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친일’, 이승만 옹호 교묘해졌다···어떻게?[뉴스돋보기]
내년부터 학교에서 사용할 새 중학교 역사·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검정 결과가 공개된 이후, 한국학력평가원에서 내놓은 역사교과서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 출판사는 이번에 처음 교과서 검정을 통과한 곳이다. 역사학계와 역사교사들이 해당 교과서 내용에서 문제로 지적하는 핵심은 크게 ① 친일 인사 옹호·일본군 ‘위안부’ 축소 ② 이승만 정권 옹호 ③역사적 맥락 소거 등 세 갈래다.
교육부는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초·중·고교 검정교과서 심사 결과를 30일 관보에 게재했다. 내년에는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에 새 교육과정이 적용돼 교과서가 바뀐다.
고등학교 한국사 Ⅰ·Ⅱ는 총 동아출판, 비상교육, 지학사, 한국학력평가원 등 9곳의 출판사가 검정을 통과했다. 이중 한국학력평가원이 검정을 통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학력평가원의 역사 교과서가 친일 인사나 이승만 정부 옹호 등의 서술이 주를 이룬다는 지적이 나왔다.
복수의 역사교사들은 친일 인사나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서술을 축소하거나 논쟁거리로 제시하며 책임 소재를 흐렸다고 지적했다. 또 독재 정권이었던 이승만 정부를 옹호하고 역사적 사건의 맥락을 소거한 채 서술해 특정 진영의 입장만 우회적으로 강조했다고 비판했다.
이번에 공개된 한국학력평가원의 고등학교 한국사 Ⅰ·Ⅱ를 보면 한국 근·현대사의 핵심 사건과 인물을 주제탐구, 참고자료, 연습문제 등의 형식으로 서술했다. 과거 교학사 등의 출판사가 역사교과서 논란 때 본문에서 친일 등을 옹호하면서 비판을 받자 접근법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한국학력평가원 교과서는 친일파 시인 서정주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거나 ‘일제에 협력한 친일 지식인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지’ 학생들에게 묻는다. 역사교사 A씨는 “친일 인사에 대해 논쟁거리를 던지면서 그들의 책임 일부를 희석할 수 있는 접근방식”이라고 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참고자료와 연습문제 형태로 제시하면서 서술을 최소화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 교과서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보자’라는 연습문제가 담겼다. 본문에서는 성 착취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젊은 여성들을 끌고 가 끔찍한 삶을 살게 하였다’라고만 표현했다.
반면 동아출판은 “일제는 한국을 비롯한 식민지와 점령지의 여성들을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동원하였다. 피해자들은 구타나 고문, 성폭력 등 끔찍한 삶을 강요당했다. 이들 중 일부는 반인도적 범죄를 숨기려는 일본군에게 학살당하기도 하였다”고 서술했다. 그러면서 별도로 <일본군 ‘위안부’와 역사부정>을 두 페이지에 할애해 소개했다. 씨마스 역사교과서도 분량은 많지 않지만 일본군 ‘위안부’라고 부르는 이유를 부연 설명하면서 피해자의 증언을 덧붙였다.
한국학력평가원 역사교과서는 독재 정권이었던 이승만 정부를 옹호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이 교과서는 이승만 정부의 독재를 ‘장기 집권’으로 표현했다. 반면 동아출판은 “국가보안법을 개정하여 비판 세력을 탄압하였으며, <경향신문>을 폐간하는 등 언론을 통제하였다. 또한 이승만 정부는 동 단위로 국민반을 조직하여 주민을 효율적으로 동원·감시하려 하였다. 국민반은 정부 정책 선전, 선거 등에 동원되는 등 독재 체제 강화에 이용되었다”고 서술했다. 해냄에듀도 역사교과서에서 ‘독재 정권’이라는 표현을 썼다.
