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수의 책과 미래] 언어를 익힌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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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말들의 풍경으로 이루어져 있다.
말을 바꾸면 같은 세상도 달라 보인다.
김훈은 '생활을 통해 나온 사소한 언어'로, '작고 단단하게 영근 언어'로 말하라고 권한다.
"'바람에 꽃이 진다'라고 쓸 때, '에'는 인과관계를 말하기도 하지만, 논리와 정한을 통합하는 새로운 세계를 연다." 언어는 문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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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말들의 풍경으로 이루어져 있다. 말을 바꾸면 같은 세상도 달라 보인다. 시인이나 소설가는 언어를 갈고닦아 세계를 바꾼다. 작가들 에세이엔 일상에서 언어를 세심하게 조탁하고 끈질기게 정련하는 비법이 담겨 있다.
'허송세월'(나남 펴냄)에서 작가 김훈은 언어의 렌즈로 일상을 보는 법을 들려준다. 그는 발가벗은 일상에서 순간순간 우리를 건드렸다 스러지는 감정적 진실을 건져내고, 자기의 독특한 말씨로 벼리는 일을 반복한다. 속수무책의 삶이고 허송세월인 인생에서 윤슬처럼 반짝이는 매혹적 순간들의 언어로써 힘껏 낚시질한다. 성찰적 삶은 자기 말의 스타일을 탐구하는 데서 시작한다.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어떤 어조로 말해야 하는가, 말본새를 어찌해야 하는가"를 물을 때 삶은 달라진다. 욕망과 당파로 무장한 사나운 언어는 공허하고 무력하므로 고래고래 시끄럽다. 그 떠들썩한 와글거림, 그 말의 신기루, 말의 쓰레기에 중독되면, 우리 삶은 급격히 진실을 잃는다.
김훈은 '생활을 통해 나온 사소한 언어'로, '작고 단단하게 영근 언어'로 말하라고 권한다. 그런 말은 맑고 단순하다. 그러나 '언어와 삶이 서로 배반하지 않는 세계'를 담고 있기에 강하고 생생한 호소력을 띤다. 문제는 이렇게 말하는 게 힘들다는 점이다. 짙게 온축한 내공이 필요해서다. "단순한 언어로 표현하려면, 맑고 힘센 마음의 자리에 도달해 있어야" 한다. "삶의 한복판에 있는 자만이 말을 온전히 부릴 수 있다."
인간 마음은 언어의 집, 즉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말씨를 다듬는 길 말고, 마음을 힘세게 하는 길이 없다. 우리는 삶으로 말을 다지고, 말로 삶을 바꾸며 살아간다. 이 책은 그 절정의 기록이다. 가령, 명사나 동사와 비교하면 조사는 하찮아 보인다. 대충 쓰고 넘길 법한 말이다. 그러나 김훈은 신라 향가 "열치매 나타난 달이/ 흰 구름을 쫓아 떠가니"에서 출발해 "바람에 꽃이 진다"에 이르기까지 조사 '에'를 파고든다. 온 역사를 통해 이 '헐겁고 느슨하고 자유로운' 토씨 하나가 왜 '한국어의 축복'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바람에 꽃이 진다'라고 쓸 때, '에'는 인과관계를 말하기도 하지만, 논리와 정한을 통합하는 새로운 세계를 연다." 언어는 문법이 아니다. 언어를 익힌다는 건 감각적 사실에 사유의 깊이를 겹쳐 쓰는 일이고, 비루한 일상을 거룩한 세계로 바꾸는 일이다. 작가란 하찮은 말에서 큰 자유를 발견하고, 불후의 기억을 개벽한다. 말 한마디를 잘 다루면 삶은 예술이 된다. 김훈의 글들은 그 엄연함을 깨닫게 한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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