한 산업화시대 유산과 대륙법 체계를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특임교수(초대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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