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敎主 사건, 여성 단체의 선택적 정의
한 종교 단체 교주(敎主)의 엽색 행각을 폭로한 다큐멘터리 제작자가 최근 성폭력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다. 지난해 화제가 된 이 다큐엔 해당 교주에게 성 상납을 하는 여성 신도들의 나체 영상이 담겼다.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된 여성들은 교주에게 “저희가 주님의 피로를 확 녹여드릴게요”라며 손짓한다. 종교 단체의 고발을 접수해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영상을 당사자 동의 없이 배포한 행위가 위법이라고 봤다.
지난해 다큐 공개 직후 한 여성 단체가 세미나를 열고 이 장면에 대해 “선정적인 포르노 같다” “불필요하고 과도한 연출”이라고 했다. 일리 있는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상업적 목적을 위해 과도하게 선정성을 추구했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하지만 과거 여성 신도 준강간 등 혐의로 징역 10년을 살고, 최근 또 다른 10대 여성 신도 등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23년이 선고된 교주에 대한 비판은 거의 없었다는 점이 더 마음에 걸린다. 1945년생 교주는 1994년생 피해자를 성 착취하며 “우리 oo이 히프 크다” “o 나왔어? 나는 50번 o 것 같다” 같은 말을 한 인물이다.
여성주의 운동의 목표는 양성 평등을 통한 인간성 회복이라고 했다. ‘어리고 키 크고 통통한’ 여성 신도들을 골라 그들의 인간 존엄을 훼손한 교주의 행각에 대해 여성 단체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지난해 세미나를 열었던 여성 단체는 본지 취재 요청에 “인터뷰하지 않겠다”며 거부했다. 30년 가까이 이 교주의 문제를 고발해온 대학 교수는 “교주의 성 착취가 드러나도 그간 여성 단체들은 조용했다”며 “이건 선택적 정의(正義) 아니냐”고 했다.
4년 전 박원순 서울시장 사망 사건 당시 여성 단체들은 박 시장 비판보다는 피해자인 여성 비서를 공격하는 데 몰두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여성 운동 대모(代母)로 불리던 국회의원은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이라고 했다.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이들이 오히려 2차 가해에 가담하는 모습에 시민들은 “여성주의조차 진영 옹호의 도구가 됐다”고 했다.
같은 해 윤미향 의원의 정의기억연대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를 도구화했다거나, 후원금을 유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여성 단체들의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민주당 김준혁 의원의 ‘이대생 성상납’ 발언이 지난 총선 때 알려졌지만 진보 진영 여성 단체들은 역시 조용했다.
이번 문제의 교주 사건과 관련한 여성 단체들의 묘한 침묵에 일각에선 “기성 제도권 기업·학교·종교단체 등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면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라는 지적이 나왔다. 그간 피해자 중심주의는 가부장제 논리에 도전하는 여성주의의 강력한 무기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권력자의 성범죄에 인격이 말살된 피해자를 외면하는 이런 식의 ‘피해자 중심주의’가 이어진다면, 여성 단체들이 사안·진영에 따라 선택적 잣대를 적용한다는 지적을 앞으로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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