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황규인]장애인올림픽 패럴림픽은 장애 극복 무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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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극복했다."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 기간 언론 기사에는 이런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실제로 대한장애인체육회는 파리 패럴림픽을 앞두고 펴낸 '미디어북'을 통해 '장애를 극복했다'란 표현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언론사에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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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극복했다.”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 기간 언론 기사에는 이런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이런 기사를 읽고 나면 많은 이들이 ‘감동을 받았다’고 하지만 ‘화가 났다’고 항의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실제로 대한장애인체육회는 파리 패럴림픽을 앞두고 펴낸 ‘미디어북’을 통해 ‘장애를 극복했다’란 표현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언론사에 권고했다.
‘쓰지 않으면 좋겠다’는 표현이 있을 때는 ‘써주면 좋겠다’는 표현도 있게 마련. 장애인체육회 미디어북에는 ‘장애를 얻다’라고 써주면 좋겠다고 권고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사람들은 보통 좋은 것이 생겼을 때 ‘얻었다’고 표현한다. 그런 점에서 ‘장애를 얻다’란 표현을 추천하는 게 이상하게 보이기도 한다.
비장애인 가운데는 ‘통신 장애’라고 할 때처럼 장애를 어딘가가 고장 난 상태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다수다. 그래서 장애인이 어떤 일에 성공을 거뒀을 때는 ‘장애를 이겨내고’ 그 일을 해냈다고 생각하게 된다. 장애가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반면 장애인들은 ‘장애는 개인이 세상을 살면서 얻게 된 한 특성일 뿐’이라고 말한다. 세상 사람들의 인종이나 성별이 서로 다른 것처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있을 뿐이라는 얘기다. 그러니 ‘장애를 극복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인종 또는 성차별적인 발언을 들었을 때처럼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한 장애인 국가대표 선수는 “다 커도 142cm인 비장애인 체조 선수 기사에는 이 선수 키가 남들보다 작은 이유가 뭔지 설명하는 내용이 별로 없다. 장신 농구 선수 기사에도 뭘 먹고 키가 그렇게 컸는지 맨날 쓰지는 않는다. 그런데 장애인 선수 기사에는 장애를 얻게 된 과정을 매번 꼭 써야 하는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휠체어 사용자인 이 선수는 계속해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그렇게 손에 돈을 쥐여 주고 가신다. 한 선배가 ‘100만 원은 받아 봐야 휠체어 세계에 들어왔다’고 할 수 있다고 하더라”라면서 “선한 마음이라는 건 안다. 그런데 ‘국가대표 선수인 내가 왜 동정을 받아야 하나?’란 생각은 지울 수 없다”고 했다.
이 할아버지 할머니와 비슷한 이유로 패럴림픽 기사는 위인전이나 신파극으로 변할 때가 적지 않다. 패럴림픽 기사는 보다 극적으로, 보다 영웅적으로 써야 한다는 규칙이 따로 있는 것 같다. 그래야 장애를 극복하고 감동을 안긴 스토리를 완성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장애인 스포츠에 감동을 빼면 뭐가 남느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면 ‘선생님께서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분야가 무엇이냐’고 되묻고 싶다. 비장애인 대부분이 평범한 이웃인 것처럼 장애인도 대부분 그저 평범한 이웃이 되기를 꿈꾼다. 그리고 장애인 선수가 비장애인에게 감동을 주고 싶어서 노력하는 것도 아니다. 비장애인 선수가 그런 것처럼 스포츠를 통해 즐거움과 성취감을 느끼고 싶어 땀 흘리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수준까지 올라선 것이다.
장애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장애를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그 시선이 극복의 대상이다.
황규인 스포츠부 차장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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