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 피해 커지는데…정부 '삭제 권한' 없다
최근 텔레그램에서 ‘지능(지인능욕)방’ ‘겹지(겹치는 지인능욕)방’ 등 딥페이크 불법 촬영물이 급속히 퍼지고 있지만 정부 차원의 딥페이크물 삭제 지원은 이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따르면 피해자지원센터는 지난해 불법 촬영물 24만5416건을 삭제 지원했다. 2019년 9만338건에서 약 2.7배 증가한 수치다. 이 중 딥페이크 피해 신고는 2019년 134건에서 올해는 781건으로 5.8배 증가했다. 하지만 이 같은 삭제 건수의 증가보다 불법 촬영물이 퍼지는 속도가 훨씬 더 빠르다는 게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정부에선 강제로 삭제할 권한도 없는데다 인력 또한 부족해 불법 촬영물 확산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다고 설명하고 있다. 피해자지원센터 관계자는 “삭제에 강제성이 없다 보니 모니터링과 메일 등으로 딥페이크 삭제 요청을 할 수밖에 없다”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불법 사이트 차단을 요청해도 도메인을 옮겨 새로 불법 사이트를 만들어 운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2020년 ‘n번방’ 사건 당시 67명이었던 피해자지원센터 인력이 2021년 이후 39명으로 줄어든 것도 신속한 대응에 어려움을 겪는 요인으로 꼽힌다.
인력난은 수사기관도 마찬가지다. 검찰의 경우 전국 검찰청으로부터 전해 오는 불법 영상물 차단 요청을 대검찰청 사이버기술범죄수사과 소속 수사관 한 명이 담당하고 있다. 검찰이 최근 3년간 방심위에 차단을 요청한 인터넷 주소(URL)는 2022년 48건, 지난해 136건, 올해 1~7월 70건 등이다. 피해자지원센터가 1차, 경찰이 2차로 삭제한 뒤 남은 사건이 검찰 몫이라곤 해도 “직원 한 명이 혼자서 처리해야 하는 구조는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기술적 한계 역시 뚜렷하다. 현재 불법 영상물 적발은 ▶원본 영상 해시값(고유값) 대조 ▶피해자 얼굴 등 영상 특징을 수치화한 데이터베이스(DB)로 대조 ▶불법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검색하는 방식 등으로 이뤄진다. 해당 업무 경험이 있는 수사관은 “해시값은 영상 사이즈만 변경해도 바뀌고 영상 DB화도 모든 게시물을 잡아내진 못한다”며 “그러다 보니 담당자가 영상 내용을 외우며 며칠씩 야근하는 게 예삿일”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검은 “불법 사이트들의 주기적인 도메인 변경과 IP 추적 회피 등에 대응하기 위해 시스템 고도화 사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삭제 지원이 역부족이라고 느낀 일부 피해자들이 사설 ‘디지털 장의사’를 찾아가는 사례도 늘고 있다. 디지털 장의사는 의뢰인 요청에 따라 온라인에 올라온 각종 개인정보 삭제를 돕는다. 피해자지원센터처럼 메일을 보내 딥페이크물 등의 삭제를 요청하는 식이다. 텔레그램에서 유포되는 딥페이크물은 삭제가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피해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사설 업체에 수백만원에 달하는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찬규·김정민·양수민 기자 lee.chank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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