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대통령들 다 제치고…100달러 지폐 꿰찬 ‘이 남자’ [Books]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4. 8. 30.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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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많던 벤저민 프랭클린
학교 그만두고 하고싶은 공부
인쇄공 시절 수학·철학 섭렵
벼락 피해 막는 피뢰침 발명
칸트 “그는 새 프로메테우스”
외교관·언론인·사상가 변신
美 초대 헌법 초안 작성하고
병원·대학 공공시설 기반 다져
2미국 100달러 지폐 . 로이터연합
훤칠하게 벗겨진 이마, 좌우로 늘어뜨린 머리칼. 입을 살짝 앙다물고 상대를 지긋이 응시하는 선한 눈. 이름이 가물가물할지 몰라도 우리는 그의 얼굴을 본 적이 있다. 벤저민 프랭클린(1706~1790)이다.

‘100달러 지폐의 주인공’이 바로 그다. 달러 총발행량 3분의 1만이 미국 안에서 유통되고 나머지 3분의 2는 국경 바깥을 유랑하므로 알게 모르게 그의 초상(肖像)은 모두에게 친숙할 수밖에 없다.

현존 최고가액 달러 지폐의 주인공인 벤저민은 2024년에도 한 가지 오해를 받는다. 그가 ‘미국 몇 번째 대통령이었느냐?’ 하는 질문 말이다. 그런데 그는 대통령이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면 그는 도대체 무슨 공로로 세계 경제력의 상징과 같은 100달러 지폐 정중앙에 인쇄되는 영광을 누렸을까.

에릭 와이너의 신간 ‘프랭클린 익스프레스’가 출간됐다. 국내에서만 30만부가 팔린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의 저자 에릭 와이너의 따끈한 새 책이다. 2021년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도정을 관찰한 뒤 잘 익은 포도알로 빚은 와인같은 풍미를 독자에 선물했던 에릭 와이너의 시선이, 이번엔 벤저민에게 향했다.

단순한 인물열전이 아니다. 한 인간의 위대한 생을 거울처럼 들여다보면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힘을 밤하늘의 별빛처럼 문장마다 박아둔 명저다.

유년의 벤저민은 의심이 많았다. 성서마저 의심했고, 눈앞의 사물은 여지없이 뜯어봤다. 등교는 고작 열 살에 끝났다. 하지만 벤저민의 진짜 공부는 그때부터 시작됐는데, 그는 독학으로 수학과 철학과 고전과 문학을 섭렵했다. 소년 벤저민은 책 덕분에 “약동하는 더 넓은 세계”와 연결됐다.

그 결과, 그의 상상력은 매번 전문가에 가닿았고 그가 손대는 분야는 미국에서도, 세계에서도 최초였다. 대표적인 사물이 바로 피뢰침으로, 벼락의 방향을 바꾸는 피뢰침의 발명가가 벤저민이었고 그는 연을 통해 전기를 모으려는 실험까지 했다.

당시만 해도 전기는 ‘과학의 막다른 골목’으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현상’ 따위로 치부됐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시도는 미국적 실용주의, 즉 인간에게 쓸모가 있어 보이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들여다보고 개선해 결과물로 바꿔내는 미국적 정신의 출발을 의미했다. 피뢰침 개발 후 그 유명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벤저민을 두고 “새 프로메테우스”라고 부를 정도였다.

이 정도 성과에만 그쳤다면 벤저민의 명성이 세계를 관통했을 리 없다. 벤저민의 진짜 공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피뢰침 개발 후 6년 만에 ‘전기 기술자’로서의 경력을 끝내버리고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 자체의 혁신으로 눈을 돌린다. 그의 관심사는 공공사업이었다. 손대는 것마다 ‘처음’이었다.

공공병원이 한 예다. 벤저민의 시대만 해도 펜실베이니아 국회는 “의사들 월급만 줘도 기금 전체를 잡아먹을 것”이라며 병원 설립에 무심했다. “주민 혜택을 위해 왜 의원들이 돈을 내느냐”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그러자 벤저민은 강수를 뒀다. 개인 기부자에게 2000파운드를 모아올 테니 의회에서 똑같이 2000파운드를 마련해 주겠느냐며 ‘기부금 매칭’을 제안했다. 국회 의장은 내심 ‘그런 큰돈을 모아올 리가 없다’며 그 요청을 승낙했다.

벤저민은 모금에 나섰다. 그의 실용적 사고가 빛을 발했다. “운명의 변덕(질병과 가난)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그의 주장이 지역 유지들을 움직인 것. 모금액은 2700파운드. 의장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꼼짝 못 하고 수표를 써줬다. 미국 최초의 소방서, 최초의 공공대학, 최초의 우체국 등 공공 시스템은 벤저민의 이런 사고방식에서 출발했다.

그는 미국 초대 헌법의 초안까지 작성했다. 10세 때 학업을 그만둔 사실상 무학의 인쇄공 출신 소년이 ‘피뢰침의 아버지’를 넘어 ‘미국적 정신의 아버지’가 된 것이다.

두 겹의 유머가 책에 가득하다. 하나는 벤저민이 남긴 유머러스한 말들이다.

스물다섯 명도 넘게 앉을 만한 식탁을 보고 벤저민이 “왜 이런 커다란 식탁을 두었느냐”고 묻자, 집주인은 “별다른 이유가 없다. 마련한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벤저민은 물욕을 비꼬았다. “그럼 저만한 크기의 모자도 하나 쓰는 게 어떻겠소? 마련한 여유가 있을 테니?”

그런 벤저민을 바라보는 저자의 유머도 이 책을 즐겁게 읽을 이유가 된다. 벤저민이 말년에 고생했던 질병인 ‘통풍’과 일대일로 대화하는 장면을 책에 삽입한 에릭 와이너는, “나도 내 IBS(과민성대장증후군)와 대화를 나눠볼까 생각 중이다”라며 독자에게 농담을 건넨다.

“벤저민이야말로 미국 최초의 자기 계발 전도사”라고 저자는 쓴다. 자기 계발 관련 책이 아무리 많이 쏟아져도 이런 품격를 가진 책 한 권쯤은 책장에 소중히 꽂아둘 만하다. 책 제목은 ‘프랭클린 익스프레스’이지만 펼치는 순간 ‘에릭 와이너 익스프레스’에 탑승하고야 마는, 마법의 탑승권같은 책이다.

프랭클린 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 지음, 김하연 옮김, 어크로스 펴냄, 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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