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전선의 종군사진가, 연약했던 인간
김경훈 지음
아르테
스페인 공화파 정부군과 프랑코의 파시스트 반란군이 내전을 벌이고 있던 1936년 9월 5일. 정부군에 가담한 한 민병대 병사가 참호를 빠져나와 언덕을 기어오르는 순간 적군의 총탄을 맞고 손에 쥐었던 소총을 놓치며 뒤로 쓰러진다. 바로 이 장면을 참호에 같이 있던 종군 사진기자가 카메라로 포착했다. 그 유명한 ‘쓰러지는 병사’ 사진이다.
목숨을 걸고 전장 속에 뛰어들어 이 모습을 셔터로 잡은 사람은 로버트 카파. 당시까지만 해도 무명이었던 카파는 이 사진 한 장으로 20대 초반의 나이에 일약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전쟁사진가’가 됐다.
신간 『로버트 카파』는 이 책 표지에 실린 ‘쓰러지는 병사’를 비롯해 세기의 전쟁사진을 다수 남긴 카파의 생전 행적을 좇아 직접 현장을 답사하며 그의 작품과 삶을 오늘에 되새겨 본 책이다. 퓰리처상 수상자인 김경훈 로이터통신 도쿄지국 수석 사진기자가 펴냈다. 고교생 때 카파의 사진을 보고 사진기자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지은이의 카파에 대한 단순한 ‘헌사’만은 아니다. 전장의 최전선에서 취재하며 겪었을 공포와 트라우마를 도박과 알코올로 달래며 연약한 인간의 얼굴을 했던 카파의 드라마틱한 인생을 솔직하게 들여다봤다.
2차 세계 대전의 판을 뒤집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찍은 사진 11장은 카파의 대표작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카파는 1944년 6월 6일 프랑스 오마하 해변에서 공격부대의 제1진과 함께 맨 앞에서 상륙정을 타고 들어가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는 살벌한 현장을 촬영했다. 아수라장의 공포 속에서 거의 정신이 나간 상태로 찍어 댄 사진들은 초점이 흔들렸지만 그 자체로 전쟁의 잔혹성을 고발하는 효과가 극적이었다.
2차 대전 막바지에는 미군 제17공정사단 소속 병사들과 합류해 카메라를 다리에 묶은 채 낙하산을 타고 적지에 함께 뛰어들기도 했다. 세계 대전에서도 살아남은 카파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1954년 베트남과 프랑스 간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종군 취재 도중 대인지뢰를 밟아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카파이즘이라 불리는 그의 사진은 지금도 저널리스트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카파의 사진에는 전쟁 속에서 인류가 겪었던 고통, 공포, 파렴치함 그리고 상실의 아픔이 그대로 담겨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은이 김경훈 기자는 카파의 사진이 전쟁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어떻게 바꿨는지, 그리고 현대 포토저널리즘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도 깊이 있게 짚어 봤다. 중동에서, 우크라이나에서 아직도 전쟁은 우리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카파의 후배들은 여전히 전쟁터에서 셔터를 누르며 그를 기억한다.
이 책에는 카파의 대표작이 여럿 실려 있다. 그가 남긴 사진만 훑어봐도 카파의 체온을 느낄 수 있다. 사진과 현대사, 저널리즘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이라면 카파의 세계에 깊숙이 침투해 격동의 20세기 전반기를 함께 호흡할 수 있다.
한경환 자유기고가 khhan88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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