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식 국방 교체와 함께 잊힐 ‘즉·강·끝’[박성진의 국방 B컷](14)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국가안보실장으로 내정되면서 그가 내걸었던 슬로건 ‘즉·강·끝’도 퇴출당할 조짐이 보인다.
신 장관은 지난해 10월 취임 직후 ‘즉·강·끝(즉각·강력히·끝까지)’ 구호를 전군에 내려보냈다. 장병들이 명확한 대적관과 국가관을 바탕으로 북한 도발 시 ‘즉각, 강력히, 끝까지 응징’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후 신 장관이 대비태세 점검을 위해 현장을 방문할 때마다 장병들의 ‘즉·강·끝’ 구호는 빠지지 않았다. 합참을 비롯해 육·해·공·해병대 군 수뇌부의 지휘 지침과 군이 언론에 배포하는 보도자료에도 ‘즉·강·끝’ 구호는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했다.
그러나 ‘즉·강·끝’ 구호는 지난 8월 13일 김용현 대통령실 경호처장이 차기 국방부 장관으로 지명되면서 시효가 끝나가는 분위기다. 신 장관이 후임자가 임명될 때까지 국방부 장관을 겸직하지만, 이제는 군 보도자료에서도 사라지고 있다.
■미군의 차가운 시선
신 장관의 ‘즉·강·끝’은 애초 전시작전권(전작권)도 없는 한국군에 주문하기 어려웠다. 이 구호가 전군에 하달됐을 때 일선 부대 지휘관들 사이에서는 ‘즉·강’은 알겠는데, ‘끝’은 정확히 뭐냐는 반응이 나왔다. 공군 A대령은 “장관은 끝까지 응징하라는데, 북한 주석궁까지 때리라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북한 주석궁 폭격은 전면전 상황에서 전작권을 가진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이 지시할 수 있는 사안이다.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의 일방적인 결심으로는 불가능하다.
군 수뇌부가 외쳤던 ‘즉·강·끝’은 뒤집어보면 남한이 북한을 아무리 두들겨 패도 전면전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나온 ‘홍보성’ 구호다. 한반도 전면전 상황에서 끝까지 가는 것은 미군인 한미연합사령관이 결정한다. 그러나 현행 전시 작계를 보면 미국은 한반도 전쟁에서 중국의 개입을 고려해 ‘끝’까지 갈 생각이 없다.
미군의 허락 없는 ‘즉·강·끝’이 구두선(口頭禪)일 수밖에 없는 현실은 과거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2014년 8월 UFG(을지 프리덤 가디언) 한미연합훈련 당시 벌어진 사건을 보자. UFG 훈련은 한반도에 우발상황이 생겼을 때 한미연합군의 협조 절차 등을 숙지하기 위해 한미연합사령부 주도로 매년 8월 실시하는 합동군사연습이다. 훈련은 워게임 모델을 활용한 도상지휘소 연습 방식으로 한다. 실제 병력과 전투장비가 아닌 컴퓨터로 전장 상황을 구현하는 모의(시뮬레이션) 지휘소 연습이다. 당시 모의 워게임은 북한 해군이 동해상에서 남측 해군 함정에 기습도발하는 상황을 가정해 진행됐다.
여기서 북 함정이 북방한계선(NLL) 근처 남쪽 해상을 항해 중이던 남측 해군 함정에 기습 포격을 가해 반파시키는 상황이 연출됐다. 그러자 한국 해군은 NLL 북쪽에 있던 북 함정을 향해 무더기 포 사격을 했다. 나아가 북 함정이 출항한 해군기지가 있는 원산을 향해 포탄을 퍼붓고, 미사일 공격까지 해 초토화했다. 도발 원점 타격은 물론 원점 배후세력까지 쑥대밭을 만드는 보복 공격 차원이었다.
훈련에 참여한 한국군 장교들은 비록 컴퓨터상에서 벌어진 보복 공격이었지만, 의기양양했다. 그러나 한국군과 미군의 압도적 대응에 대한 개념은 달랐다. 당시 이런 워게임 진행 상황을 보고받은 커티스 스캐퍼로티 한미연합사령관(미 육군대장)은 크게 화를 냈다. 한국군이 전면전 개전 이전 상황에서 유엔군사령관을 겸하고 있는 자신에게 의논도 하지 않고 비례성 원칙을 무시한 보복 공격을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스캐퍼로티 사령관은 한미연합훈련을 일시 중지시킨 후 화상회의를 소집해 훈련을 주도한 한국군 고위 장성들에게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스캐퍼로티 사령관은 나중에 한국군 고위층을 두고 ‘프로포셔널 카운터 어택(Proportional counter-attack·비례적 반격)’의 개념도 모르고 (공격) 버튼만 마구 누른다고 비판했다. 적의 공격 수준과 비례성을 고려하지 않고, 무식한 대응으로 군사적 상황을 악화시킨다는 의미였다.
