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료·색소 첨가해도 막걸리"…전통 훼손인가 규제 완화인가

서정민.오유진 2024. 8. 3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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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주세법 개정 논란
실제 바나나를 넣은 바나나 우유 vs 향·색소를 넣은 바나나 맛 우유. 소비자의 취향과 선택은 자유지만 관련 제조업체는 기준에 따라 세금과 제조 시스템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최근 정부가 주세법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막걸리에 향료와 색소를 허용하겠다’고 밝혀 전통주 업계가 논란에 휩싸였다.

현행 주세법상 ‘막걸리’는 녹말이 포함된 재료와 국(누룩)과 물, 당분과 과일·채소류, 아스파탐 등의 첨가제만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가 최근 발표한 ‘2024년 세법 개정안’에는 향료와 색소를 사용해도 막걸리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지금까지 향료와 색소를 첨가한 술은 막걸리가 아닌 ‘기타 주류’(이하 유사 막걸리)로 분류해왔다.

이번 개정안이 시행되면 유사 막걸리 제조업체의 세금 부담은 크게 낮아진다. 현재 유사 막걸리의 과세표준은 출고가격의 81.9%에 30%의 세율이 적용된다. 이럴 경우 출고가격 1000원(용량 750㎖)인 유사 막걸리 1병당 세금은 246원이다. 하지만 개정안에 따라 같은 제품을 막걸리로 분류하면 세금은 1ℓ당 44.4원으로 750㎖ 기준 33원으로 줄어든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문제는 이렇게 줄어든 세금 혜택이 유사 막걸리 수십 종을 생산하는 몇몇 대형 막걸리 제조업체에 한정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주류업계에서는 전통주 시장의 붕괴를 우려한다. 세법 개정안에 반대하고 있는 국내 대표 전통주 교육기관 한국가양주연구소 류인수 소장은 “전통주의 전통성, 다양성 및 차별성을 훼손해 전통주 시장을 붕괴시킬 것”이라며 “세금 감면으로 몇 개의 대형 양조장은 혜택을 보겠지만 대다수의 전통주 업체는 생존을 걱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내 최대’ 서울장수막걸리도 반대
밤·땅콩 등의 농축액·향료·색소가 함유되면 현행법상 기타 주류로 분류된다. [사진 각사]
“향료와 색소를 넣어도 막걸리로 인정되면 그동안 성실하게 과일·허브 등을 넣어 개성 있는 막걸리를 만들어온 대부분의 전통주 양조장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차별점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좋은 재료를 구매하려면 가격 경쟁에서도 밀린다. 일본이나 프랑스가 사케와 와인 등급을 분류하면서 고품질 술을 보호하는 데 반해 우리는 오히려 좋은 원료를 가지고 술을 만드는 양조장의 사기를 떨어뜨려 전통주 시장의 하향평준화를 유도하고 있다.”

백곰우리술연구소 이승훈 소장도 “지역 농산물 사용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그는 “지역 특산주 제조 양조장들은 대부분 인근 지역 농산물을 원료로 개성 있는 술을 제조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며 “그런데 천연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향과 색소만 이용해도 된다면 제조원가를 낮추기 위해 값싼 수입산을 쓰는 경우가 늘어 지역경제상생도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 농산물 촉진이 우선인 농림축산식품부 전통주 담당 사무관에게 의견을 물었지만 “업계 찬반 논란이 첨예해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후 입장을 세울 계획”이라고 답했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현재 류 소장은 지역특산주 및 소규모 양조장 110개, 한국술교육기관협의회 16기관, 전통주보틀숍협의회 24개 업체를 대표해 ‘2024년 세법개정안 중 전통주 시장을 죽이는 막걸리 향료·색 첨가에 반대한다’는 청원서를 정부 부처와 국회 등에 제출한 상태다. 국내 최대 막걸리 제조업체인 서울장수막걸리 또한 ‘대한탁약주제조중앙회’ 회원사의 의견을 모아 반대 의견을 밝혔다. 44년간 양조업계에 몸담아 온 염성관 서울장수막걸리 상무는 “모든 음식은 제대로 된 재료로부터 가치가 만들어진다”며 “성형 미인보다는 자연 미인에 더 가치를 두듯 우리술의 정통성이 지켜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또 “1980년대쯤 인공 향을 넣은 막걸리가 한창 출시됐는데 시장이 너무 망가지니까 결국 정부가 제재하고 나섰던 기억이 있다”고도 했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하지만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와 막걸리협회 등 대형 막걸리 제조사는 이번 개정안이 막걸리 산업 진흥을 위해 필요한 규제 완화라고 주장한다. 현행법상 ‘기타 주류’로 분류돼 막걸리 표기가 불가능했던 알밤주·땅콩주 등에 막걸리 이름이 붙으면 내수 판매는 물론 수출에도 물꼬가 트일 것이란 얘기다. 제조사들은 향료·색소를 첨가한 막걸리가 허용되면 소비기한이 3개월에 불과한 생(生) 막걸리와 다소 맛이 떨어지는 살균 막걸리의 단점이 보완돼 생산·판매·수출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와인, 맥주 등은 이미 향료·색소 허용
남도희 막걸리협회 사무국장은 “현재 기타 주류로 분류된 유사 막걸리는 시장에서 막걸리로 인정받지 못해 생산 문턱부터 막혀 있는 상황”이라며 “고급화된 전통 막걸리가 있다면 비교적 저렴하고 다양한 맛으로 대중화된 막걸리 또한 필요한 법인데, 순수성을 훼손한다고 해서 첨가원료 확대를 막는 것은 산업 전반을 위축시키는 일”이라고 말했다. 남 국장은 또 막걸리가 위스키·와인·사케와 달리 대중적인 주류라는 점을 강조하며 대중의 의견을 반영한 개정안 시행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개정안 시행에 찬성하는 A막걸리사 관계자는 “세금 경감이나 첨가원료 확대는 수년 전부터 업계가 개선을 요구해왔던 애로사항인 만큼 더는 미뤄져선 안 된다”고 전했다. 기재부 관계자 또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시장 전반의 요구사항”이라며 “다만 일각의 우려 또한 인지하고 있어 입법예고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을 청취해 조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올해 초부터 업계 의견을 취합한 국무조정실 규제혁신추진단도 개정안에 문제가 없다는 쪽에 무게를 실었다. 시장에 이미 ‘기타 주류’로 분류된 유사 막걸리가 많고, 타 주류와의 형평성 차원에서도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규제혁신추진단 관계자는 “와인, 맥주 등 타 주류는 이미 향료·색소를 허용하고 있어 막걸리만 규제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의견을 기재부에 전달했다”며 “전통주 보호를 위해서는 일부 의견을 따라 등급제를 도입하는 방식으로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기재부와 국세청은 분류기준 변경으로 인한 세금 경감 또한 막걸리 산업 진흥 측면에서 수용 가능한 수준이라고 판단하는 분위기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현재 출고가격이 1000원인 유사 막걸리(750㎖)의 세액은 현행 246원에서 33원으로 80% 이상 줄어든다. 국세청 관계자는 “막걸리의 연간 주세 경감액이 크지 않기 때문에 세수 감소로 인한 문제는 없을 것”이라며 “단순히 거둬들이는 세금이 감소한다기보다는 산업 지원을 위한 방안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전했다.

서정민·오유진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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