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잘 돌아간다고? 구급차 타보시길" 尹발언 일파만파
윤석열 대통령이 전일(29일) 국정 브리핑에서 "비상 진료체제가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고 일축한 것을 두고 의료계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전국 40개 의대가 소속된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30일 대통령 국정 브리핑에 대한 논평을 내고 "대통령으로서 책임있는 발언이 있을 것이란 일말의 기대를 가졌으나 의료붕괴, 의대교육 파탄 상황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은 논평이 불가능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최근 응급의료 위기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대통령은 잘 돌아가고 있다고 한다"며 윤 대통령을 향해 "직접 119구급차를 타보시라"고 권했다. 윤 대통령이 전날 국정 브리핑 및 기자회견에서 의료개혁에 관해 묻는 기자들에게 "의료 현장을 한 번 가보시는 게 제일 좋을 것 같다. 특히 지역의 종합병원 등을 가 보시라"며 "여러 문제가 있지만 일단 비상 진료체제가 그래도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고 정부도 열심히 뛰고 있다"고 말한 것을 반박한 것이다.
전의교협은 "전국 408개 응급의료기관 중 전공의 수련기관인 100여곳의 문제가 심해지고 있고, 이곳에서 중증 환자를 주로 다루기에 더 큰 문제"라며 "의사들도 떠나고 배후 진료(응급실 치료 후 진료)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데 응급실이 문을 열었다고 해서 모든 의료 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처럼 말하는 건 심각한 정보의 왜곡"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의대 교육의 질이 떨어질 것이 자명한 만큼 2025년도 의대 증원을 물러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전의교협은 "잘못된 증원에 따른 의대 교육의 파행은 대통령 임기 3년을 버틴다고 그 영향이 끝나지 않는다"며 "30년, 아니 더 긴 시간을 두고 우리나라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지금이라도 근거 없는 증원 정책을 멈추고 학생, 전공의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의료 개혁의 출발이 될 것"이라며 "그래야 앞으로도 국민들이 안심하고 건강한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나라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의료계에서는 의료현장에 대한 대통령실의 이해도가 낮은 데 대한 실망감이 확산하고 있다. 서울 서남권 권역응급의료센터인 이대목동병원의 남궁인 응급의학과 교수는 이날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권역센터는 서울에서 가장 중증환자를 받는 곳이다. 적어도 의사가 3명 정도는 동시에 근무해야 제대로 된 진료가 이뤄지는데 지금은 혼자"라며 "6개월간 혼자 당직을 서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어젯밤에도 혼자 당직을 서고 있는데 심정지 환자 둘, 뇌출혈 환자, 뇌경색 환자, 심근경색 의증 환자가 각각 한 분 등 1시간 내로 다 왔다”며 “운이 좋아서 5분 모두 살아나셨지만 그냥 돌아가셨어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일산백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은 이날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응급실을 24시간 365일 정상적으로 운영하려면 최소 6명의 전문의가 필요하다는 게 해외 기준"며 "우리나라는 지금 권역센터의 절반 가까이에 전문의 혼자 근무를 하고 있다고 한다. 심각한 위협"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정부가 전국 응급실 대부분에 문제가 없다고 한 것은 거짓말"이라며 "정부가 생각하는 위기는 문 닫는 것이고, 문만 열려 있으면 위기가 아니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문을 열어도 기능을 못 하면 그게 위기"라고 말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수련병원의 필수, 응급의료 현장을 떠나 개원하거나 창업, 기업체 취직 또는 해외 병원 등으로 눈을 돌리는 의사들도 늘어나는 양상이다. 이날 응급의학의사회가 마련한 '한국 면허로 캐나다에서 의사하기', '미국 의사 되기', '호주에서 응급의학과 의사로 일하기' 등의 온라인 강연은 사직 전공의를 포함한 참석자들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해당 강연에서는 국내 대형병원에서 재직하다 캐나다, 미국, 호주 등 해외 병원으로 건너가 일하고 있는 현직 의사들이 온라인 강연의 연자로 나서 처우와 업무 강도 등을 소개했다. 주최 측에 따르면 이날 학술대회에는 응급의학과 사직 전공의와 전문의 등 400여명이 사전 등록을 마쳤고 해외 진출 관련 세션에는 시작시간 기준으로 100여 명이 몰렸다.
이 회장은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필요하고 수요가 많다"며 "언어적 장벽만 없다면 해외에 수많은 기회가 열려있다. 저도 기회가 되면 (해외로)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안경진 의료전문기자 realglasses@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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