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방향성 잃은 어설픈 관치금융

황정일 2024. 8. 31.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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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일 경제산업에디터
“걱정 많이 했죠. 65년 만에 내 집 마련인데 대출이 안 되면 어쩔까 하고. 다행히 은행에서 처음 이야기한 대로 대출을 해준다고 하니 무사히 잔금을 치를 수 있게 됐어요.” 최근 우연히 경기도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서 만난 60대 중반의 아파트 매수자의 말이다. 두어 달 전 아파트 계약을 했는데, 정부가 대출을 죄느니 마느니 하는 바람에 잔금(9월 초)을 치르지 못할까 노심초사했다고 한다.

“은행이, 아무리 그래도 계약 때 이야기한 게 있는데 정작 잔금 때 대출을 안 해주겠어요”라고 위로했지만, 부동산중개업소의 이야기는 다르다. 요즘 대출 문제로 속을 끓이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한다. 매물을 보고 나서 마음에 들면 정식 계약 전에 100만~1000만원을 내고 가계약을 하는데, 가계약 뒤 은행 대출을 알아보니 예상보다 적게 나오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 은행·보험 금리 체계 뒤죽박죽
관치금융, 집값 잡기도 힘들어

매도자가 가계약금을 돌려주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은 예도 있어 제2금융권 등을 찾아다니면서 대출금을 맞추기도 한단다. 집값이 뛰고, 가계대출이 급등하자 놀란 정부가 부랴부랴 은행을 압박해 주택 매수세를 억누르려고 하면서다. 실제 금융권을 향한 정부의 주문이 늘어나면서 또다시 ‘관치(官治)금융’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로 인해 시중은행의 금리가 보험사보다 높아지는 등 이상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뛰는 집값을 잡는 것이나, 가파른 가계대출 증가세를 조절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무주택 실수요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실 최근의 집값 상승과 대출은 실수요가 주도하고 있다. 올해 들어 7월까지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은 32조1000억원가량 증가했는데, 이 가운데 디딤돌·신생아특례대출과 같은 정부의 정책대출이 22조3000억원에 이른다.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로 풀린 돈의 70% 정도가 정책대출인 셈이다.

정책대출은 소득제한이나 출산 등 비교적 까다로운 조건이 붙인다. 무엇보다 무주택이어야 가능하다. 실수요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증거는 또 있다. 이른바 ‘갭투자’가 과거 집값 상승기와는 다르게 눈에 띄게 줄었다는 점이다. 〈중앙SUNDAY 8월 10일자 12면〉 주택 거래량 역시 늘었다고는 하지만 과거에 비하면 아직 많지 않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7월 서울의 주택 거래량(신고일 기준)은 1만2783건이다.

전달에 비하면 40% 정도, 지난해 7월에 비하면 110%가량 늘었지만 서울의 월간 주택 거래량이 1만 건을 넘은 건 2021년 8월 이후 2년 11개월 만이다. 7월 거래량만 보면 2020년 이후 4년 만이다. 지금의 주택시장은 정상화 과정이고, 집값을 움직이는 건 투자를 하려는 가수요보다는 실수요라는 얘기다. 인플레이션에 따른 급격한 금리 인상기에 내 집 마련을 미뤘던 무주택자들이 기준금리 인하를 앞두고 내 집 마련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이 같은 분위기가 지속하면, 가수요가 붙어 시장을 더욱 불안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겹겹의 규제로 집이 있는 사람이 즉, 가수요가 또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금융권에 대출 총량제 등을 요구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집을 가질 필요는 없다’로 읽힐 뿐이다. 대출 규제로 집값을 잡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현재 상황에서는 눈높이를 낮춰 다른 집을 사는 풍선효과만 가속할 수 있다.

은행권 대출 문턱을 과도하게 높이면 결국 대출 수요는 틈새시장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 적어도 상환능력이 있고, 잔금 등이 필요한 실수요자가 타격을 받지 않도록 세심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 다만 금융권의 세심한 심사 등으로 대출금이 가수요에게 흘러 들어가는 것은 분명 막아야 한다. 이와 동시에 실효성 있는 주택 공급 대책 등 서둘러 주택시장 불안 요소를 제거해 나가야 한다.

황정일 경제산업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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