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찬사 받은 '파친코' 한복, 이렇게 만들었다…'진짜' 한복에 담은 진심 [스프]

이주형 논설위원 2024. 8. 30.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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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모먼트] "파친코"의 숨은 주역, 의상 디자이너 채경화
 
한 순간의 감동은 때때로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습니다. 이주형 논설위원의 '이 순간[The Moment]'은 영화 등 예술 작품 속의 인상 깊은 장면을 통해 작품이 관객과 독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다양한 앵글로 들여다보는 스토리텔링 콘텐츠입니다.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안나 카레리나"만큼은 아니겠지만, 소설 "파친코"의 첫 문장도 꽤 유명합니다. 재미교포 작가 이민진이 영어로 쓴 이 소설은 2017년 전미도서상 후보에 올랐고,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됐습니다. 2022년에는 할리우드에서 동명의 드라마로 제작됐고, 최근 시즌2가 공개되면서 다시 한번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부산 영도가 고향인 선자는 먹고 살기 위해 일본 오사카로 떠납니다. 아버지가 다른 두 아이의 엄마인 선자는 전쟁과, 차별과, 가난 속에서도 자식들만큼은 제대로 키우기 위해 자신의 운명을 헤쳐 나가는데... 이 이민자 가족의 삶은 선자의 손자 대에 이르러서도 녹록지가 않습니다.


역사가 저버렸지만 살아내야 하는 조선 여인과 그 가족의 삶을 유장하게 그린 이 8부작 드라마는 철저한 고증과 뛰어난 시각적 만듦새로 한국과 일본의 근현대 풍경을 재현해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할리우드에서 제작한 만큼 작가와 감독은 물론 대부분의 기술 스태프도 외국인이지만, 의상 감독만큼은 한국의 채경화 디자이너가 맡았습니다. 할리우드 진출은 그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The Moment - 의상 감독 채경화의 할리우드 진출기

이주형ㅣ기자
제안이 온 건가요, 아니면 이 프로젝트를 알고 지원을 하신 건가요? 그 과정이 좀 궁금한데요.

채경화ㅣ"파친코" 의상 감독
그거는 아마 어떤 분들이 좀 서치를 하셨을 거예요. 제가 알기로는 쇼러너분이 제 작품 중에 "써니"하고 "킹덤", 저희(파친코)랑 연도나 분위기가 좀 (비슷한 게) 있잖아요. 그래서 킹덤 했던 거랑 써니 했던 부분을 좀 보셨던 걸로 알고 있어요. 좋게 보셨던 걸로. 여러 후보가 한국에서도 있었고 미국에서도 있었던 걸로 알고... 그래서 인터뷰 제안이 왔는데 제가 하고 싶다고 해서 인터뷰를 참여하게 됐죠.
 

# 할리우드

이주형ㅣ기자
이 프로젝트에 뭘 보고 참여하시게 된 거예요? 왜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셨어요? 그 과정이 좀 궁금한데요.

채경화ㅣ"파친코" 의상 감독
막연히 이 일을 시작할 때 뭔가 할리우드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그런 게 이루어지거나 뭔가 성립이 될 거라고 생각한 사람도 없었고. 그런데 시작은 제가 그랬어요. 일단 유학도 제가 '영어를 공부해야 하고 뭔가 해외 것들도 알아야 해' 하면서 엄마한테 얘기하고 외국도 갔었고. 제가 "강원도의 힘"을 마치고 갔었거든요. 근데 이런 기회가 오는 거예요. 그래서 사실 저는 열일 제치고 하고 싶었고 꼭 이루고 싶었고 그래서 정말 진짜 간절하게 접근을 했었던 것 같아요.

제가 느끼는 그런 화이트, '백의민족'에 대한 화이트. 그리고 '역사적인 저항보다는 가족의 사랑 같은 게 베이스로 더 보여지는 것 같다'라는 말들을 했을 때 '그게 굉장히 자기와 맞다' 이런 말들을 작가가 했었던 것 같고...

마지막에는 그래도 믿지 못하잖아요. 동양의 어떤 한 여자를 그런 많은 일들을 한 분들이 어떻게 믿겠어요? 룩북을 좀 준비해달라고 했는데 그때 제가 진짜 열심히 했어요. 꼭 돼야겠다라기보다도 안 되든 되든 내가 열심히 해봐야겠다 해서 콘셉트에 대한 걸 하다 보니까 저희가 한 70~80장 되더라고요. 사실 제가 반대 입장으로 봤을 때도 열정이라고 보이고 사실 미국분이 얼마큼 해왔겠어요. 미국분이랑 아마 제가 경쟁했던 것 같아요.

