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석유'의 역설[우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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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캐즘(Chasm: 일시적 수요 정체) 탓에 그렇지 않아도 업황이 부진한데 리튬 가격 하락까지 겹쳐 실적 둔화 속도가 더 가파르다는 하소연이다.
그동안 업계 실적 발표때 마다 나온 단골 코멘트도 '광물 가격이 반등하면 실적이 일부 개선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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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리튬 가격 하락을 두고 최근 배터리 밸류체인 기업 전반에서 나오는 반응이다. 전기차 캐즘(Chasm: 일시적 수요 정체) 탓에 그렇지 않아도 업황이 부진한데 리튬 가격 하락까지 겹쳐 실적 둔화 속도가 더 가파르다는 하소연이다. 2022년 11월만 해도 kg당 11만원에 육박한 리튬은 전기차 시대의 입구에서 '하얀석유'로 통했다. 그런 리튬이 이제 1만원대 까지 폭락했다. 리튬은 배터리 핵심소재인 양극재 원가의 40%를 차지한다. 양극재는 배터리 원가의 40%고, 배터리는 전기차 원가의 40%다. 리튬 가격 폭락이 밸류체인 전반에 타격을 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우선 양극재 업계. 양극재 생산 기업이 배터리사에 양극재를 판매하는 가격은 판매 시점의 리튬 가격과 연동된다. 그런데 양극재사가 리튬을 매입하는 시점과 양극재를 판매하는 시점 간에는 2~3개월 시차가 있다. 지금처럼 리튬 가격이 우하향하면 '비싸게 사서 싸게 파는' 최악이 상황이 발생한다. 다음 배터리 업계. 리튬 가격 하락기에 양극재를 싸게 산 배터리사는 완성차 업계에 공급하는 최종 제품 가격 역시 낮게 책정할 수 밖에 없다. 실적이 좋을 리 없다.
여기에 완성차 업계의 사정까지 겹친다. 리튬과 양극재, 배터리가격이 연쇄적으로 떨어질게 뻔한 상황에서 완성차사는 당연히 배터리 구매를 미루게 된다. 이는 다시 배터리 업계와 양극재 업계의 재고누적과 공장 가동률 둔화로 연결된다. 이것이 리튬 가격이 폭락한 지난 1년 9개월 사이 배터리 밸류체인 전반에서 진행된 악순환이다. 그리고 이 악순환은 앞으로도 더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리튬 가격 하락의 원인 자체가 캐즘에 따른 전기차 수요 둔화였고, 캐즘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배터리 밸류체인 업계로선 당연히 리튬 가격 반등을 원할 것 처럼 보이는 구조다. 그동안 업계 실적 발표때 마다 나온 단골 코멘트도 '광물 가격이 반등하면 실적이 일부 개선될 것'이었다. 하지만, 속사정을 들어보면 딱히 그렇지가 않다. 캐즘이 진행되는 한, 리튬 가격 반등은 '동족방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전기차 수요 자체가 다시 폭발적으로 늘지 않는 한 본질적으로 출구가 없다는 건 업계 모두가 암묵적으로 알고있다.
역설적으로 리튬 가격이 더 떨어져야 업계가 산다. 업계는 리튬 등 광물 가격 하락으로 배터리 가격이 kWh당 100달러까지 떨어지면 내연기관차와 전기차의 가격이 같아지는 '프라이스 패리티'(Price parity)가 도래해 캐즘이 걷히고 본격적 전기차 대중화 시대가 열릴 것으로 본다. 사실, 그동안 리튬 가격 폭락을 거쳐온 가운데 이제 '탈 캐즘'으로의 출구가 마냥 멀어보이진 않는다. 골드만삭스는 지난해 150달러 이상이던 배터리 가격이 올해 115달러를 거쳐 내년 100달러에 이를 것으로 본다. 업계도 출구가 머지 않은 것으로 보는 듯 하다. 최근 35억달러 규모의 합작 배터리 설비 투자를 확정한 삼성SDI와 GM은 '전기차 시장 성장에 대한 확신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안정준 기자 7u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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