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9종 모두 '자유민주주의'…1종은 이승만 '독재' 빠져
'5·18, 4·3'은 모두 다뤘으나, 분량 차이 있어
(세종=연합뉴스) 김수현 기자 = 새 교육과정(2022 개정 교육과정)이 반영돼 내년부터 학교 현장에서 활용될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8종 중 1종만 이승만 정권에 대해 '독재'라는 서술을 본문에서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 1종은 본문에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촛불 시위에 대한 서술을 빠뜨렸다.
모든 9종의 새 한국사 교과서엔 '자유민주주의'가 표기됐다.
학습 요소에서 빠져 제외 논란을 불러일으킨 제주 4·3과 5·18 민주화운동도 모두 반영됐으나, 분량의 차이는 있었다.
한국학력평가원 교과서, '이승만 독재' 없이 '집권 연장' 표현
30일 교육계에서 입수한 새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8종(주식회사리베르스쿨 발행 교과서 제외)을 보면 가장 보수적으로 평가받는 한국학력평가원의 교과서는 이승만 정권에 대해 '독재'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평가원은 3·15 부정 선거와 4·19 혁명을 다룬 단원에서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이 '집권 연장'을 위해 노골적인 부정 선거를 자행했고, 전국에서 이를 규탄하는 시위가 일어났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독재라는 표현 없이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이 국민이 원하면 물러나겠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고 미국으로 망명했다고 마무리했다.
반면 나머지 7종의 교과서는 모두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독재'를 언급했다.
비상교육이나 미래엔, 천재교과서 등은 4·19 혁명을 학생과 시민들의 힘으로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민주주의 혁명'이라고 표현했다.
2000년대 시민의 정치 참여 확대와 박근혜 정부를 다룬 대목에서도 평가원 교과서는 다른 교과서와 달랐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이 교과서는 민간인 국정 개입 의혹이 불거지며 대통령직에서 탄핵돼 정권이 교체됐다고 짧게 언급했다.
촛불집회나 촛불시위의 경우 본문엔 없고, 연도표에만 언급됐다.
반면 다른 7종의 교과서는 모두 본문에서 2016년 촛불집회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시민들의 퇴진 요구를 다뤘다.
미래엔 교과서는 박근혜 정부에 대해 측근과 관련된 국정 농단 문제가 공개되면서 국민적 저항에 부딪혔다며, 촛불 시위로 상징되는 대규모 시위가 계속되며 대통령직에서 파면됐다고 했다.
동아출판의 경우 촛불 집회나 시위를 직접 언급하진 않았으나, 박근혜 정부와 관련해 부정부패를 저지른 사건이 알려져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대통령의 탄핵과 하야를 요구했다고 적었다.
5·18, 4·3은 9종에서 모두 다뤄…평가원 교과서는 분량 짧아
교육부에 따르면 새 교육과정에서 빠져 '누락 의혹'이 불거진 5·18 민주화운동과 제주 4·3은 주식회사리베르스쿨 발행본을 포함해 9종에 모두 반영됐다.
앞서 새 교육과정에는 5·18 민주화운동과 4·3이 한 차례도 나오지 않아 각계 반발을 불렀다.
교육부는 교육과정의 줄거리와 방향만 간략하게 제시하는 대강화(간소화) 과정에서 5·18과 4·3이 언급되지 않았다며, 대신 편찬 준거(편찬상 유의점과 검정 심사기준)에 이를 반영했다.
편찬 준거에 따라 9종에는 모두 5·18 민주화운동과 4·3이 언급됐다. 다만 평가원 교과서는 이를 간단하게 다뤄 분량에서 차이를 보였다.
미래엔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신군부의 불법적 정권 탈취와 국가 폭력에 맞선 민주화 운동으로 언급했다. 또 시민들이 시민군에게 물과 주먹밥을 나눠주고 부상자들을 위해 헌혈하는 등 시민 공동체 모습을 보여줬다고 상세히 언급했다.
이에 반해 평가원은 광주 지역 대학생들이 비상계엄 해제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계속했고, 계엄군이 시민을 향해 발포하면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간단하게 서술했다.
4·3에 대해서도 주식회사씨마스의 발행본에는 무고한 제주도민이 많이 희생됐다고 언급하며 주제 탐구를 통해 학생들의 토론 활동을 유도하는 지면도 할애했다.
반면 평가원은 4·3 사건에 대해 남조선노동당 제주도당 주도로 일부 제주도민이 합세해 무장봉기를 일으켰고, 이후 정부의 진압과정에서 많은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했다고 비교적 짧게 마무리했다.
'자유민주주의' 9종 모두 표기, 진보 진영 반발할 듯
한편 모든 9종의 교과서에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서술이 반영됐다.
자유민주주의 표현이 포함된 새 교육과정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앞에 '자유'를 넣는 것은 보수 진영의 주장이다. 1987년 만들어진 현행 헌법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언급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진보 진영에서는 이런 표현이 독재 시절 '반북'과 동일시됐다는 점을 들어 '민주주의'가 더 중립적인 표현이라고 주장해왔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진보 진영이 새 교과서에 대해 반발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일각에서는 평가원 교과서 집필진 일부가 뉴라이트 인사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일부 집필진은 강연이나 저서 등을 통해 보수적인 색채의 언급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역사교사 출신인 교육부 청년보좌역이 초고를 작성해 이해 충돌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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