 

# 도전

이주형ㅣ기자
굉장히 거대한 규모의 프로젝트고 그만큼 또 의상이 소요되는 게 많을 거고 '야, 이거 나 잘할 수 있을까' 도전에 대한 두려움도 좀 있었을 것 같아요.

채경화ㅣ"파친코" 의상 감독
제가 뭐 육십 몇 편을 했지만 사실 한 편도 쉬운 건 없더라고요. 그거에 대해서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내가 이 일에 안 맞는 건 아닌가, 나만 이렇게 어렵나, 나는 왜 왜 작품이 어렵지?' 그런 생각을 제가 한 40~50편 했을 때쯤 진지하게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작품이라는 거, 예술이라는 거는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힘든 거다, 나니까 힘든 게 아니다. 용기를 가지자'라고 생각한 시점이 있었어요. "황해", "써니" 할 때쯤이었던 것 같고 그러면서 생각의 전환을 갖게 됐어요.
 

# 선자의 의상

채경화ㅣ"파친코" 의상 감독
한복에서부터 시작을 한 게 "파친코"이고 한복은 고향이나 또는 엄마의 사랑 이런 거를 상징해요. 그래서 한복을 입고 있었던 그녀의 시절, 그다음에 한복을 조금씩 벗기 시작한 독립 시절, 그리고 여기에서 적응을 하면서 아예 조금 더 일본 옷을 입게 되거든요. 처음에는 조금 더 서양 옷을 거기서 입고 있던, 완전히 적응하지 못했던 경희의 옷을 조금 얻어 입게 되는 거예요. 콘셉트 자체가.

그런데 이제 전쟁 때고 자기들이 자식을 데리고 가야 되는, 두 여자가 이끌어야 되는 순간이 오게 되면서 그때부터는 둘 다 거의 일본 옷을 입고 직접적으로 농사에 참여한다든지. 그래서 제가 표현하는 건, 항상 옷이라는 건 TPO가 있잖아요. 그것처럼 그녀가 겪어야 되는 상황, 정도를 나타내는 수준으로 맞춰서 표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민하ㅣ젊은 선자 역
저는 이런 시대극을 처음 해보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뭔가 이렇게 분장을 하고 옷을 입는 순간 영감을 받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그 옷을 입고 현장에 가서 또 이제 세트장에 가면 정말로 거기에 살고 있는 것 같고 더 상상을, 조금 자세하게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같더라고요. 그 옷들은 사실 저한테는 의미가 너무 컸어서 시즌1 끝나고 의상 감독님한테 조금 달라고 그랬었어요. 그래서 집에 있습니다. 한복, 한복. 한복이요. 하하.
 

# 한복

이주형ㅣ기자
그 옷들에서 공산품 옷들에서 느낄 수 없는, 그런 공예적인 아름다움, 수공업적인 아름다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옷이잖아요. 그런 데서 고귀하고 기품이 있고 인간적인 옷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그런 생각을 사람들한테 준다고 생각하세요?

채경화ㅣ"파친코" 의상 감독
그런 느낌을 정확하게 받으셨다고 하면 너무 보람을 느끼는 부분이고... 그거를 직접 또 손으로 했었기 때문에도 그렇지만, 이 한복이라는 게 그때도 그렇고 다 만든 옷이잖아요. 저희 콘셉트 자체도 그렇고 이 땅에서 나오는 어스톤(earth tone)이라고 할 수 있는 컬러들이나 자연스러운 구김이라든지 그냥 축 걸친 듯한. (한복이) 막 다려지고 막 만들어지고 똑바르고 그런 사극들도 많이 나와 있잖아요. 해외 옷들도 많이 그렇게 되어 있고, 서양 옷들도.

그런데 우리는 곡선적이고, 자연 원단의, 색깔도 막 꼭 맞추지 않고 덜 물든 것 같은 옷에. 그리고 계속 빨잖아요. 한국 사람들은. 빨았잖아요. 그런 것들로 그 어떤 옷보다 내추럴한 게 한복이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


실제 옷들도 다 제가 합성섬유나 공장에서 할 만한 걸 쓰진 않았고 아까 한복 안의 것도 보셨다시피 실제 그냥 무거운 면으로 해버렸거든요. 실제 많이 빨았고 그래서 그거야말로 계속 작가가 강조했던 진정성이 보여지는 게 아닌가.

