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기억] 사이의 균열을 잇는 ‘누빔점’

2024. 8. 31.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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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지표’ 시리즈 가운데 ‘LODESTAR 13’ ⓒ이서현
어느 여름날, 친구들과 우이동 계곡에 있는 작은 수영장에 갔다. 시설은 낡고 엉성했지만 수면 위에 풀과 나뭇잎들이 떠 있는 숲속 수영장에서, 물 위의 이파리들처럼 팔랑이며 즐거워했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 그 수영장에 다시 갔다. 새 단장을 한 수영장은 낙엽 한 점 없이 깨끗했고, 예전의 관계들은 멀어지거나 사라졌다.

동일한 장소지만,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 사이에서 어떤 균열이 생겼다. 작가는 수영장 물 위에 풀 한 포기를 띄움으로써 그 균열에 관여한다. 다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과거의 한 요소를 가져다 현재에 잇댐으로써, 즉 기억의 요소를 개입시켜 눈앞의 풍경을 바꾼다. 그리고는 사진으로 찍어 그 풍경을 안착시킨다.

현실의 세상으로부터 오려내어 새로이 자신의 것으로 사물화한 풍경에, 이번에는 하나하나 직접 염색한 작은 단추들을 매단다. 숲 그늘이 져서 어두운 물살 위에는 밝은 하늘색 또는 연한 보라색 단추를 단다. 물방울 같기도 하고 빛의 입자 같기도 한 단추들이 물살과 윤슬을 따라 흐른다.

이서현의 사진 시리즈 ‘그녀의 지표’ 중 13번째(LODESTAR 13) 작품이다.

이때 작가가 물 위에 띄운 나뭇잎이나 물결 위에 매단 단추는 일종의 ‘누빔점’이다. 천을 고정시키기 위해 소파 쿠션을 누빌 때 쓰는 단추를 뜻하는 누빔점은 정신분석에서는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비현실 등 서로 다른 둘 사이의 경계를 잇는 헐거운 고정점을 일컫는다.

갈라진 벽 틈새를 찍은 사진에 실을 시침질 해서 늘어뜨리거나, 물자락을 찍은 사진의 포말들 사이사이에 구슬을 매달고, 흰 벽면의 타일과 타일 틈마다 핀침을 꽂는 등 여러 경계들을 찍은 사진들에 작가가 직접 바느질한 실과 단추들이 모두 그런 누빔점이다. 한지에 인화한 사진 위에 다양한 오브제들을 덧댐으로써, 2차원에서 3차원으로 사진의 평면성을 간단히 뛰어넘고 있는 것도 누빔점의 일부다.

사진 시리즈의 제목이 ‘그녀의 지표’인 것은, 그녀가 곧 점점이 이 누빔점을 딛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일 것이다. 그 여름을 딛고 가을로.

박미경 류가헌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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