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만 표 더 가져와야 이긴다”…이재명의 우클릭에 담긴 ‘대선 프로젝트’
‘적수 없다는 자신감’에 野의 금기였던 감세 추진…“기존 ‘기본 사회’ 주장과 배치돼” 지적도
(시사저널=구민주 기자)
"'이재명 1기'의 목표가 당권 장악이었다면 '이재명 2기'의 목표는 단연 대권 쟁취다. 이 대표의 시선은 이미 바깥의 먼 곳을 향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와 가까운 더불어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8월18일 연임 성공과 동시에 이 대표의 정치 시계가 2027년 대선에 맞춰졌다고 말했다. 이제 이 대표가 제시하는 키워드는 차기 대선의 캐치프레이즈가 되고, 발표하는 정책들은 집권 플랜이 될 것이라고도 전했다. 4·10 총선과 8·18 전당대회를 거치며 '집안 단속'을 끝마친 이 대표의 대권 행보에 날로 속도와 자신감이 붙고 있다.
먼 바깥을 향하기 시작한 이 대표의 시선은 자연히 오른쪽에 꽂혔다. 그곳엔 단단하게 결집된 집토끼와 달리 묽게 퍼진 중도의 산토끼들이 있었다. 이재명 1기의 목표였던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드는 동안 이들은 민주당에서 멀어졌다. 민주당이 좀체 30%대 정당 지지율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도 이들의 외면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 대표가 연임과 동시에 '중도 외연 확장'을 핵심 과제로 내걸고 '우클릭' 행보를 택한 이유다.
이 대표는 오른쪽을 향한 러브콜을 '먹사니즘'이란 단어로 압축해 내놓았다.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 선언한 7월10일, 그는 "'먹고사는 문제가 유일한 이데올로기'라는 뜻"이라며 "성장의 회복과 지속 성장이 곧 민생이자 '먹사니즘'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성장'이 더 이상 보수의 전유물이 아니며 민주당에서도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논의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로 풀이됐다. 민주당은 오는 10월 재보궐선거와 2년 후 지방선거를 먹사니즘 정책의 리허설 무대로 삼고, 이를 차기 대선까지 이 대표의 새로운 핵심 키워드로 끌고 갈 방침이다.
이 대표는 먹사니즘 행보의 구체화 방안으로 가장 먼저 '감세' 카드를 꺼내들었다. 전당대회를 거치는 동안 그는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완화와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유예 뜻을 반복해 내비쳤고 상속세에 대해서도 전향적 입장을 취했다. "이들을 마치 신성불가침 의제처럼 무조건 수호하자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는가 하면, "평생 벌어 집 한 채를 마련한 '1가구 1주택자'에 굳이 종부세를 거둬야 하느냐"며 좀 더 직접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85.4%와 0.73%p, 파격 감세 꺼내든 이유
이 대표가 그동안 민주당에서 금기시돼 온 감세 카드를 이토록 파격적으로 꺼내든 이유는 '두 가지 숫자'로 설명된다. 우선 85.4%. 이 대표가 이번 전당대회에서 얻은 최종 득표율이다. 야권 내에 더는 자신의 '적수'가 없으며, '금기'를 깨도 집토끼 이탈이 크지 않을 거란 이 대표의 '자신감'이 파격 감세 이슈를 던질 수 있게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의 빠른 '레임덕' 추세와 여권의 적전 분열이라는 대외적 요인 역시 이 대표의 정책 자신감을 키워줬다는 시각도 있다. 친명(親이재명)계 좌장으로 불리는 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통화에서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은 방향도 없고 중구난방이다. 국민의힘도 마땅한 수를 내놓지 못하고 있고 한동훈 대표는 말장난만 하고 있다. 이대로 두면 큰일 나겠다는 국민적 위기감은 커지고 있다"며 "이 대표로선 국민 다수가 필요한 경제정책을 주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를 움직인 또 하나의 숫자는 0.73%다. 이 대표와 민주당엔 최근의 실패 기억이 강렬하게 각인돼 있다. 2022년 대선에서 이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불과 0.73%포인트 차이로 패했다. 민주당은 서울, 넓게는 수도권에 거주하는 중도 표심이 승부를 좌우했다고 봤다. 당시 이 대표는 역대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가 주로 이겨왔던 서울에서 윤 대통령에게 4.83%포인트 밀렸다.
대선 당시 선거캠프에서 전략을 맡았던 이연희 민주당 의원은 통화에서 "이 대표는 1610만 표나 얻고도 대선에서 패배했다"며 "다음 대선에서 이기려면 이보다 최소 170만 표를 더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들(170만 표) 대부분이 수도권 중산층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금투세와 종부세에 실질적 부담을 느끼는 분들과 상당히 겹친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감세를 기치로 내건 이재명 대표의 우클릭은 지난 대선에 대한 반성적 분석의 결과이자 미래를 위한 전략적 대비란 얘기다.
