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덕의 도시 발견] 주공아파트의 재건축과 보존

2024. 8. 30.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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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화 상징 주공아파트
재건축때 한 개동 보존 주장
역사·의미 대한 고민도 없이
서울에만 적용해 설득력 없어
일본 UR도시기구처럼
진짜 의미있는 사례 아파트
실험 과정과 역사적 의미 담아
별도 공간 복원하면 어떨까

오늘은 한때 서울을 중심으로 주장되던 주공아파트 한 동 보존 운동이 실패한 이유를 되돌아본다. 현대 한국 도시의 발달 과정을 이 논란에서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십 년 사이, 1기 신도시의 재건축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 1기 신도시 아파트보다 더 예전에 지어진 아파트들도 아직 상당수 재건축에 들어가지 않은 상태다. 1기 신도시보다 먼저 지어졌지만 아직도 재건축이 시작되지 않은 아파트단지 가운데에는 서울 송파구의 잠실주공5단지도 있다. 나는 잠실주공아파트 1단지와 4단지에 살면서 주공5단지의 수영장을 이용하고는 했다.

돌이켜보면 여러 주공아파트 그리고 시영아파트에 살았다. 아기 때 서울 서초구의 신반포 주공아파트, 초등학생 때 송파구의 잠실주공아파트 1단지와 4단지, 신반포 한신아파트를 거쳐서 고등학교·대학교 때 서초구의 구반포 주공아파트, 유학 후 2년 정도 강남구의 개포주공아파트·시영아파트에 살았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강남 3구의 주공아파트를 모두 경험했다. 이들 가운데 잠실주공5단지 외에는 모두 재건축되었다. 이렇게 많은 주공아파트에 살았고 그 아파트들이 거의 다 사라졌다 보니 전국의 주공아파트에 대해서도 특별한 감정이 없을 수 없다.

강원도 원주시의 경우도 주공아파트 단지가 여럿 있지만, 그 가운데 원주터미널 바로 앞의 단계주공아파트는 1984년에 지어졌고, 현재 재건축 과정을 밟기 시작한 상태다. 늘 원주터미널을 드나들 때마다 여기를 언제 한 번 와야지 생각만 하다가 얼마 전에 드디어 답사를 했다.

주공아파트를 걸을 때마다 느껴지는 그리운 감정을 느끼며 상가 건물에 가보니 '단계슈퍼마켙'을 비롯해서 가게들은 모두 철수한 상태였다. 생자필멸, 회자정리. 태어난 것은 언젠가 사라진다.

그런 원리에 어긋나게 주공아파트 단지마다 한 동씩 원형 보존하자는 주장이 한때 득세했다. 이 주장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 번째는 모든 주공아파트를 보존할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보존 대상으로 거론된 주공아파트가 주로 서울에 집중되었다는 것이다.

주공아파트는 온돌의 도입 등 여러 가지 실험을 이어가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이런 실험 과정을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주공아파트는 서울에만 있는 게 아니라 전국에 있다. 나는 한국 주공아파트의 3대 걸작으로 고급 주공아파트의 첫 세대인 서울의 구반포 주공아파트(2023년 철거), 단층 주공아파트 단지를 실험한 충북 청주 봉명주공1단지(2020년 철거), 테라스형 주공아파트 단지를 실험한 부산 망미주공을 꼽는다.

주공아파트를 보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지만, 만약 보존한다면 현대 한국에서 이루어진 주공아파트의 실험 과정을 정리하고, 그런 실험의 결과물이 잘 남아 있는 주공아파트를 전국 구석구석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보편성에 대한 고민 없이 서울의 특정 주공아파트들을 중심으로 한 동 보존이 주장되다 보니 전국적인 동의를 이끌어내지 못했고 국가 정책으로 채택되지도 못했다.

여기서 한 가지 대안을 소개한다. 정말 의미 있는 주공아파트를 한곳에 이전 복원하자는 것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와 비슷한 성격의 일본 UR도시재생기구는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아파트 단지들을 한곳에 가져와 복원시킨 역사관을 운영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는 집합주택역사관이라 불렸고, 현재는 'UR 마을과 삶의 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운영 중이다.

한때 서울을 중심으로 일었던 주공아파트 한 동 보존 주장의 약점은, 내가 살았던 기억이 있는 곳이니 재건축 후의 가치 상승을 포기하더라도 남겨야 한다는 주장에 보편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사회적 합의를 얻기 어려운 그런 주장이 힘을 얻던 같은 시기, 청주 봉명주공1단지 아파트처럼 정말 사회적 의미가 있던 전국 곳곳의 주공아파트는 사라져갔다. 지금부터라도 전국적으로 조사하고 논의해서 현대 한국 사회를 대표할 만한 주공아파트 몇 동이라도 한곳에 이전 복원하자. 그리고 나머지 주공아파트 단지의 재건축에 대해서는 더 이상 근거 없이 사회적 논란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시덕 도시문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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