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거면 집 안 샀지"…잘 있던 백화점이 오피스로, 주민들 '분노'

박효주 기자, 김소연 기자 2024. 8. 30.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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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백화점 디큐브시티/사진=머니투데이 DB

한국의 '롯폰기힐스'를 목표로 설계된 신도림 디큐브시티가 쉐라톤 호텔에 이어 백화점까지 영업종료될 위기다. 이에 뿔난 주민들은 도로 곳곳에서 항의 전단을 뿌리고 구로구청 홈페이지에 민원 게시글을 쏟아내는 등 행동에 나서고 있다.

30일 서울 구로구의회 홈페이지 내 민원게시판에는 현대백화점 디큐브시티 용도변경을 반대한다는 민원이 수십 개 올라와 있다. 백화점이 들어선 '상업시설'을 오피스용 '업무시설'로 변경하는 것을 반대하는 민원이다.

한 주민은 게시판에 "구로구 내 '생각공장', '오브코스 구로', CJ 공장부지복합개발, 구로차량기지 이전 사업, 구로기계공구상가 개발, 구로중앙유통단지 개발로 신규 오피스 공급이 충분히 가능한데, 굳이 유일한 명품(유명)백화점을 오피스로 대수선 및 용도변경 해야 합니까?"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구로구 가치를 높여주는 현대백화점을 이지스자산운용이 오피스로 대수선 및 용도 변경해 임대하면 그 이익이 구로구 주민에게 돌아온다고 생각하시나요?"고 항의했다.

/사진=머니투데이 DB

지난 28일 오후 7시쯤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 출구 앞에서도 '백화점 용도변경 반대'라는 빨간색 어깨띠를 두른 주민들이 항의 서한을 행인들에게 배포하고 있었다.

'누구를 위해 신도림역 백화점을 오피스로 바꾸려는 겁니까?'라는 제목의 전단에는 신도림 현대백화점 디큐브시티 사진과 함께 구로구청의 백화점→오피스 용도변경을 반대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앞서 디큐브시티에 들어섰던 쉐라톤 호텔도 용도변경으로 현재 오피스로 바뀐 상태다. 그런데 또다시 구청이 주민들의 동의 없이 쉽게 용도변경을 허락했고, 호텔에 이어 백화점까지 철수 위기에 처한 것에 분노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구로구청은 디큐브시티 도시개발 최초 사업 취지 및 개발 목표를 준수해 구로구민들의 복합문화상업 시설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윤건영 국회의원 인스타그램


주민들은 지역구 국회의원인 윤건영 의원을 찾아가 2000여명의 주민이 참여한 백화점 폐점 반대 서명도 전달했다. 이에 윤 의원이 구로구청에 용도 변경에 대한 재판단을 요청하기도 했다.

상업시설이라 용적률 높여줬는데 대규모 '오피스'로…백화점은 '흑자'
주민들의 반발은 지난 2022년 6월 디큐브시티 백화점을 인수한 이지스자산운용이 상업시설로 허가받은 건물 용도를 변경해 전부 오피스 공간으로 바꾸겠다고 나선데서 비롯됐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지난 3월 서울 구로구청에 현대백화점 디큐브시티를 업무시설로 바꾸는 용도변경 신청서를 냈다.

이지스자산운용은 내년 6월 계약이 만료되는 현대백화점에도 임대차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애초 현대백화점은 대성산업과 10년 운영 뒤 10년 추가 임대를 논의하는 '10+10'형태의 계약을 맺었었고, 별다른 이슈가 없다면 재계약을 통해 2035년까지 운영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건물주가 바뀌면서 계약이 10년으로 끝나게 됐다.

현대백화점 디큐브시티는 지난해 2306억원의 매출을 냈다. 인근 더현대 서울 등 핵심 점포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매출이지만 이익도 꾸준히 나는 흑자 상태다. 이에 백화점 측은 계약 10년 연장을 희망했지만, 이지스자산운용 측의 오피스 전환 의사가 강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머니투데이
/사진=머니투데이


주민들이 반발하는 것은 구로구청이 구 및 신도림역세권 개발계획에 어긋나는 행보를 보여서다.

당초 구로구청은 2016년 신도림역세권과 경인로 등 주변을 상업지구로 바꿔가기로 하면서 해당 부지의 용적률을 상향했다. 권장용도를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그런데 건물주가 바뀌면서 돌연 대규모 상업시설이 업무지구로 바뀔 위기에 처한 것이다.

실제 롯폰기힐스 설계사가 지은 '주상복합' 건물…'백세권'이었는데 돌연 오피스로
디큐브시티는 2011년 대성산업의 연탄공장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건물로, 상업시설과 주거시설이 복합된 형태다. 과거 공업 단지로 알려졌던 신도림동이 신흥 주거 단지로 이미지가 바뀌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실제 일본의 롯폰기힐스 모리타워를 설계한 유명 건축설계회사 '저드(Jerde)'가 '최초 3분도시'라는 콘셉트로, 타워동(백화점, 호텔 등 상업시설)과 아파트동으로 나눠 지은 건물이다. 주상복합을 추구한 만큼 백화점을 비롯한 상업시설이 디큐브시티 정체성을 좌우한다.

건축설계회사 저드의 홈페이지. 디큐브시티 내 상업시설이 건물의 중심 역할을 한다고 적혀있다./사진=저드 홈페이지


이에 주민들은 현대백화점 폐점뿐 아니라, 구로구청이 용도변경을 통해 상업시설을 오피스화한다는데 뿔이 났다. 특히 디큐브아파트 주민들은 디큐브시티 상업시설과 연결되는 주상복합 형태라는 점을 전제로 분양받거나 입주한 사람들이 많아 반발이 더 크다.

앞서 이지스자산운용이 매입해 '신도림 핀포인트'로 바꾼 오피스에 대한 불만도 작용한다. 핀포인트 건물이 주거 단지 한 가운데 들어서면서 오가는 행인이나 어린 아이들까지 근무자들 흡연에 무방비하게 노출되는 탓이다. 주거 단지 일대에 조성한 공원 등이 대규모 흡연구역으로 바뀌면서 인근 주민들 불만도 커졌다.

이런 가운데 구로구청은 용도변경 안건에 대한 심의 의결을 마친 것으로 확인됐다. 용도변경 신청서가 접수되면 신고 절차만 남은 셈이다. 구로구의회는 홈페이지 민원 게시판에 "신도림 현대백화점 대수선 및 용도변경은 현재 검토 중인 사항"이라고 답변했지만, 사실상 내부적으로는 모든 절차가 끝난 상태로, 주민들에게 거짓 답변을 남긴 셈이다.

주민 반발이 심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 측은 이미 제출한 용도변경 신청서를 보완하겠다고 스스로 회수해간 상태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인근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리테일 및 편의시설을 기존 계획보다 추가 개선하려고 한다"면서 "현대백화점 폐점 이후에는 코엑스나 IFC처럼 상층부는 오피스로, 저층부는 새로운 브랜드의 리테일로 리뉴얼하겠다"고 부연했다.

박효주 기자 app@mt.co.kr 김소연 기자 nicks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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