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언론 “정부·도쿄도, 간토 학살 역사적 사실 직시하라”
8년 연속 ‘별도 추도문’ 안 낸 고이케 지사 비판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사실을 외면하는 일본 정부와 도쿄도를 향해 진보 성향 아사히신문이 30일 “왜 부정적인 역사를 외면하나”라며 “사실을 직시하고 교훈으로 삼으라”고 직격했다.
아사히는 이날 “조선인 학살, 역사의 침묵은 용납할 수 없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 지사와 일본 정부를 이같이 비판했다.
3선인 고이케 지사는 취임 첫해인 지난 2016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추도문을 전달한 이후 올해까지 8년 연속 별도 추도문을 보내지 않기로 했다. 도쿄도는 고이케 지사가 조선인만이 아닌 “희생된 모든 분께 애도의 뜻을 표한다”는 입장이다. 일본 정부는 “정부 내에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연신 주장하며 역사적 사실 인정에 소극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아사히는 이에 대해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는 유언비어를 믿은 시민과 군, 경찰에 의해 많은 한반도 출신자가 죽임을 당한 것은 당시 보고서와 체험자의 수기 등을 통해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학살 배경은 조선인에 대한 경계심과 잠재적 차별 감정이라고도 짚었다.
그러면서 아사히는 “고이케 지사의 태도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묵살하는 학살 부정론과도 통한다”고 비판했다. 모든 희생자를 애도하므로 조선인만 따로 추도하진 않겠다는 고이케 지사 측 설명에 대해선 “학살은 천재지변과는 다르다”고 꼬집었다.
아사히는 일본 정부를 향해선 ‘간토 계엄사령부 상보’, ‘도쿄 백년사’ 등 학살 기록이 엄연히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사히는 “일부의 불확실성을 들먹이며 학살 자체를 덮어버리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며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사실을 인정하고, 유언비어에 의한 살상이 왜 일어났는지 조사하고, 조선인을 포함한 외국인 희생자의 실태를 밝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일본 도쿄대 교수와 직원들도 지난 5일 고이케 지사를 향해 조선인 학살을 인정하고 관련 추도식에 추도문을 송부하라고 촉구했다. 대학교수, 변호사, 작가 등 현지 지식인 117명은 조선인 추도식 장소 주변에서 극우단체가 ‘헤이트 스피치’(혐오 발언) 집회를 열지 못하도록 도쿄도가 막아 달라는 취지의 성명을 지난 25일 제출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자세는 이날도 ‘모르쇠’였다.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부) 인식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간토대지진은 1923년 9월1일 도쿄와 요코하마 등 간토 지역을 강타한 대지진이다. 지진 당시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키고 우물에 독을 풀었다’, ‘방화한다’는 등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일본에 살던 조선인 수천 명이 일본 자경단원, 경관, 군인 손에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일본 내에선 당시 학살 사실을 인정하지 않거나 조선인 추도에 반대하는 일부 극우 단체 등의 주장이 이어져 왔다.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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