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공화국 자영업자의 비명 [벼랑 끝 내몰린 자영업자]

김홍준.신수민 2024. 8. 3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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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이번 달에도, 다음 달에도 어떻게든 돌려막아야 하니 카드가 절실하겠죠.”

김동희(63)씨는 신용카드를 배송한다. 그에게 시간은 돈이다. 뛰는 만큼 번다. 그렇게 5년을 뛰었다. 뛰어가는 그를 붙들고 ‘요즘 어떠냐’고 물었다. 머뭇거리던 그는 “신용카드 발급은 불경기·호경기를 가리지 않는데 요즘은 자영업 하시는 분들에게 배달을 많이 하게 된다”며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자영업자 중에서도 음식점 하시는 분들, 그중에서도 치킨집 하시는 분들의 신청이 부쩍 늘었어요. 발급받은 카드로 재료비와 임대료 충당하고, 다음달에 또 틀어막고. 그렇게 근근이 버티며 살아가는 거죠.”

김씨 자신도 “자영업을 하다 수차례나 말아먹었다”고 했다. “백화점에서 의류 딜러를 했는데 배운 게 그거라 희망퇴직 후 의류 자영업을 했어요. 그런데 투자자들이 갑자기 돈을 빼가는 바람에 졸지에 신용불량자가 됐습니다.” 카드 배송 수당은 한 건당 1000원 안팎. 그는 “한 달 평균치가 150만원쯤 하는데 저는 180만~200만원은 벌어서 소주 한 병 곁들여 순댓국에 밥 말아먹고는 산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동료 중에도 치킨집 하다가 쫄딱 망하고 온 사람이 꽤 있다”고 전했다.

Q : 치킨집이요?
A : “네. 카드를 배송하게 된 사연도 다들 제각각이지만 저처럼 다른 자영업을 하다가 ‘징검다리’로 잠시 배송일을 맡게 된 경우가 많아요. 바로 재기를 노리긴 쉽지 않은 게 현실이잖아요. 특히 최근엔 치킨집 사장님 하다가 온 분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치킨이라니. 주위를 둘러보면 여전히 한 집 건너 치킨집일 정도인데. 자영업자의 나라이자 ‘치킨 공화국’인 대한민국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의 자영업자는 572만1000명. 지난 3월부터 5개월째 내리막이다. 그러다 보니 전체 취업자 수 대비 자영업자 비율도 지난달 19.8%로 1년 전(20.2%)보다 0.4%포인트 감소했다. 21세기 벽두 36.8%(2000년)의 반 토막 수준이다.

그중에서도 치킨집은 오랫동안 자영업자들의 ‘창업 1순위’였다. 하지만 2021년 이후 한식집에 밀려 2순위로 내려앉았고, 3순위였던 커피집이 계속 늘면서 2순위도 조만간 내줘야 할 처지에 놓였다. 문제는 치킨집 개점은 줄어드는데 폐점은 갈수록 늘고 있다는 점이다. 공정거래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2022년 치킨집 폐점률은 14.2%에 달했다. 개점률 14.4%와 맞먹는다. 치킨집 하나가 생기면 다른 곳에서 하나가 사라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주요 외식업 분야 중 치킨집만의 독특한 현상이다. 한식집 폐점률이 18.2%로 더 높지만 개점률은 29.9%로 치킨집과 격차가 크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치킨집이 포화 상태에 다다른 상황에서 치열한 생존경쟁을 버티지 못한 자영업자들이 잇따라 가게문을 닫으면서 ‘치킨 공화국’의 위상도 크게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다. ‘치킨집 불패신화’는 이미 옛말. 코로나 시대 배달 음식의 일상화로 잠시 심폐 소생된 듯싶던 치킨집이 어느새 다시 응급실 앞에 서 있다.


“상위권 치킨 프랜차이즈만 잘돼, 나는 빈익빈 부익부의 희생자…”
서울 서대문구의 한 폐업 점포 앞에 철거된 인테리어 자재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신수민 기자
대한민국은 지난해 1인당 닭 소비량이 15.7㎏에 달했다. 26마리에 이르는 양이다. 20년 전인 2003년 7.8㎏의 두 배가 됐다. 하지만 ‘치킨 공화국’의 위상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무너지고 있었다. 국토연구원은 2020년 ‘자영업의 위기를 들여다볼 수 있는 체감경기 지표, 치킨집’이란 주제로 보고서를 냈다. 연구에 참여했던 이영주 당시 국토시뮬레이션센터장은 “치킨집은 동네 어귀마다 두세 곳은 몰려 있고 이용자도 많은 만큼 자영업자의 상황을 생생히 보여주는 바로미터”라며 “2000년대 초반 육류 소비량이 늘면서 개업이 불붙듯 이어진 뒤 2010년대 들어 개업과 폐업이 비슷해지더니 2010년대 중반 이후로는 폐업이 개업을 앞지르는 쇠퇴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분석했다.

그렇게 시들해지던 치킨집은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잠시 살아났다. 거리두기 시행 후 배달 음식이 일상화되면서다. 독립 브랜드인 동네 치킨집과 가맹점 등 치킨 전문점이 2019년 3만7508개에서 이듬해 4만2743개로 14% 급증했다. 하지만 2021년 4만2624개, 2022년 4만1436개로 다시 감소세다. 카드를 배송하던 김동희씨에게 물었다.

