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도우미'는 '영어 도우미'?…교육 효과는 '글쎄'

허정연 2024. 8. 3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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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액 대비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아 신청 안 했습니다(서울 강동구 유정현씨·39세)." "도움이 안 되기는요. 가정 내에서 영어를 쓸 수 있는 환경이 생기잖아요(강남구 김모씨·36세)."

같은 서울 동남권 거주자라도 이렇게 의견이 엇갈렸다. 내달부터 시행하는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을 두고서다. 선정 가구부터 지역별로 갈렸다.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필리핀 노동자들이 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서울시와 고용노동부가 추진하는 이번 사업에 참여할 157가정이 지난 14일 최종 선정됐다. 신청 접수는 총 731건. 무려 5대 1의 경쟁률이었다. 선정 결과 서울 동남권(강남·서초·송파·강동구)이 59가정으로 전체의 37.6%를 차지하면서 ‘고소득층을 위한 정책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이어 용산·성동구를 포함한 도심권에서 50가정(31.8%)이 뽑혔다. 반면 노원·강북·중랑구는 1~2건, 도봉·금천구는 0건으로 지역 간 불균형이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같은 지역권이라도, 베이비 시터 등 도우미를 써본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도 일심동체는 아니었다.

서울 서초구에서 6살과 4살 자녀를 키우는 박모(40)씨는 “그동안 필리핀 시터를 쓰고 싶어도 불법체류자가 대부분이어서 시장이 음성화돼 있었다”며 “필리핀인 중에서도 영어로 의사소통이 원활할 경우엔 평균 시세가 300만원에 달했는데 서울시 지원을 받으면 100만원가량 저렴해 이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청소나 요리 등은 기존에 일하시는 '조선족 이모님'이 있는 만큼 만약 시범사업에 선정되면 필리핀 이모님은 돌봄 업무에만 집중해 달라고 할 계획이었다”고 덧붙였다.

강남구에 사는 김모씨는 “4세 자녀를 내년부터 영어유치원에 보낼 계획이라 레벨 테스트에 대비해 '엄마표 영어'를 열심히 하고 있다"며 "필리핀 도우미가 아이에게 영어를 쓰면 집안에 영어 환경을 만드는 데 유리할 것 같아 신청했다”고 밝혔다. 그는 "올 초에 필리핀 세부 한 달 살기를 하면서 아이가 영어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지니 발화에 도움이 됐다"며 "정부에서 추진하는 사업인 데다 대졸자 등 검증된 인력이라고 하니 믿음이 간다"고 덧붙였다.

반면 서초구의 이모(46)씨는 필리핀 도우미의 영어 능력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그는 6년 전 주재원 발령을 받은 남편을 따라 2년간 홍콩에 거주한 경험이 있다. 이씨는 "당시 가격으로 50만원 정도에 필리핀 시터를 썼는데 집안일과 관련한 간단한 단어 외엔 영어가 서툴렀다"며 "교육적 효과를 기대하긴 어려운데 생각보다 동네 엄마들의 선호도가 높은 걸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가사관리사 이용 요금은 4시간 기준으로 월 119만원, 8시간 기준으로 238만원이다. 지난해 4분기 월평균 가구소득 502만3719원의 절반 정도다. 홍콩·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관리사 이용 금액보다 두 배 이상 높다. 이번에 입국한 가사관리사는 자국에서 돌봄 업무와 어린이 발달 과정, 응급조치 요령 등을 습득한 돌봄자격증 소지자다. 가사 업무에 특화된 인력이 아닌 셈이다. 이 때문에 정작 가사 도움이 필요한 가정은 높은 비용과 의사소통 문제 등을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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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선영(37·송파구)씨는 내년 2월 둘째 출산을 앞둔 워킹맘이다. 장씨는 "도우미 비용이 부담돼 친정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첫째를 키우고 있다"며 "여유 있는 가정에선 값싼 영어 선생님이 될지 몰라도 대부분의 맞벌이 부부에게 월 200만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고 말했다.

세 살 여아를 키우는 유정현씨는 1년 전부터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50대 이웃에게 하원 도우미 일을 맡긴다. 유씨는 "하루 4시간씩 간단한 집안 정리와 아이를 돌봐주는데 드는 비용이 월 110만원가량"이라며 "가격이 비슷하다면 당연히 아이와 의사소통이 잘되고, 신뢰가 높은 내국인을 쓰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때문에 신청 가정 상당수는 ‘가사’보다는 ‘영어’에 악센트를 싣고 있다. 실제로 이번 사업의 한 관계자는 "관리사들의 한국어 수준은 편차가 클지 몰라도 영어만큼은 타갈로그어가 아닌 미국식 억양을 쓸 만큼 수준이 높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승윤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가사관리사 단체 숙소를 강남구에 마련한 것만 봐도 이번 사업의 주 이용자가 '강남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라며 "현재 시범사업은 공공 돌봄 성격을 띠지만 향후 중개업체를 통한 사적 계약 형태로 자리 잡으면 비용이 더욱 늘어날 뿐 아니라 구매력이 없는 사람들의 돌봄 부담만 가중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은 4주간 고용부 주관의 특화 교육을 마친 상태다. 본격적인 서비스는 다음달 3일 시작한다.

허정연, jypow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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