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순찰차 변사’ 살릴기회 최소 5번 놓쳤다

■ ‘더위먹은 경찰’… 경남청, 진교파출소 조사서 근무태만 확인
파출소 문 안열려 못 들어가
당직자는 자리 비우고 휴식
교대땐 순찰차 운전석만 체크
운행 규정도 세 차례 안 지켜

창원=박영수 기자 buntle@munhwa.com

최근 한 지체장애 여성이 경남 하동의 한 파출소에 주차된 순찰차 뒷좌석에 갇혀 폭염으로 숨진 사건은 파출소 경찰관들의 형식적 야간근무와 근무교대, 순찰차 미운행 등 총체적 근무 태만에 따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 여성은 적어도 5번의 구조 기회가 있었지만, 경찰은 이를 모두 놓친 것으로 조사 결과 밝혀졌다.

경남경찰청은 하동 진교파출소 순찰차 여성 사망 사건을 조사한 결과 파출소 직원들의 근무 태만이 드러났으며, 이에 따라 파출소 직원 13명과 서장을 포함한 지휘부 3명 등 총 16명을 인사 조치하고 징계 절차를 밟고 있다고 30일 밝혔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파출소 직원들은 이 여성이 파출소에 온 시점부터 사망 추정 시간까지 생명을 살릴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다. 첫 번째 기회는 16일 오전 2시 11분쯤 이 여성 A 씨가 진교파출소를 방문했을 때였다. A 씨는 파출소 출입문을 잡고 흔들었으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당시 1층 근무자도 없어 A 씨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 시간 파출소에는 총 4명의 근무자가 있었는데 A 씨가 문을 흔든 시점엔 2명이 0시부터 오전 3시까지 1층에서 상황근무를 서야 했다. 하지만 근무 당번 2명 등 3명의 경찰은 2층에서 취침 등 휴식 중이었으며 근무 당번이 아닌 1명 역시 1층 회의실에서 휴식을 취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경남경찰청 측은 “파출소 출입문을 잠갔는지 여부에 대해선 직원들이 기억이 뚜렷하지 않아 계속 조사 중”이라고 전했다.

A 씨는 파출소 문을 잡고 흔든 후 곧바로 주차된 순찰차 뒷좌석에 들어갔다. 경찰관은 비운행 시 순찰차 문을 잠가야 했는데도 열어 놨던 것이다. 순찰차는 뒷좌석과 앞좌석 사이에 칸막이가 설치돼 있고 뒷좌석은 내부에 문고리가 없어 밖에서만 열 수 있었기 때문에 A 씨는 자발적으로 나오기가 불가능했다.

해당 순찰차는 이날 업무 계획상 오전 6∼7시 사이 순찰 운행을 하도록 지정돼 있었다. 그러나 파출소 근무자들은 이 차량을 운행하지 않아 두 번째 구조 기회를 놓쳤다. 세 번째 기회는 오전 8시 30분 근무교대 때다. 인수인계 근무자가 해당 순찰차로 들어왔으나 운전석 문을 열어 주행거리만 확인하고 사무실로 돌아갔다. 형식적 근무교대와 장비 확인만 한 셈이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기회도 경찰은 스스로 차버렸다. 오전 11∼12시, 오후 2∼3시 해당 순찰차를 운행하도록 규정돼 있었으나 운행하지 않았다.

경찰은 A 씨의 사망 시간을 16일 오후 2시(전후 2시간)로 추정하고 있다. 이날 하동은 폭염경보가 발령돼 있었다. 순찰차 차량 내부 온도는 50도 이상 치솟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A 씨는 사망 하루 뒤인 17일 오후 1시 59분 실종신고를 받고 출동하기 위해 파출소 직원이 차량 문을 열면서 발견됐다.

경남경찰청은 A 씨가 파출소를 방문한 시간부터 고체온으로 사망할 때까지 파출소 직원들이 최소 다섯 번의 기회 중 한 번이라도 제대로 근무 수칙을 지켰다면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사건 발생 후 진교파출소 직원은 전원 교체됐으며 서장은 대기 발령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