Q : 치킨 가맹점들이 본사엔 현금으로 결제하고 있는데, 카드로 돌려막기가 됩니까.
A : “카드론이 있습니다. 이렇게 어떻게든 돈을 긁어모아 본사엔 현금으로 지급하고 운영비나 생활비는 카드로 긁고요. 돌려막고 또 돌려막는 지옥 같은 악순환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거죠. 수수료가 붙으니 빚은 눈덩이처럼 계속 불어나고요.”

작년 1인당 닭 소비량 26마리, 20년 새 2배
치킨집 간판이 들어 서 있는 서울 도심의 한 골목. 김홍준 기자
공정위의 ‘치킨 전문점 표준계약서’에 따르면 가맹본부는 가맹사업자가 원할 경우 신용카드로 결제하게 돼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가맹본부 측에서는 “카드 수수료 때문”이란 입장이지만 현금 융통이 어려운 치킨집 사장님들은 현금서비스나 카드론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실제로 올 상반기 현금이 있어야 사용 가능한 체크카드에 비해 신용카드 발급이 3배 가까이 많았다. 체크카드 발급이 지난해 말보다 120만 장 늘어난 반면 신용카드 발급은 312만 장이나 증가했다.

경기도 고양시의 ‘O’ 치킨집은 해당 프랜차이즈 가맹점 중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은 곳이다. 사장인 엄마 대신 치킨을 튀기고 있던 딸 이모(32)씨는 “코로나 팬데믹이 오기 전에 이미 대다수 가맹점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가게를 접었다”며 “우리는 치킨만 본점에서 받고 다른 재료들은 모두 개별적으로 구매하는 사실상 동네 치킨집”이라고 설명했다.

Q : 배달은 아예 안 한다면서요.
A : “수수료 부담 때문이죠. 그래서 홀 손님에만 집중합니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치킨 공화국’은 ‘배달 공화국’을 낳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22년 배달 음식 1순위는 치킨·닭강정 등 닭류(33.6%)로 족발·보쌈 등 육류(17.6%)를 월등히 앞질렀다. 하지만 배달비용이 발목을 잡았다. 이전엔 치킨 배달비용 6000원 중 3000원을 매장에서 부담했는데 지금은 그 이상이라고 한다.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에서 올해 초 새로 내놓은 배달 요금제가 소비자들에겐 ‘공짜’지만 치킨집에는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부담을 지우고 있다는 게 점주들의 주장이다.

Q : 어느 정도 부담이 되나요.
A : “저희 치킨값은 1만3000원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해요. 그런데 배달 수수료가 그중 20~30%에 달합니다. 50%가량인 재료비와 10%나 되는 임대료·공과금에 카드 결제 수수료까지 내고 나면 1500원 정도가 남죠. 인건비는 별도고요. 이래서야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이러니 배달은 꿈도 못 꾸는 거죠.”
서울 은평구에서 치킨집을 하던 김모(60)씨는 코로나 배달 특수도 맛보지 못한 채 3년 전 가맹점을 접었다. 그는 “해도 손해, 안 해도 손해인 게 치킨집이라지만 장사라도 해야 살아갈 동기를 마련할 수 있겠다 싶었다”며 “하지만 이미 2010년대 중반부터 얻어맞은 게 많다 보니 더는 버티지 못하겠더라”고 했다. 김씨는 “상위권 프랜차이즈만 잘되는 빈익빈 부익부의 희생자였다”며 말끝을 흐렸다. 실제 전체 치킨집 수는 줄었지만, 가맹점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포화 상태인 줄 알면서도 너도나도 치킨집 창업에 뛰어드는 이유는 뭘까.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프랜차이즈 치킨 창업비용은 평균 1억400만원. 외식업 중 창업비가 가장 많이 드는 제빵(2억6300만원)의 절반도 안 된다. 투자비 회수 소요 기간도 평균 2.6년으로 제빵 4.3년, 커피 3.2년, 편의점 3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다. 하지만 준비가 안 된 창업자에겐 여전히 험난한 길일 뿐이다.

배달 수수료 부담에 홀 손님만 받기도
천재열(53)씨도 3년 전 치킨집을 접었다. 이유는 “너무 잘돼서”였다. 권리금까지 받고 가맹점을 넘겼다. 하지만 이후 점주가 네 번이나 바뀌었다. 천씨는 “쉬워 보이는 치킨집이라도 단단히 준비하지 않으면 금세 주저앉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치킨 전문점 영업이익은 2020년 6236억원에서 2021년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9306억원으로 급증했다가 2022년 8603억원으로 다시 감소세로 돌아섰다. 2022년 평균 매출 증가율도 치킨 가맹점은 6.5%로 주점(66.2%), 한식(17.2%)보다 현저히 낮았다. 경쟁은 너무 치열해지고 매출과 이익은 갈수록 줄어드는 현실 속에서 ‘치킨 공화국’은 이렇게 사라지고 마는 걸까.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치킨집 숫자가 줄고 성장세도 둔화한 상황에서 프랜차이즈 간 점유율 경쟁, 같은 프랜차이즈 가맹점 간의 영업 경쟁 등이 과열될 경우 조만간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김홍준·신수민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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