미군의 또 다른 동맹군인 이스라엘 방위군(IDF)의 적 도발 시 3단계 대응 방안을 보면 스캐퍼로티 사령관의 반응이 이해된다. 이스라엘 방위군 중 현장의 전투부대는 ‘즉각(immediate) 대응’이 원칙이다. 상위부대인 지역사령부는 전·후 사정을 살핀 ‘맥락적(context) 대응’을 하게 돼 있다. 마지막으로 최상위 부대인 총참모부는 정치·경제·외교 상황을 고려한 전략적 판단에 따른 ‘지연된(delayed) 대응’을 한다. 전술단위 창끝부대에서부터 합참과 같은 최고 전략단위 부대에까지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즉·강·끝’처럼 전술적·전략적 대응을 구분하지 못하는 한국군과는 대조적이다.
역대 주한미군사령관들은 대부분 한국군 수뇌부에 대해 스캐퍼로티 대장과 같은 인식을 하고 있다. 한국군 수뇌부는 진보 정권에서는 미군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태도를 내세우고, 보수 정권에서는 너무 호전적 태도를 취한다는 것이다.
■골프장의 ‘즉·강·끝’
신원식 장관의 ‘즉·강·끝’ 구호는 골프장에도 등장했다. 국방부 장관실은 내외 귀빈과 군 관계자들에게 주는 기념품으로 ‘즉·강·끝’ 골프공을 제작했다. 골프공 하나하나에 ‘즉’, ‘강’, ‘끝’ 글자를 새겼다. 골프공 상자에는 ‘즉·강·끝’ 큰 글씨 아래 국방부 마크가 인쇄돼 있다. 그 밑으로는 ‘즉·강·끝’이 “티샷은 ‘즉’각, 임팩트는 ‘강’력히, 폴로스루는 ‘끝’까지 하라”는 의미라고 설명해 놓았다. 적이 도발하면 즉각, 강력히, 끝까지 응징하겠다는 결의에 찬 구호가 골퍼들의 ‘스윙 요령’으로 둔갑한 것이다. 한마디로 “즉·강·끝 의미는 그때그때 달라요~. 붕짜자, 붕짜!”가 됐다. ‘붕짜자, 붕짜’는 신 장관이 민간인 신분이던 2019년 9월 부산에서 열린 보수 집회에 참석해 무대에서 “문재인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면서 외친 추임새다.
군 골프장을 찾은 일부 군 간부는 그린을 향해 ‘즉·강·끝’의 자세로 골프채를 휘두른다. 이를 보고 매일 ‘즉·강·끝’ 구호를 외치며 북한군에 대한 적개심을 키워온 최전방 창끝부대 장병들은 어떤 심정일까. 아마도 물어보나 마나일 것이다.
‘상하동욕자승(上下同欲者勝)’은 한국군 장군들이 가장 좋아하는 손자병법 구절이다. 단어 그대로 해석하면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소통을 이루고 같은 곳을 보고 달려야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것으로, 전쟁에서는 ‘장수와 병사가 같은 목표를 가지고 나아가면 승리한다’는 뜻이다. 그린을 향해 강한 드라이버 샷을 치는 장군들의 ‘즉·강·끝’과 북한군을 바라보며 적개심을 키우라는 병사들의 ‘즉·강·끝’이 공존하는 한국군에서 상하동욕자승이 통용될지 의문이다. 게다가 ‘즉·강·끝’ 골프공은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졌다.
시간이 지나면 신 장관의 ‘즉·강·끝’ 구호는 코스를 이탈해 덤불에 박힌 골프공처럼 잊힐 것이다. 후임 국방부 장관이 ‘즉·강·끝’ 구호에 멀리건(다시 샷을 할 수 있는 기회)을 줄 것 같지는 않다. 애초부터 ‘즉·강·끝’은 정전협정을 관리하는 유엔군사령부의 교전규칙(Rules Of Engagement)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구호였다.
박성진 ‘안보22’ 대표·전 경향신문 안보전문기자 anbo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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