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연이 유재석을 무시했다고? 넘지 않아야 할 '선'에 대한 기준이 다를 뿐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얼마 전 전화를 받았다. '배우 전도연 씨 태도 논란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전도연이 <핑계고>에 영화 <리볼버> 홍보하러 나가서 유재석을 무시했다는 거다. <핑계고>가 유튜브 채널인지라 언급할 일이 아니라며 넘겼으나 그 이후 지난해 전도연이 tvN <유 퀴즈 온더 블록>에 출연했을 때와 엮어서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게 과연 논란으로 번질 사안일까?
지난 14일 <유 퀴즈 온더 블록>에 디즈니 플러스 4부작 드라마 <폭군> 홍보 차 출연한 차승원. tvN 예능 <삼시세끼> 10년 동반자 유해진과 갈등이 한 번도 없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차승원과 유해진은 아주 다르다. 그래서 분명 이견이 있지만 갈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넘지 말아야할 선을 알고 있어서다' 둘 다 결코 선을 넘지 않는다는 거다.
유재석과 전도연도 그 둘 못지않게 색이 다를 텐데 전도연이 <유 퀴즈 온더 블록>에 등장하는 순간 유재석이 '예나 지금이나 까칠하시네요' 라며 마치 이동욱이나 조세호에게 하듯이 농담을 던졌다. 그 말에 전도연이 살짝 정색을 하며 '저를 잘 아세요?' 라고 물었다. '예전에도 까칠하셨잖아요.' '글쎄 그 정도로 친하지는 않아서.'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이런 선을 넘는 말들이 오갔다.
이 장면을 두고 대학 동기라면서 그거 하나 못 받아주느냐, 배우랍시고 예능인 무시하는 것이냐, 이런 말이 나오나 보다. 발단은 2020년 '백상예술대상'. 유재석이 '도연아 반갑다' 했더니 '저도요'라는 답이 돌아오더라. 예전에는 반말을 했는데 갑자기 왜 존대를 하는지 모르겠다. 이러면서 둘이 과거 어떤 사이였는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됐다. 팬데믹 시기에 열린 시상식이다 보니 분위기를 살리고자 일부러 농담을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소소한 옥신각신이 급기야 <유 퀴즈 온더 블록>으로, 거기서 더 나아가 <핑계고>까지 이어진 것.
<유 퀴즈 온더 블록>과 <핑계고>에서 오간 말들로 유추해보자면 두 사람이 동기인 건 맞지만 접점이 그다지 없었다. 더욱이 유재석의 측근 중 하나가 전도연을 마음에 뒀었는데 전도연이 철벽을 쳤던 모양이다. 따라서 친하다기보다는 오히려 껄끄러운 면들이 있었을 게다. 그러나 10년 전 우연히 마주쳤을 때는 전도연이 먼저 '재석아'하고 인사를 했다고 한다. 그랬는데 '백상예술대상' 때는 왜 거리를 두는 느낌이었느냐. 전도연 말로는 그 사이에 유재석이 너무 대스타가 되어서 반말을 하기 어려웠다고.
유재석은 아마 진짜 친한 사이라고 여겨서 그리 하였을 터, 사실 유재석만 선을 넘었느냐, 전도연 또한 질세라 수차례 넘나들지 않았나. <핑계고>가 어떤 채널인가. 오가는 대화의 태반이 티격태격이다. 유재석은 이효리와 주고받는 티키타카를 전도연에게 기대한 게 아닐까? 문제는 두 사람의 온도 차이가 분명하다는 점. '친한 사이'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핑계고>에 전도연과 함께 출연한 임지연은 기억에 남을 순간을 공유했다면 친한 사이라고 여긴다나. 그래서 MBC <섹션TV 연예통신> 때 진행자와 리포터로 만난 남창희를 친한 사이라고 생각했다는 거다. 하지만 남창희는 '임지연 씨가 자신을 기억하기는 할까?' 했다고. <핑계고>는 주로 유재석이 친분이 있는 사람들과 말장난을 주고받는 자리가 아닌가. 따라서 연기 얘기를, 작품 얘기를 하고 싶은 전도연과는 맞는 자리가 아니었다.