'기본사회=증세'인데…친명 "정책 유연성"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의 이 같은 우클릭 행보가 중도 민심을 얻기 위한 어젠다 선점에선 일정 부분 성공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무엇보다 정치권 내 '민생 정책 경쟁'에 불을 지피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 이 대표가 먹사니즘을 띄우자 한동훈 대표도 '격차 해소'를 키워드로 꺼내들며 빠르게 중원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후 양측 모두 공전을 거듭해온 민생 정책 논의와 비쟁점 법안 합의에 경쟁적으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물론 뜨거운 관심만큼이나 이를 둘러싼 논쟁도 뜨겁다. 이 대표의 행보가 중도를 설득해 '확장'에 성공하기 위해선 몇 가지 돌파해야 할 과제가 있다. 가장 큰 난관은 이 대표의 대표적인 정책 브랜드인 '기본사회 시리즈'와의 충돌이다.
이 대표의 정치 여정은 줄곧 '기본사회' 브랜드와 함께해 왔다. 지난 대선 당시 직접 기본사회위원회를 만들고 기본소득·기본주택·기본대출 등 '기본 시리즈'를 발표해 핵심 공약으로 삼았다. 이 대표는 8월18일 당대표 수락 연설 후 기자회견에서도 "보편적 복지국가를 넘어, 국민의 기본적 삶이 보장되는 보편적 기본사회를 준비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런 이 대표의 뜻을 받들어 민주당은 전당대회 기간에 당 강령을 개정하고 당이 만들고자 하는 사회를 '기본사회'로 명시하기도 했다. 기본사회는 이 대표 개인이 아닌 공당 민주당 전체의 지향점이 됐다고 할 수 있다.
적극적 복지를 실현하는 기본사회는 기본적으로 증세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이 대표가 기본사회 실현과 종부세·금투세·상속세 등에 대한 감세 정책을 함께 외치는 자체가 모순적이란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당대표 후보 경쟁자였던 김두관 전 의원은 "재원을 깎아 어떻게 먹사니즘을 제대로 실현하려 하느냐"고 꼬집었다. 당 밖에서도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과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기본사회를 외치던 사람이 갑자기 신자유주의 감세론자로 둔갑했다" "기본소득 주장하던 사람이 금투세 완화를 민생 의제로 제시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각각 비판했다.
이 대표 측은 '모순'이 아닌 '유연함'이라는 입장이다. 정성호 의원은 "정책이란 건 현실에 따라 유연하게 판단하고 제시할 필요가 있다. 기본사회라는 담론이 중요한 축이긴 하지만, 일단 담론보다는 당장 서민과 중산층이 고통을 호소하며 강하게 요구하는 부분들에 먼저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 공당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중도 확장이라는 명분하에 당의 정통성을 지나치게 흔드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당의 정체성과 반대 방향으로 가는 만큼 오히려 정치적 실익이 적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당내 최대 의견그룹 '더좋은미래' 대표를 맡고 있는 김성환 의원은 이 대표의 금투세 완화 주장을 "자본시장 초고소득자들만을 위한, 그동안 민주당이 일관되게 반대해온 사실상의 부자 감세"라고 규정했다. 한 민주당 관계자도 "이 대표 핵심 지지층은 흔들리지 않겠지만 오히려 중도 언저리에 머무르는 민주당 연성 지지자들이 더 멀리 이탈할까 우려된다"며 "오른쪽으로 한 번에 너무 꺾었다"고 꼬집었다.
사법 리스크 희석 위한 민생 드라이브?
이에 대해 친명계 이연희 의원은 "당내 입장차가 팽팽한 건 사실"이라면서도 "세금 문제는 나 자신이 과세 대상이 아닐지라도 그 과세가 시장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퍼지면 부정적인 파장은 빠르고 넓게 퍼진다. 소수를 위하는 정책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큰 선거들을 앞두고 확장 전략을 숙제로 삼고 있는 상황에서 현실적인 고려와 타협은 불가피하다. 세금 걷는 정당은 인기가 없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가 안고 있는 '사법 리스크'라는 고질적 변수도 물론 있다. 오는 10월 전후로 이 대표와 관련된 일부 판결이 나오는 가운데, 결과에 따라 이 대표의 정책 추진 동력이 크게 꺾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 일각에선 이 대표가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희석하기 위해서라도 지금의 중도 실용 노선에 더욱 힘을 실을 거란 관측도 나온다. 민생·경제 면에서 수권 능력을 입증해 법적·도덕적 결함이 줄 정치적 타격을 최소화할 계획이란 것이다. 민주당 사정에 밝은 한 범야권 관계자는 "이 대표에게 높은 도덕성을 기대하는 국민은 없지 않나"라며 "유죄 판결을 받은 범죄자여도 내 삶을 실질적으로 바꿔줄 것 같은 기대를 심어주는 것, 그게 곧 이 대표와 친명의 진짜 중도 전략이고 대권 전략이 아닐까 싶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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