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각[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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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는 무슨 색인가? 푸른색이라 대답하는 이는 '마트'에서만 오이를 본 사람이다.
오이는 푸릇할 때 먹어야 제맛이라고 생각하지만, 노각도 여러모로 쓸모가 있다.
이렇게 생장 속도가 빠르다 보니 미처 따지 못해 남겨진 오이가 노각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노각도 오이이고 모든 오이는 언제나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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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는 무슨 색인가? 푸른색이라 대답하는 이는 ‘마트’에서만 오이를 본 사람이다. 밭이나 시골의 시장에 가 보면 누런색의 오이를 보게 된다. 오이가 다 컸을 때 바로 따지 않고 묵히면 늙은 오이가 되는데 색이 누레지고 껍질은 자글자글 갈라진다. 이렇게 늙은 오이를 보면 왜 중국어로 오이를 ‘황과(黃瓜·huanggua)’라고 하는지 이해가 된다.
이런 오이를 그저 ‘늙은 오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노각’이란 이름을 따로 붙여주기도 한다. 아무리 봐도 한자어일 것 같은데 첫소리는 ‘老(늙을 로)’인데 뒤의 ‘각’은 이에 합당한 한자를 찾을 수 없다. 그래도 ‘늙은 오이’보다는 뭔가 ‘있어 보이는’ 이름이기는 하다. 오이는 푸릇할 때 먹어야 제맛이라고 생각하지만, 노각도 여러모로 쓸모가 있다. 생채로 새콤하게 무쳐 먹어도 맛이 있고 장아찌나 김치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심지어 찌개에 넣기도 한다.
노각도 쓸모가 있다지만 일부러 노각이 되게 하는 경우는 드물다. 여름의 오이밭에 가 보면 샛노란 암꽃 밑에 새끼손가락 크기로 생겼던 열매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생장 속도가 빠르다 보니 미처 따지 못해 남겨진 오이가 노각이 되는 것이다. 사람이나 식물 모두 늙는 게 서러우니 일부러 늙힌 것이 아니라 숨어서 저절로 늙은 것이다.
어린아이는 엄마와 할머니를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으로 인식한다. 엄마는 젊고 고운데 할머니는 늙고 주름살이 많기 때문이다. 아이가 나이 들면 엄마나 아빠가 되고 그때쯤이면 엄마가 할머니가 된다고 해도 믿지 않는다. 아니, 엄마의 고운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푸른 오이와 고운 엄마만 아는 아이도 자라서는 푸른 오이가 된다. 그때가 돼서야 늙은 엄마, 혹은 할머니도 여전히 엄마라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노각도 오이이고 모든 오이는 언제나 맛있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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