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사색] 이슬의 꿈
2024. 8. 31. 00:01
이슬의 꿈
정호승
이슬은 사라지는 게 꿈이 아니다
이슬은 사라지기를 꿈꾸지 않는다
이슬은 햇살과 한몸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슬이 햇살과 한몸이 된 것을
사람들은 이슬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나는 한때 이슬을 풀잎의 눈물이라고 생각했다
때로는 새벽별의 눈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슬은 울지 않는다
햇살과 한몸을 이루는 기쁨만 있을 뿐
이슬에게는 슬픔이 없다
『여행』 (창비 2013)
바랜다는 것은 흐려지는 일입니다. 흐려져서 처음과는 달리 된다는 것입니다. 빛과 비를 오래 맞은 처마의 색이 바랠 수도 있고 습기를 머금고 내뱉고를 반복한 책이 누렇게 바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자주 입었던 옷이 세탁을 거듭하며 추레하게 바래기도 합니다. 사물들만 바래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사람의 기억은 더 쉽고 빠르게 바래는 것. 그중 좋았던 시간과 행복한 기억들이 먼저 바래집니다. 이것이 안타까워 자주 떠올려보지만 점점 작아지고 줄어들고 흐릿해지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부디 더 천천히 바래기를 그리하여 조금이라도 더 곁에 머물러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것이 바램에 대한 바람입니다.
박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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