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의 위기에 몰린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이종세의 스포츠 코너]

2024. 8. 30.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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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문체부, 언론 등의 비판적 시각에 곤혹
자신의 3연임 위한 정관 개정 시도에도 눈총
혹한속 극기훈련, 파리선수단 해단식 취소 말썽
선거로 뽑는 체육단체장 문제 많아…제도 개선해야

7년 전쯤이었다. 문체부 차관을 지냈던 모 씨(당시 60대)와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점심을 했는데 “역대 대한체육회장은 신익희, 조병옥, 정주영 등 정‧재계의 덕망 있는 분들이 하셨는데 모래채취업자가 선거에서 당선됐으니 체육회의 앞날이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당시 필자는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선거 결과에는 승복해야 한다는 소신 때문이었다.

이 모래채취업자는 최근 체육계 논란의 중심에서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위기를 맞은 이기흥(69) 대한체육회장이다. 1985년 30세의 나이에 신한민주당 이민우 총재 비서관으로 일했던 이 회장은 1989년 우성산업개발을 창업, 경기도 하남시 미사리에서 채취한 모래를 공공주택 사업을 벌이는 한국주택공사 등에 납품, 엄청난 부를 축적하면서 체육계와 인연을 맺었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최근 국회, 문체부, 언론 등의 비판적 시각에 직면해있다. 파리올림픽에 참가했다가 지난 13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는 이 회장. 사진=연합뉴스 제공
당시 근대5종연맹의 당연직 회장사인 주택공사가 2001년 1월 이 회장을 근대5종연맹 고문으로 영입, 연맹에 재정 지원을 하게 한 것.

하지만 이 회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2004년 대한카누연맹 회장을 거쳐 2010년에는 대한수영연맹 회장을 맡은 뒤 2013년 제38대 대한체육회 회장 선거에서 김정행 후보를 도왔고, 김 후보가 당선되자 대한체육회 수석부회장에 임명됐다.

당시 부회장 중에는 대한항공 등을 이끄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사위인 김재열 대한빙상연맹 회장 등이 있었으나 그들을 제치고 수석 부회장이 됐다.

이기흥은 2016년 박근혜 정부의 대한체육회-생활체육회 통합 과정에서 김정행 체육회장이 물러나자 보궐선거에서 제40대 대한체육회 회장으로 당선됐고 2021년 1월 제41대 회장 선거에서 연임에 성공했다.

하지만 역대 34명의 체육회장 면면과 비교할 때 이 회장의 중량감이 이들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객관적 평가는 부정할 수 없다.

문체부, 체육회의 개정 정관 승인에 부정적
내년 1월 제42대 대한체육회장 선거에 세 번째 도전이 유력시되는 이기흥 회장이 최근 문체부와 국회, 언론 등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등 사면초가의 형국에 갇혀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기흥 회장은 지난 7월 4일 대한체육회 임시대의원 총회를 열고 체육 단체장 연임 제한 규정을 폐지한 체육회 정관 개정안의 승인을 주무 부처인 문체부에 요청하면서 체육회장을 제외한 육상 축구 등 경기단체나 지방체육회 등 체육단체 회장의 연임을 제한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기존 정관은 체육 단체장이 3연임을 하려면 스포츠공정위원회의 승인을 받도록 했는데 이를 무력화하기 위한 시도였다. 그러나 대한체육회의 의중을 사전 파악한 유인촌 장관 등 문체부 관계자들은 7월 2일 체육인 간담회에서 대한체육회의 정관 개정안이 올라와도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는 매년 4000억 원 이상의 국고를 대한체육회에 지원해 주는 문체부와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워온 이기흥 회장의 스탠스와도 무관치 않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유인촌 장관은 지난 26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대한체육회를 ‘괴물’에 빗대기도 했는데 28일에는 2025년 대한체육회 지원 예산 가운데 1000억 원 이상을 체육회를 배제한 채 경기단체와 지방체육회에 직접 교부하겠다고 밝혔다.

또 더불어민주당의 강유정 의원은 한국 체육계가 19세기 관행과 20세기적인 정부에 머물러있고, 선수들만 21세기에 와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TV 앵커 출신인 국민의 힘 신동욱 의원도 “올림픽을 보며 체육 행정에 실망한 분들이 정말 많다”고 지적했다.

여야의원들의 질의에 이 회장은 “좀 더 생각해 봐야겠다” “지속해서 쇄신해야 하는데 안 될 때가 있다” 등으로 답변했다가 의원들로부터 “답변이나 대응 태도가 미흡하다”는 질타를 받기도 했다.

일부 유력 일간지, 약속한 듯 이 회장 비판에 앞장
이 회장은 언론의 비판적 시각에도 직면해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26일 자 1면에 ‘이기흥 입맛대로 뽑는 올림픽 참관단’이란 제하의 기사를 게재했다.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이어 파리올림픽에도 불교계 등 비(非) 체육계 인사들을 참관단에 포함시켰으며 이들의 여행경비로 3억 6천만 원을 썼다고 보도했다.

이 회장은 한때 불교 조계종 신도회장을 지냈었다. 언론사에서는 가장 비중 있는 기사를 1면에 게재한다. 이 신문은 관련 기사를 6면에도 대서특필, 경각심을 촉구했다.

동아일보도 26일 자 ‘월요 초대석’에 체육을 전공한 강준호 서울대 사범대학장을 인터뷰했는데 강 학장은 “대한체육회장은 시대를 앞선 생각과 탁월한 리더십을 가진 분이 공적으로 봉사하는 자리다”며 “과연 대한체육회장이 자질과 비전, 역량을 가졌는지 객관적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학장은 또 한국 스포츠계는 대한체육회장, 지방체육회장, 경기단체장 등이 모두 선거를 통해 선출해 패거리 문화 조장 등 부작용이 심각하다“면서 “체육 단체장 선임위원회 같은 기구를 만들어 후보 검증과 선임 등을 결정짓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지난해 12월 엄동설한에 국가대표 선수들에 대한 극기 훈련 강행을 비롯해, 지난 13일 파리올림픽 선수단 본진 귀국 때에도 예행연습까지 마친 해단식을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등 이해하기 힘든 언행을 보여왔다.

이종세(대한언론인회 부회장·전 동아일보 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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