한국학력평가원이 ‘정읍 발언’과 관련해 이승만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는 지적도 많다. 한국학력평가원 역사교과서는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을 주장한 이승만의 ‘정읍 발언’을 ‘주제 탐구’ 형식으로 한 페이지를 할애했다. 그러면서 역사왜곡 논란이 일었던 교과서포럼의 <한국현대사>를 인용하기도 했다.
교과서 저자들은 정읍 발언과 관련해 ‘이승만이 남한 단독 정부론을 주장하지 않았다면 이후 상황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남한 단독 정부론을 주장하게 된 당시 동아시아 정세 및 북한 상황을 알아본다’ ‘이승만이 통일 정부가 아닌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을 주장한 이유를 알아본다’는 질문과 과제를 제시했다. 역사교사 B씨는 “교과서가 제시하는 질문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정읍 발언을 납득시키려는 의도가 묻어난다”고 했다.
반면 미래엔 역사교과서에는 작은 박스에 ‘사료’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정읍발언을 두 문장으로 소개했다. 본문에서는 “이승만은 남한만이라도 임시 정부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정읍 발언). 그러나 통일 정부 수립을 희망하던 한국인들은 이 주장에 대부분 동의하지 않았고, 미국도 소련과 협의하여 한국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책을 유지하였다”고 서술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김준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꾸린 한국사 교과서 검증단 소속 역사 교사들에 따르면 동아출판, 해냄에듀는 해방 이후 정부 수립 과정을 다루는 단원의 소제목을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한 노력’이라고 쓴 반면 한국학력평가원은 ‘자주 정부 수립을 위한 노력’으로 달았다.
역사교사들은 역사적 맥락을 서술하지 않아 특정 사건을 좌우 대립 구도로 몰아간다고도 지적했다. 대표 사례는 여수·순천 10·19사건(여순사건)이다. 여순사건의 배경에는 단독정부 수립 반대, 토지개혁 요구 등 복합적 맥락이 있는데 이같은 설명은 생략했다는 것이다. 한국학력평가원 역사교과서는 “군대 내 좌익 세력 등이 출동을 거부하고 여수와 순천을 점령하려 하였다(여수·순천 10·19 사건)”면서 ‘도주한 반란군’을 언급했다. 역사사교사 C씨는 “역사 교과서는 팩트만이 아니라, 특정 입장의 주장을 보여줄 때 맥락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며 “왜 정부의 충돌을 거부했는지는 전혀 서술하지 않고 좌우 대립만 강조했다”고 말했다.
올 초에는 여순사건에 대한 정부 차원의 첫 진상보고서를 작성할 ‘진상조사보고서작성기획단’(기획단)이 무고한 민간인 희생에 대해서는 밝히려 하지 않고 공산주의 반란과 좌익 개입 등에 조사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지적이 일기도 했다. 정부 위촉 기획단원에는 국정교과서 찬성 인사, 뉴라이트 인사가 대거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학력평가원 역사교과서 필자들에 대한 논란도 이어졌다. 다른 역사교과서 8권은 모두 필자가 10명이 넘는다. 한국학력평가원 역사교과서 필자는 5명뿐이다. 원래 필자는 6명이었으나 한 명은 집필을 완료한 뒤 교육부 별정직공무원으로 자리를 옮기며 필진에서 빠졌다.
필자 중 한 명인 배민 부산외대 교수는 일제시대를 옹호하는 과거 발언이 논란이 됐다. 김준혁 의원실이 입수한 배 교수의 인터뷰를 보면, 배 교수는 기존 한국사 교과서에 “반일·반자본주의 정서가 포함되면서 민족주의적이고 사회주의적인 시각이 대폭 강화됐다”고 했다. 2021년엔 한 유튜브 채널에서 “일제 시대(일제 강점기)를 간악한 일제에 의한 수탈과 착취, 억압, 각종 비윤리적인 만행의 역사라고 쓰는 데 정말 그런지 모르겠다”고 했다.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403061557001
https://www.khan.co.kr/national/education/article/202404121652001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 오동욱 기자 5d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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