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서 사망한 19세 아내…‘오사카 니코틴 사망 사건’ 진실은 [그해 오늘]
하지만 그날 새벽 B씨는 화장실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경찰에 신고한 A씨는 평소 우울증이 심했던 B씨가 만취해서 약물을 주사기로 투입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같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당시 B씨 휴대폰에서는 “결혼을 반대해서 우울하고 나가서 죽는 게 나을 것 같다. 딸이 없는 셈 치고 잘 지내라”라며 결혼을 반대한 부모에게 남기는 듯한 메시지가 남겨져 있었다.
경찰은 화장실에 숨져 있는 B씨 주변에서 사용한 흔적이 있는 주사기와 니코틴 원액을 발견했다. 유족 동의하에 B씨의 시신을 부검했고, B씨가 급성 니코틴 중독으로 사망한 것을 확인했다. 사인은 급성 뇌종창(뇌부종)이었다.
경찰은 B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판단하고 수사를 종결했다. 이후 A씨는 일본에서 아내 시신을 화장하고 장례까지 치른 뒤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사망 열흘 만인 2017년 5월 4일 보험사에 전화를 걸어 “신혼여행 중 숙소에서 아내가 우울증으로 숨졌다”며 사망보험금 1억 5000만원을 청구했다.
앞서 A씨는 신혼여행을 떠나기 전 아내에게 여행자 보험에 가입하도록 하고 보험금 수령인을 자신으로 처리했다. 하지만 보험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 지급이 안 된다며 지급을 거절했다. 당시 보험사 조사팀에서 근무하던 담당자는 신혼 첫날 아내를 잃은 비극을 겪은 남편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차분한 A씨 모습을 수상히 여겨 경찰에 신고했고 수사가 시작됐다.
◆ A씨 일기장엔 “40세 전까지 10억 모으기” 범행 계획
경찰은 A씨 집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일기장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는다. 그 안에는 아내에게 접근해 니코틴으로 사망시키기까지 계획과 ‘40살 되기 전까지 10억 모으기’ 등 범행 동기로 보이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경찰은 우선 현지 경찰에 요청해 사망 현장 사진과 사체 부검소견서 등을 확보했다. B씨의 사망 사인은 뇌종창이었고, 니코틴 농도가 ‘치사 농도에 달했다’고 적혀있었다. 팔에는 세 군데의 주삿바늘 자국이 있었는데 왼쪽에 두 군데, 오른쪽에 한 군데였다. 모두 정확히 정맥을 찔렀다.
경찰은 곳곳에서 미심쩍은 부분을 발견했다. A씨는 현지 경찰에 “아내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했는데, 정작 B씨의 혈액에서는 알코올이 검출되지 않았다. 이는 위에 있는 알코올이 혈액에 흡수되기 전에 사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B씨 팔에 정맥에 정확하게 놓인 주사자국도 의심스러웠다. 경찰은 전문가로부터 ‘니코틴 원액은 한 번 주사를 놔도 바로 독성이 퍼지기 때문에 혼자 힘으로 세 군데나 주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자문을 받았다. 더욱이 술을 마신 상태에서 정확히 정맥을 찾아 꽂을 확률은 거의 없었다.
이후 수사에서 A씨가 친구에게 “두 달만 데리고 있으면 된다” 등 범죄를 암시하는 대화를 나눈 사실이 밝혀졌다. 결국 경찰은 A씨를 추궁해 니코틴을 아내에게 주입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유제욱 세종남부경찰서 형사과 팀장은 KBS2 ‘스모킹건’에서 “조사를 할수록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섰다”며 “아내가 사망했는데 자전거를 잃어버린 사람보다 태연했더라”고 말했다.
또 “여성들에게 잘 접근하기 위해 성형수술을 하는가 하면, 비슷한 수법으로 여러 명에게 접근해서 더 큰 피해가 날 수도 있었다”며 “연쇄 범죄를 차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사건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A씨는 “부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어 해 니코틴 주입을 도와줬을 뿐, 살해한 것은 아니다”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이후 살인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당시 A씨는 심신 미약을 주장하며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신혼여행을 빙자해 아내를 살해하기 위해 용의주도하게 준비했다”면서 “아내가 숨지기 직전 니코틴 중독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을 텐데, 피고인은 범행을 부인하며 거짓말하는 등 최소한의 염치도 보이지 않고 있다”며 원심을 유지했다.
대법원 역시 A씨 상고를 기각했다. A씨는 무기징역을 확정 받고 복역 중이다.
박윤희 기자 py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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