정말 외국 사람들이 다 너무 예쁘다고 많이 했거든요. 한복을 우리가 볼 때는 사실 선자 한복 같은 거 되게 낡아가지고 그래 보이는데 너무 예쁘다는 말을 외국 사람들이 너무 많이 했어요. 제가 전시할 때도 느꼈고, LA에서.
 

# 가장 애착이 가는 옷, 가장 어렵게 작업했던 옷

채경화ㅣ"파친코" 의상 감독
제가 진정성이나 이런 걸 말씀드리는 게 이런 것을 보통 미싱으로 누비잖아요. 이 옷은 원래 예전에는 다 손으로 누볐단 말이에요. 그래서 저희가 작품에 썼던 옷 두 벌은 직접 누벼주시는 분이 한 달 반 동안 손으로 누벼주셨어요. 시집갈 때 입었던 옷, 그리고 이 안에 입었던 그 결혼식 한복.

제일 애착이 가는 옷은 거의 이제 선자의 이런 옷으로 제가 생각하고 있고, 힘들었던 옷은 한수 첫 등장에 나오는 화이트 수트였던 것 같아요. 한수는 한복 속에서 보여지는 이질감의 수트잖아요. 그리고 거기서도 화이트를 쓰기로 또 작가님이랑 얘기를 했었고. 화이트라는 종류가 굉장히 많아요.사실 약간 아이보리도 화이트로 할 수 있고 정말 화이트도 화이트고. 어려운 컬러예요.

그리고 화이트 수트를 잘 만들지도 않기 때문에 정장으로 화이트가 잘 있지도 않고요. 그리고 굉장히 고급스러워야 되고 고풍스러워야 되고 그래서 그 화이트를 제가 진짜 많이 샀어요. 각종 나라에서 있는 화이트를 다 사봤어요. 그리고 쉬운 예로 속옷이 비쳐요. 화이트 수트는. 근데 한수가 입었던 화이트 수트는 속옷이 안 비치거든요. 컬러도 있고 그 두께감 때문에. 그래서 영국 원단으로 결국 결정을 해서 입게 됐는데 되게 여러 개를 만들어서 테스트해보고 그 핏도 정리를 해보고 그래서 만들어진 장면이어서 진짜 애착도 가고. 예고편 나왔을 때 진짜 저도 너무 짜릿했던 장면인 것 같아요.

 

# 할리우드 사람들

채경화ㅣ"파친코" 의상 감독
쇼러너(show-runner)나 프로듀서들이나 일 안 하고 있는 시간이 거의 없더라고요. 연락이 안 되는 시간도 없고. 그리고 아트(디렉터)도 새벽 4시면 벌써 사무실에 나와 있고. 자기 혼자만의 시간을 갖다가 또다시 팀들이 오면 작업을 하고.

그래서 '아~ 최고가 되고 열심히 하고 한 사람들에서의 시간은 내가 생각하는 거랑 다르구나', 훨씬 더 열심히 일한다는 걸 알고 많이 충격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오래 일해야겠다를 느꼈다기보다 저 노력이 저만큼을 만드는 거구나에 대한 느낌을 받았었던 것 같아요.
 

# 크레딧

이주형ㅣ기자
오프닝 크레딧이 쭉 나오는데 배우가 끝나면 바로 의상 디자이너가 나오더라고요. (네네네, 맞아요.) 저는 이런 경우를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영화건 뭐가 됐건.

채경화ㅣ"파친코" 의상 감독
너무너무 진짜 영광스럽고 진짜 좋았고 이렇게 영화에서 중요하게 의상을, 드라마나 영화에서 생각하고 있구나라는 부분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았어요. 가족들도 다 많이 좋아했고 저는 또 그 장면만 보는 재미도 있고 우리 팀들도 막 좋아하고 시즌2도 그렇고요.
 

 
채경화 의상 감독의 '더 모먼트'.

진심은 통한다. 진정성은 힘이 세다.

채경화ㅣ"파친코" 의상 감독
진짜여야지 돼요. 배우를 대할 때는. 사실 그냥이 아니라 진짜로. 감독님도 마찬가지고. 제가 부족한 거는 다음 문제고 내가 이 캐릭터를 위한 진짜가, 그래도 더 맞는 답이나 아니면 더 훌륭한 결과를 내는 거에 도움이 된다라는 결론을 정말 시즌1 하면서 저 나름대로는 찾게 된 방법인 것 같아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이주형 논설위원 joole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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