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쪽 같아요” 10㎝만 절개하고도 ‘신장이식’ 됩니다 [메디컬 인사이드]

안경진 의료전문기자 2024. 8. 30.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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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철 서울성모병원 혈관·이식외과 교수
복부 하방 피부 약 10㎝만 절개해 신장이식
2006년부터 신장이식수술 '최소절개' 시도
18년동안 국내 유일 지속해 첫 100례 달성
전통 수술법보다 상처 통증, 합병증 적어
일상생활 복귀 빠르고 환자 만족도도 높아
박순철(가운데) 서울성모병원 혈관·이식외과 교수가 신장이식 수술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서울성모병원
[서울경제]

“교수님, 혹시 저도 비키니 수술이 가능할까요?”

서울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에 입원해 있던 40대 남성 김 모 씨가 회진을 돌던 박순철(사진) 혈관·이식외과 교수를 조심스레 불렀다. 김씨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만성 신부전이 발병해 투석으로도 버티기 힘들 정도로 신장이 망가져 이식수술이 필요한 지경이 됐다. 다행히 기증자와 조직접합성 항원형이 일치한다는 검사 결과가 나와 이식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입원 기간 같은 병실을 썼던 환자로부터 이른바 비키니 수술로 불리는 ‘피부 최소절개 신장이식’을 듣고 이런저런 궁금증이 생긴 모양이었다.

◇ 신장기능 망가져 투석으로도 버티기 힘든 말기 신부전···이식이 마지막 희망

신장(콩팥)은 혈액 속에서 노폐물을 걸러내는 일을 비롯해 전해질 균형 유지, 혈압 조절 등 몸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장기다. 신부전은 신장에 병이 생겨 기본적인 기능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저하된 상태를 말한다. 체내 여러 종류의 노폐물(요독)이 쌓이다 말기 신부전 단계가 되면 주로 당뇨·고혈압 등으로 신장의 혈관이 손상되면서 신장 기능이 10% 이하로 떨어진다. 투석으로도 신장 기능을 유지하기 힘든 환자에게는 건강한 사람이나 뇌사자의 신장을 받는 신장이식 수술이 최후의 수단이다. 건강한 공여자의 신장을 환자의 동맥, 정맥과 방광에 연결해 정상적으로 기능하도록 함으로써 완치까지도 기대할 수 있다. 성공적 신장이식은 투석과 비교했을 때 환자의 장기적 예후와 만족도가 모두 높다. 문제는 뇌사 기증자가 드물어 이식이 성사되기 녹록치 않다는 점이다.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에 따르면 2022년 국내에서 시행된 신장이식 2034건 중 살아있는 공여자로부터 신장을 기증 받는 생체이식은 1357건(66.7%)이다. 가족, 친지 등 주변에서 기증자를 찾다가 여의치 않으면 기약 없이 뇌사자의 장기이식을 기다려야 한다. 2022년 기준 신장이식의 평균 대기기간이 2479일(약 6~7년)이었음을 고려하면 이식수술을 받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깝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수술 후 흉터를 따지는 건 사치로 여겨질 정도였다.

박 교수는 피부를 10㎝ 미만으로 절개하는 피부 최소절개 신장이식 수술을 2006년부터 시작해 현재까지도 국내 유일하게 시행하고 있다. 전통적인 신장이식 수술은 공여 받은 신장을 넣는 과정에서 복부 피부에 절개창이 필요해, 좌측 또는 우측 하복부에 길이 20~25㎝ 정도의 ‘L’자 모양 흉터가 남는다. 일명 ‘하키스틱’ 절개창이라고도 부르는데 통증이 심할 뿐더러 우측 또는 좌측 하복부의 배꼽 부위까지 제법 큰 상처가 남아 남모를 고충에 시달리는 환자들이 많았다. 박 교수는 전임의 시절 이식수술 후 상처 치료를 받으러 온 환자가 흉터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는 모습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당시 스승이었던 문인성 교수에게 이러한 고민을 털어놨고, ‘뱃살이 많지 않은 마른 환자부터 절개 크기를 줄여보자’고 뜻을 모았다.

◇ “감쪽 같아요” 새 신장 선물 받은 환자 미소···의료진에게도 큰 보람

피부 최소절개 신장이식 수술은 복부 하방 비키니라인으로 가로 10㎝ 정도 길이의 상처를 통해 이뤄진다. 체질량지수(BMI) 25㎏/㎡ 이하 비교적 마른 체형의 환자에서 주요 혈관 문합이 제한되지 않는 경우에 시도할 수 있다. 박 교수는 “기존 절개법보다 손상되는 부위가 적다 보니 상처 통증과 합병증이 적고 회복 속도와 일상생활 복귀가 빨랐다”며 “무엇보다 작은 흉터로 인한 미용적인 효과가 커서 환자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물론 전통적인 수술법보다 수술을 하는 공간이 제한적이라 집도의 입장에서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공여 받는 신장의 크기나 동맥 개수에 따른 변수도 고려해야 한다.

박순철 서울성모병원 혈관·이식외과 교수가 수술실에서 동료 의료진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사진 제공=서울성모병원

박 교수는 피부 최소절개 신장 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들의 신장 기능과 장기 생존율 등 이식 관련 전반적인 치료성적과 합병증이 전통적인 수술 방법과 비교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는 연구 결과를 여러 차례 학술대회와 국제학술지에 발표해 왔다. 환자에 대한 변치 않는 애정과 관심이 우수한 치료성적으로 증명된 셈이다. 혈관·이식 분야의 특성상 응급수술이 많아 힘들지 않느냐고 물으니 박 교수는 “피곤할 때도 있지만 수술 후 환자의 바이탈 사인(vital sign·활력 징후)이 달라지는 걸 보면 설렌다”고 했다. 최근에는 피부 최소절개 방식으로 수술을 받은 환자들이 “속옷을 올려 입으면 흉터가 보이지 않고 감쪽 같다”며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는 기쁨이 추가됐다.

박순철 서울성모병원 혈관·이식외과 교수가 ‘피부 최소절개 신장이식’ 수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서울성모병원

고혈압·당뇨 등 성인병 유병률이 증가하면서 만성 신부전으로 인해 신장이식까지 필요한 젊은 환자가 급증했다. 덩달아 이식 분야에서도 미용적 효과가 뛰어난 최소 침습수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다. 상처를 줄이기 위해 로봇 보조 복강경 신장이식 수술도 시행되는데 공간이 협소해 로봇 장비를 자유롭게 사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비용 부담도 커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제한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1969년 3월 25일 명동 소재 성모병원에서 국내 최초 신장이식을 성공한 서울성모병원은 최근 ‘피부 최소절개 신장이식 수술 100례’를 달성했다. 18년 전과 비교하면 흉터 크기도 눈에 띄게 줄었다. 박 교수는 “환자가 먼저 찾아보고 피부 최소절개 수술을 요청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며 “100례 중 12명이 남성일 정도로 남성 환자들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는 비교적 마른 체형의 만성신부전 환자 위주로 하고 있지만 환자들의 만족도가 큰 만큼 적용할 수 있는 환자 범위를 넓히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안경진 의료전문기자 realglass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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