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흑백 갈등 격화, KGB 치밀한 공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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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전선, 정보전쟁] 미국 뒤흔든 ‘판도라 작전’
미국 대통령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미 정보 당국도 긴장하는 모습이다. “대선 분위기에 편승해 미국 사회를 분열시키려는 러시아·중국·이란의 비밀 정보 활동을 확인했다”며 연일 공개 경고하고 나선 데서 긴장감을 읽을 수 있다. 특히 러시아에 대한 경계는 한층 더 높다. 2016년 대선에 개입한 전력은 물론, 냉전 시기에부터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가 흑백갈등을 이용해 미국 사회를 분열시키려고 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KGB의 분열 정보전 과정을 살펴보면 미 정보당국의 경계심이 이해된다.
KGB는 인종갈등을 이용한 미국 사회 분열 정보전에 착수했다. 바로 판도라 작전(Operation Pandora)이었다. 1962년 봄 KGB 수뇌부는 전략회의를 열어 작전의 목표부터 명확히 했다. 단기적으로는 흑백갈등을 최대한 증폭시켜 미국이 국내 문제에만 매달리도록 발목을 잡고, 궁극적으로는 인종문제를 이용해 미국의 내부분열을 고착화시켜 국력을 약화시키고, 나아가 흑백폭력이 난무해 내전으로 치닫게 함으로써 미국이 내부적으로 무너지게 한다는 목표였다.
KGB는 곧바로 실행에 들어갔다. 첫 단계는 미국 내 인종갈등 실태와 공격 포인트에 관한 기본정보 수집이었다. 주로 미국 내 KGB 요원들이 맡았으며, 흑백충돌의 전위조직 확보를 위해 흑인지도자 단체와 백인 우월주의 조직들에 대한 정보도 수집했다.
기본정보가 충분히 수집되자, 분열이라는 독을 미국 사회에 주입하기 시작했다. 우선 흑백 양측의 분노와 불신을 동시에 자극했다. 이를 위해 백인 우월주의 조직 KKK단을 사칭해 흑인 지도자들을 위협하는 편지를 발송했다. 이 편지가 진짜 KKK에서 온 것이라고 믿도록 하기 위해 편지지의 질감, 잉크의 종류까지도 KKK가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것을 써가며 위조했다. 동시에 백인 우월주의 단체들에게도 편지를 보내 흑인 민권운동가들의 탐욕을 부각시키는 비방내용을 퍼뜨렸다.
허위과장 정보, 즉 가짜뉴스도 확산시켰다. 흑인 사회에 백인 경찰의 과잉진압 소문을 유포하고, 백인 사회를 향해서는 흑인들의 폭력성을 과대 포장했다. 심지어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사건에 미국 정부가 개입했다는 음모론을 흘려 여론을 들쑤셨다. 1963년 버밍햄 교회 폭탄 테러 사건에 대해서도 미국 정부의 인종 말살 정책의 일환이라는 허위 정보를 퍼뜨려 흑인 사회를 자극했다.
흑백 갈등뿐만 아니라 흑인과 유대인 간의 갈등도 시도했다. 흑인 민권운동을 경멸하는 팜플렛을 만들어 미국내 유대인 사회가 만든 것처럼 조작해 배포했다. 1971년에는 뉴욕 흑인 밀집지역에 폭발사고를 일으킨 후 미국내 극우 유대인 단체인 유대방위연맹(Jewish Defense League)의 소행이라고 뒤집어씌우는 계획도 세웠다. 이 계획은 사전에 발각되어 실패로 끝났다.
판도라 작전의 실행도 영리하게 이루어졌다. 100% 지어낸 가공의 정보를 유포하기 보다는 이미 발생한 실제 사건을 왜곡하고 과장하여 갈등을 부추기는 방법을 선택했다. 실제 사실에 기초해야 사람들이 더 쉽게 믿기 때문이었다. 분열의 불씨가 될 만한 것은 모두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흥미로운 점은 무난히 굴러가던 판도라 작전의 존재를 1992년 러시아가 스스로 미국에 알려줬다는 사실이다. 소련 붕괴 후 1991년 러시아의 첫 민선 대통령 자격으로 미국 방문을 마친 보리스 옐친은 냉전 당시 KGB의 대미 정보전 일부를 미국에 알려주도록 지시했으며, 그때 판도라 작전의 내용도 포함됐다. 당시 알려준 내용에는 판도라 작전 외에 미 정치인과 고위 관리에 대한 KGB의 평가, 미 대외정책에 대한 KGB의 분석 내용, 심지어 소련이 분석한 미국 핵시설의 취약점 등 다른 중요한 정보도 포함돼 있었다.
그 이면에는 대미 관계 개선을 갈망하는 옐친의 속내가 숨겨져 있었다. 소련 붕괴 후 대미 우호관계 구축이 절실했던 옐친으로서는, 새로운 러시아는 과거 소련체제와 단절했으며 과거와는 다른 대외정책을 펼칠 것이라는 메시지 전달이 필요했다. 그래서 “러시아가 많이 변했다”고 느낄 수 있도록 민감한 비밀 정보까지 알려 준 것이다. 물론 전달된 문서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고 신뢰성도 의문시돼 효과는 미미했다. 그러나 상대에 대한 비밀 정보전 내용이 국가의 신뢰 증표로 사용될 수 있다는 역설은 흥미롭다.
물론 판도라 작전이 오늘날 미국 사회의 분열을 얼마나 더 가중시켰는지 계량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인종 문제가 미국의 고질적인 사회문제로 고착되는데 직·간접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 작전을 처음 대중에 알린 미트로킨 전 KGB요원과 영국 캠브리지대 크리스토퍼 앤드루 교수는 1999년 펴낸 공저 『칼과 방패 : 미트로킨 문서와 KGB의 비밀역사 (The Sword and the Shield: The Mitrokhin Archive and the Secret History of the KGB)』 에서 판도라 작전 전후의 인종 갈등 양태를 비교하며 작전 목표는 일정 부분 달성됐다고 평가했다.
어느 사회든 크고 작은 분열과 갈등은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갈등과 분열은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거쳐 자연스럽게 해소되고 이를 통해 그 사회는 더 건강해진다. 그러나 공동체 발전의 에너지인 건전한 공론의 장이 배후 세력의 개입이나 조종으로 순식간에 국론분열의 장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국론분열이 구조화되어 국가적 관리비용이 증폭될 경우 이는 단순한 사회적 논란거리가 아니라 국가생존의 문제가 될 수 있다. 미국 정보기관이 권위주의 국가들의 미국사회 분열시도를 예민하게 경계하고 있는 이유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각종 논란과 갈등도 건강한 공론 과정을 통해 해소되고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더욱 튼튼하게 발전할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 갈등과 분열이 보이지 않는 배후 세력에 의해 조금이라도 조종되고 있다면 우리 국민과 사회는 모두 건전한 감시자가 돼야 한다. 그 피해는 우리 국민과 사회에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미국 정보 당국이 권위주의 국가들의 분열 정보전을 공개적으로 경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 당국이 우리 사회의 분열을 노리는 외부의 은밀한 개입을 철저히 차단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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