전도연이 그 뒤에 정재형의 <요정 재형>에 나왔는데 전도연의 인생관, 영화관을 폭넓게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영화사나 기획사의 적절치 못한 선택이, 판단이 논란을 불렀다고 본다. 이 문제로 영화 <리볼버> 홍보를 다른 곳에서는 어떻게 다뤘나 보고자 성시경의 <만날 텐데>와 신동엽의 <짠한형>도 봤다. 덕분에 임지연의 다채로운 매력을 발견한 게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그날 <짠한형>에 배우 김종수가 함께 나왔는데 라임청, 레몬청을 선물로 사왔다. 그걸 받으며 신동엽이 '아니 어디서 이렇게 싸고 맛있는 걸'이라고 하는 게 아닌가. 유재석의 '예전부터 까칠하시더니'와 같은 맥락이다. <짠한형>은 초대 손님들이 값나가는 선물을 종종 들고 온다. 주로 비싼 술들. 그때와 반응이 천양지차로 다른지라, 방점이 '싸다'에 찍히는지라 보는 사람이 다 민망했다. 오랜만에 만난 누군가가 '너 원래 까칠했잖아' 하더라도, '어디서 이런 싸구려를 선물이라고 사왔느냐' 하더라도 웃으며 쿨하게 넘겨야 성격 좋다는 소리를 듣겠지? 이래서 사회생활이 힘든 거다.
다정함이며 친절함. 상냥함은 학습이고 연습이다. 꾸준히 자꾸자꾸 해야 느는 법. '나는 입에 칼이 들어와도 빈말을 못해, 특별히 반가울 게 없는데 왜 반갑게 아는 척을 해? 그거 다 가식이잖아' 이런 자세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임지연처럼 오버를 해가며 반가움을 표하는 쪽도 있다. 임지연 말로는 그래야 쉽게 가까워진다는데 상대방 입장에서는 누구에게 더 호감이 가겠나. 옳다 그르다 차원이 아니라 사람이 다르다는 얘기다.
<핑계고>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지난번 <유 퀴즈 온더 블록>에 배우 엄태구가 나왔다. 엄태구가 어려울 때 월세가 24개월까지 밀렸단다. 그런데 한 달 치 월세를 겨우 모아서 가져가면 집주인이 별 말씀 안하고 비타민을 주셨다고 한다. 너무 고마워서 눈이 오면 집 앞을 쓸어 놓고 택배 상자도 가지런히 해놓았다고. <핑계고>에서 엄태구의 예전 집주인 분을 모시면 어떨까? 어떤 분이신지 나만 궁금한가? 친한 사람들끼리 모여 정겨운 수다판을 벌이는 것도 좋지만 단 5분, 10분 만이라도 의미 있는 시간을 가끔이나마 가지면 좋을 텐데. 생각해보니 김석훈의 <나의 쓰레기 아저씨>에서 찾아뵙는 것도 좋겠다.
다시 정리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어떤 관계든지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농담이야, 장난이야' 하며 속 좁은 사람 만들지 말고 부디 선을 지키기를. 아울러 작품 홍보를 위해 배우를 대중 앞에 세울 때 여러모로 심사숙고하길 바란다. 지인이 애플TV <파친코> 제작 발표회 현장에서의 배우 윤여정 씨의 태도, 무례함에 놀랐다고 한다. 영상을 보고 나도 공감했다. 나이, 대단한 수상 이력, 그럼 주변 사람을 눈치 보게 만들어도 되는 건가? 관록의 박경림이 진행을 맡아 천만다행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수많은 언론 매체가 있었음에도 앞서의 예와 달리 조금도 논란이 되지 않았다. 장유유서 덕인지 아니면 신뢰가 불편을 상쇄시킨 것인지.
정석희 TV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사진=tvN,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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