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이 수행하며 요리합니다…“밥·찬·찌개 빠지는 것 없당께”

오윤주 기자 2024. 8. 30.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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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소문나면 곤란한데 충북 청주시 ‘아 그집 식당’
‘아 그집 식당’에서 음식을 내놓는 무상스님. 오윤주 기자
관광객을 상대하는 북적이는 ‘TV 맛집’은 사절합니다. 지역의 특색있는 숨은 맛집, 누가 가장 잘 알까요? 한겨레 전국부 기자들이 미식가로 이름난 지역 터줏대감들에게 물었습니다. “어디 가서, 뭘 먹어야 합니까?” 대답을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한두 군데 마지못해 추천하면서 꼭 한마디를 덧붙이네요. “여기, 소문나면 곤란한데.”
양준석 행복디자인사람 대표 활동가, 송현정 마음자리 심리상담연구소 소장과 함께 한 청주 ‘아 그집 식당’. 오윤주 기자

“스님 밥집 아요? 밥이며, 찬이며, 찌개며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겁나게 맛있당께.”

양준석(53) 행복디자인사람 대표 활동가가 팔을 잡아 끌었다. 그는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행동하는 복지연합 등을 거쳐 지금도 활동가로 산다. 자타공인 ‘청주 오지랖’으로, ‘양 국장’이라 부르며 흉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다. 전남 나주 맛집 아들인 데다, 자신도 다목적 공간 ‘행복카페’·‘아쉬람’을 운영하며 틈틈이 녹록지 않은 요리 실력을 선보이는지라 믿음이 갔다. 인도·라오스 등 공정 무역·여행을 통해 익힌 다국적 요리가 일품이어서 ‘나름 양쉐프’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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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 상당구 상당로 ‘아 그집 식당’. 오윤주 기자
청주시 상당구 상당로 ‘아 그집 식당’. 오윤주 기자

지난 26일 점심, 그가 안내한 곳은 청주시 상당구 상당로 204번길 ‘아 그집 식당’이다. 주소로 헤매기보다, 청주 우암초 옆 골목을 찾는 게 편하다. 얼핏 조립식 여관 같은 건물이어서 지나치기에 십상이다. 간판도 식당·찻집·찜질방이 함께 씌어 있다. 유리 출입문에 ‘황태 북어국’, ‘들깨 미역국’, ‘새뱅이 찌개’, ‘서리태 콩물’이라는 글씨가 없었다면 십중팔구 지나쳤을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섰더니 20~30평 남짓한 크지도 작지도 않은 공간이 나타났다. 설마 스님일까 했는데, 정말 파르라니 깎은 머리에 단정한 잿빛 옷을 입은 단아한 아주머니가 웃음으로 맞는다. “무상입니다.”

함께 하기로 한 송현정 마음자리 심리상담연구소 소장이 식당 안쪽에서 손을 든다. “새뱅이 찌개 괜찮으시죠?” 새뱅이는 호수·연못 등에 사는 작은 민물새우인데, 충청도에선 찌개로 많이 먹는다.

‘아 그집 식당’의 새뱅이 찌개. 오윤주 기자
새뱅이는 작은 민물새우인데, 충청도 등지에선 찌개로 많이 먹는다. 오윤주 기자
‘아 그집 식당’ 식당의 무한리필 나물 반찬. 오윤주 기자

빨간 새뱅이 찌개 냄비를 10여 가지 반찬이 호위하고 있는데, 1인 1만원이다. 모락모락 김과 보글보글 소리에 정신이 팔려있는데 “먼저 시장기를 속여 두라”며 콩물을 내민다. “식사 전에 드시면 속이 편안해지고, 소화 잘 돼요. 서리태 직접 갈아 만들어서 진하고 고소할 겁니다.”

승복 색깔 콩물을 한 숟갈 떠서 물었다. 눈이 조금 커진 송 소장이 배시시 웃으며 “이거 정말 맛있네요”라고 했다. 그랬다. 입안 가득 고소함과 함께 살짝 끈적한 기운이 기분 좋게 맴돈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다른 찬과 밥, 찌개의 맛을 가늠케 했다. 콩물에 빠져있는 사이, “늦었소. 미안하요”라며 양 국장이 앉는다.

“한 3~4년 전부터 나만 아는 단골인디 음식 참으로 맛나요. 묵을 만 하지라.”

