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 온 꽃씨, 500여년 보살펴…‘전당홍’ 올해도 피었다

한겨레 2024. 8. 30.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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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 35도를 웃도는 무더위가 맹위를 떨치던 지난 8월17일부터 나흘간 경기도 시흥의 '관곡지 연꽃테마파크'를 방문했다.

강희맹은 관곡지를 전당홍을 최초 시배지로 삼았고, 이로부터 3년 뒤인 세조 12년에는 연꽃이 무성해져 이곳이 '연꽃의 고을'이라 불릴 정도였다고 한다.

관곡지는 전당홍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관찰이 쉽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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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윤순영의 자연관찰 일기
전당홍. 흰색 꽃잎 끝 주변에 연분홍색이 감돈다.

기온 35도를 웃도는 무더위가 맹위를 떨치던 지난 8월17일부터 나흘간 경기도 시흥의 ‘관곡지 연꽃테마파크’를 방문했다. 관곡지(官谷池)는 연꽃과 유래가 깊은 곳이다. 조선 전기 문신인 강희맹(1424~1483)은 세조 9년(1463)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난징의 전당지에 들러 국내에는 없는 새로운 종의 연꽃 씨를 가지고 귀국했다.

전당홍 연꽃의 최초 시배지인 경기도 시흥의 관곡지.

바로 ‘전당홍’이라는 품종이다. 강희맹이 채취해온 이 연꽃은 당시 우리나라에 있던 연꽃과 달리 꽃의 색은 전체적으로 희지만, 꽃잎은 뾰족하고 가장자리로 갈수록 담홍색을 띠는 아름다운 꽃이었다. 강희맹은 관곡지를 전당홍을 최초 시배지로 삼았고, 이로부터 3년 뒤인 세조 12년에는 연꽃이 무성해져 이곳이 ‘연꽃의 고을’이라 불릴 정도였다고 한다.

분홍색을 띤 전당홍 꽃봉오리.

그러나 세월이 갈수록 연못은 점차 황폐해졌는데 헌종 10년(1844) 안산군수(현재의 시흥)로 부임했던 권용정이 관곡정의 연꽃이 고사한 것을 보고 이듬해 봄 장정들을 동원해 다시 연못을 정비했다. 그리고 다시 여름이 오자 다행히 전당홍이 다시 자라나게 됐다. 권용정은 당시 경기도 관찰사에게 이러한 사실을 보고하고, 연못을 관리하기 위한 ‘연지기’(연못 관리인) 6명을 둘 것을 청했다.

관곡지 연꽃테마파크를 방문한 관람객들이 사진 찍기에 바쁘다.
관곡지 연꽃테마파크에 저어새도 함께한다.
참새도 연꽃잎을 자주 찾는다.
다양한 수련도 함께한다.

관찰사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주민들이 연지기로 선발되었고 결원이 생길 때면 다른 주민이 대체하도록 했다. 연지기들에게는 각종 노역이나 세금이 면제되는 특전이 있었고, 오로지 관곡지만 전담해 관리하도록 했다고 하니 당시 관곡지와 전당홍을 얼마나 귀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다. 권용정은 이러한 관곡지의 역사와 재정비 기록을 책 ‘연지사적’으로 남겼다. 그때부터 현재까지 관곡지는 강희맹의 사위였던 권만형의 가문에서 소유·관리해오고 있다.

관곡지 테마파크 내부 전경.

선조들의 세심한 관리로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당홍은 사라지지 않고, 오늘날에도 여름이 되면 변함없이 만개해 우아한 모습을 드러낸다. 관곡지의 규모는 가로 23m, 세로 18.5m로 전통적인 연못의 형태인 ‘방지원도형’을 따르고 있다. 방지원도형은 네모난 연못 가운데 둥근 섬이 떠 있는 형태다.

전당홍 봉오리에 호랑나비가 날아와 앉았다.
호랑나비가 찰나에 자리를 뜬다.

관곡지는 전당홍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관찰이 쉽지는 않다. 올해는 유난히 꽃대가 많이 올라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천천히 관곡지를 둘러보자 다행히 꽃봉오리 2개를 찾을 수 있었다. 분홍빛 꽃봉오리가 연잎 사이로 탐스럽게 보였다. 하루 뒤면 꽃이 필 것 같았다.

전당홍 연꽃이 피어난다.
전당홍이 오전 6시 50분쯤 자태를 드러냈다.
백련과 비교가 된다. 꽃잎 질감도 차이가 난다.

이튿날 이른 새벽 관곡지를 다시 찾았다. 전당홍이 그새 만개하여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봉오리의 분홍색은 마술을 부린 듯 사라지고 꽃잎 가장자리의 분홍빛과 뾰족한 끝부분의 진분홍색이 오묘한 조화를 이룬다. 꽃잎의 질감은 부드러운 아기 피부를 연상시킨다. 흔히 볼 수 있는 백련과는 완연히 다른 독창적인 모습이다.

오전 8시경 전당홍의 꽃잎이 활짝 열렸다. 벌들이 향기에 취해 정신없이 날아든다.
이 연꽃은 전당홍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다른 종이다. 꽃잎은 희고, 끝 주변만 연분홍인 전당홍과 달리 꽃잎 전체에 분홍색을 띤다.

연꽃은 식물이지만 시간에 따라 꽃의 형태가 변해 생동감이 있다. 동물이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과 비슷하다. 연꽃은 오전 6시부터 11시까지 꽃잎을 피운다. 특히 이른 아침이 연꽃을 감상하기 좋은 시간이다. 벌들도 이때 향에 취해 연꽃을 찾아온다. 벌들이 연꽃을 떠나면 연도 아름다운 꽃잎을 접는다. 다음날을 기약해야 한다.

전당홍 흰색 꽃잎은 우유빛 질감이 느껴진다.
오전 8시가 지나자 전당홍 연꽃잎이 아래로 쳐진다. 정오가 되면 완전히 오그라들어 내일을 기약한다.

연꽃의 꽃말은 여러 개지만 가장 마음에 와 닿은 것은 ‘깨끗한 마음’이다. 진흙 속에서 피는 꽃이지만 청결하고 아름다운 자태가 마음을 맑게 한다. 복잡하고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상징하는 바가 크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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