양 국장의 너스레를 뚫고 주인장이 다가와 국자로 찌개를 섞고 잡곡밥을 건넨다. “깻잎·오이 절임, 김부각 등 빼곤 제철 나물 반찬이 대부분이에요. 많이 먹어도 부담되지 않아요. 고기 안 좋아하는 손님들이 많이 찾아요.”

가지 무침, 배추김치, 청경채 물김치, 숙주나물 무침 등으로 젓가락이 춤을 춘다. 송 소장은 “모든 반찬이 짜지도, 달지도,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간이 딱이다. 몸에 좋은 것들로 그야말로 다이어트 음식”이라며 “나름 종갓집 며느리로 요리 좀 해본 사람으로서 평하는 데, 정말 맛있다”고 말하고 겸연쩍게 웃는다. 송 소장은 심리상담과 요리를 곁들인 ‘푸드 심리 테라피’를 구상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반찬 욕심을 부리는 사이 앞접시에 찌개가 가득 담겼다. 빨간 새우가 붙은 울퉁불퉁 수제비와 푹 익은 무를 씹는 재미가 쏠쏠하다. 찌개 역시 맵지도, 달지도, 짜지도 않다. 따듯하지만 슴슴한 냉면처럼 시원하다. 송 소장과 양 국장이 연신 엄지손가락을 내보인다.

“뭐니뭐니해도 음식 맛은 재료예요. 텃밭 일구는 꽃집 아저씨 등 이웃에서 채소며, 식재료를 연신 가져다주곤 해요. 저도 경북 상주 언니가 보낸 참기름·들기름을 손수 짜고, 모두 국내산 재료를 써서 먹는 이를 생각하며 조리하니 맛있다고들 해 주시네요.”

‘아 그집 식당’ 식당에선 반찬 그릇이 비기 무섭게 새 반찬이 나온다. 오윤주 기자

반찬 접시가 비기 무섭게 부엌에서 또 다른 반찬이 나온다. 그만 주셔도 된다고 한사코 말리지만 이내 새 반찬이 식탁을 채운다. “난 잘 먹는 사람이 제일 이쁘더라. 밥은 남기더라도 몸에 좋은 나물 찬 더 먹어요.”

허겁지겁 식탐을 내다보니 도저히 다 못 먹을 줄 알았던 찌개 냄비의 바닥이 드러난다. 양 국장이 빈 접시를 모아 찌개 냄비 옆에 쌓는데 석가탑처럼 가지런한 ‘접시탑’이 됐다.

양준석 행복디자인사람 대표 활동가가 말끔히 비운 접시를 다보탑처럼 가지런하게 쌓았다. 오윤주 기자

언제부터, 어떻게 음식을 하고, 식당을 운영하는지 궁금했다.

“말하자면 길어요. 충북 보은에서 자랐는데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독학으로 중·고등학교를 마친 뒤 일본어 익혀 홍콩에서 통역 일을 했어요. 그러다 갑자기 몸이 안 좋아져 기도하다 운명처럼 출가했네요.”

그는 조계종 승가대, 승가 고시를 거쳐 ‘무상’ 법명을 받았단다. 30년 전이다. 서울 양천선원, 강원 횡성 대법사, 보은 속리산 법주사 등에서 생활하다 지인에 끌려 청주에 정착했다. 지금도 날마다 식당 옆 법당에서 수행한다.

“솔직히 출가 전까진 음식 할 줄 몰랐어요. 7년 전 함께 봉사하던 이와 여차여차해 칼국숫집 열었는데 절집 찬모 보살님한테 김치부터 일일이 배웠어요. 하다 보니 재미있고, 재주도 있다는 말에 용기를 냈지요.”

식당앤 찌개류뿐 아니라 고기 메뉴도 있다. “업이라 생각해요. 손님들이 자꾸 찾아 어쩔 수 없이….”

‘아 그집’은 식당이기도 하지만 봉사 공간이기도 하다. 홀몸 노인 등에게 틈틈이 음식을 대접하고, 주변 노인·장애인 가정 등엔 반찬을 만들어 찾아간다. 또 진천 정심원을 통해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지난해엔 스리랑카까지 나눔을 확산했다.

“음식 만드는 것이 제 마음공부요, 수행이요, 선업을 쌓은 과정이라 생각해요. 맛있게 드신 이들이 나눠 준 성금으로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으니 제겐 더없이 행복한 일이기도 하고요.”

글·사진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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